일하는 시간 줄이자고 하면 큰일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에게
단축근무 전과 후
요즘 나는 10시까지 출근하고 5시에 퇴근한다. 법 개정으로 육아기 단축근무를 사용할 수 있는 연수가 늘어나 하루 최대 2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단축근무를 1여 년 만에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 후 복직하면서 바로 단축근무제도를 이용했을 때는 비교대상이 없어 단축근무의 효과를 크게 체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육아하면서 ‘정상출근’을 해본 터라 비교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정상출근’을 했을 때 아이는 오전 8시 조금 넘으면 유치원에 도착해야 했다. 그래야 늦지 않게 회사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후 7시가 되어서야 하원을 했다. 약 11시간을 유치원에서 보냈던 셈이다. 아이를 데리러 가면 다른 친구들은 이미 거의 다 집에 가고 없다. 아이는 늘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원하고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면 8시가 되고, 9시부터는 잘 준비를 해야 하니 집에서의 휴식 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수면 거부가 심했다. 잘 시간이 되었다고 하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엄마랑 못 놀았는데..” 라고 말해 마음을 약해지게 만들었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에는 아이의 마음을 달래느라, 지쳐서 마음이 뾰족한 날에는 아이를 울게 만들어 결국 밤 10시는 다 되어서야 아이는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쫓기듯 집을 나가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잠들어 있는 아이의 옷을 갈아 입히고 최소한의 준비만 시켜 차에 태우고는 고구마스틱이나 맛밤 따위를 쥐여줬다. 그게 아이의 첫 끼였다. 잠에 취해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로 등원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육체적이면서 동시에 정신적인 피로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한 몸처럼 붙어 있었다.
육아시간을 다시 시작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아침 풍경이다. 아이가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사과나 토스트, 누룽지 같이 간단한 식사지만 가족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한다. 이제 아이는 일정한 양의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고 매일 먹는다. 이렇게 잘 먹는 아이를 그동안 굶겼던 게 아닐까 싶은 죄책감마저 든다. 시간적인 여유는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내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늦었어, 빨리 일어나”가 아니라 “잘 잤어?” 라고 다정한 안부의 말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저녁 풍경도 자연스레 바뀌었다. 먼저 아이의 수면 거부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아이는 미련 없이 잘 준비를 한다. 여유가 없었을 땐 옷 갈아입기나 양치하기, 세수하기 같은 일을 아이에게 맡기지 못하고 내가 빠르게 대신해주었던 적이 많았다. 이제는 아이가 스스로 양치하고 세수하고 옷을 갈아 입을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는 변화는 직장인이고, 양육자이면서도 그 정체성만으로는 결코 다 설명될 수 없는 고유한 인간으로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여유가 조금 생긴 점이다. 아이가 계획했던 시각에 잠을 자니 매일의 자유시간이 확보된 것이다.
직장어린이집이 좋다는 이유
다니는 직장 안에는 직장어린이집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직장어린이집을 이용한다. 나 역시도 아이를 낳기 전부터 ‘못 보내서 난리’라며 직장어린이집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이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아이가 직장어린이집에 다닌다는 전제로 말을 하곤 하는데 내가 아이를 동네에 있는 다른 보육 기관에 보내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왜냐고 이유를 묻는다. 신청했다고 떨어졌어요, 라는 대답이 그들이 기대하는 대답이겠지만 나의 이유는 조금 다르다.
요즘에 그런 말을 들으면 직장어린이집이 뭐가 그렇게 좋냐고 되묻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거론하는 직장어린이집의 장점으로 꼭 등장하는 건 ‘긴 보육시간’이다. 양육자가 늦은 시각까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아이를 봐준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이고 중요한 이유다. 늦게까지 일이 있는데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면 곤란한 일이다. 직장에 진땀을 흘리며 허리를 최대한 수그린 채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거나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을 해 구해야만 한다. 그럴 걱정 없이 야근하는 동안 아이를 늦게까지 맡길 수 있는 직장어린이집이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는 이 직장의 가장 큰 장점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어딘가 뒤바뀐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야근과 정시퇴근 중 어떤 것을 기본상태로 설정하는가. 어쩌다가 생기는 예외적인 경우로서 야근을 사고하는가, 아니면 별일이 없다면 5분, 10분이라도 조금 늦게 퇴근하는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사고하는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타깝게도 같은 직장에 다니며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육아시간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하나는 ‘눈치가 보여서’다. 먼저 퇴근하는 것, 자리에 없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내 일을 처리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인사권을 가진 상사에게 육아를 핑계 삼아 일하기 싫어하는 직원으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눈치. 다른 하나의 이유는 ‘육아를 선택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육아를 전담하는 다른 누군가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주로 여성일 확률이 높은데, 이 사실은 육아시간을 사용하는 직원의 대다수가 여성 직원인 것과도 관련이 있다. 편향된 인식과 이해의 부재, 구조화된 성별 역할에 대한 기대, 제도의 결함들이 뒤섞여 있는 문제이지만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인간다움을 인정하는 일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장미를!
최근 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주4일제 또는 주4.5일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는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그러나 논의의 본질은 일주일에 며칠을 일하는지보다 ‘노동시간 단축’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제수준을 가진 다른 OECD 가입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길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인간의 삶은 노동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직장에서 나보다 먼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아왔는지 정말 궁금해서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의 위로였다. 그렇다. 대부분의 일들은 어떻게든 해결이 되고 지나간다. 그러나 인간이 빵만 먹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지금 이 젊음,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 시간을 즐기면서, 충분히 누리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까?
미혼이고 자녀가 없는 동료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집에서 주말 이틀은 충분히 쉬어줘야 다시 출근할 에너지가 생긴다고 했던 직원이었다. “주4일제가 시행되면 뭘 할 것 같아요?” 대답은 “하고 있으면 즐거운 일을 찾아볼 것 같아요.”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 모인 회사, 그들이 만드는 사회. 그것이 퇴행일 리가 없다. 아이와 함께 하고 있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인간다운 삶, 장미도 원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장미를!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