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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에최 Oct 24. 2023

[봉평집기록] 봉평에 집이 생겼다.

갑자기 생겨버린 세컨드하우스

서울과 봉평을 왔다 갔다 한다. 우리가 봉평집이라 부르는 강원도 봉평에 있는 오래된 펜션단지 내의 작은 공간은 아빠의 소유인데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어 관리하기 힘들다며 나에게 맡긴 것이다. 관리에 들어가는 모든 품과 비용을 대는 대신 언제든 내 집처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오, 요즘 유행한다는 세컨드하우스가 우리에게도 생긴 것인가! 이렇게 갑자기! 소리 없이! 고민할 것도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덥석 제안을 받아들인 지 꼭 1년이 되었다.    

 

거의 20년 만에 마주한 봉평집은 그동안의 세월을 증명하듯 낡고 빛이 바랜 모습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곰팡이의 퀴퀴한 냄새가 가장 먼저 마중나왔다. 깨진 유리 귀퉁이를 스카치 테잎으로 돌돌 말아 놓은 테이블, 분명히 어디서 주워다 놓은 것이 분명한 더러운 사무용 회전의자와 케비넷 서랍, 곰팡이에게 점령당한 전자레인지와.....식기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대중없이 모여 있는 아빠의 소유물들. 오염된 벽지와 타일을 감추고 있는 듯한 참을 수 없는 문양의 시트지가 특히 거슬렸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하기로 했다. 먼저 창문을 모두 열어 환기를 시켰다. 커다란 종량제 봉투를 사서 필요 없는 물건들을 과감히 처분했다. 커튼을 떼고 침구류는 모두 분리해 차에 실었다. 바닥을 쓸고 걸레질을 했다. 청정지역임을 증명하듯 먼지는 별로 없었지만 어디서 들어와 출구를 찾지 못한 것인지 바닥에는 말라비틀어진 곤충 시체들이 많았다.(이후 이 바닥에 나뒹구는 곤충 시체들과는 매우 익숙해지게 된다)  

  

봉평집과의 상봉 이후 올라온 서울에서는 해야 할 일이 더 많았다. 몸은 서울에 왔지만 마음이 여전히 봉평집을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봉평집에 필요한 물건들을 생각해내고 하나씩 찾아서 확보하는 일은 봉평집을 만들어가는 과정 중 가장 즐거운 파트였다. 서울집에는 어울리지 않아 방치해두었던 붉은 톤의 꽃무늬 커튼을 꺼냈다. 컵과 접시도 챙겼다. 수면매트와 침대가 있는 방에 놓을 조명과 전기포트, 어둡고 긴 밤을 따뜻하게 해 줄 알전구, 프리지아향이 나는 디퓨저는 재빠르게 주문했다. 물건들을 하나씩 쟁이면서 봉평집에 다시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사실 곰팡이의 근원지로 보이는 (지나치게 넉넉한 사이즈의) 부엌 상부장을 모두 철거하고 벽지를 새로 바르고 화장실도 새로 리모델링 하고 싶었지만 공사는 시간과 경제의 여유가 생길 때 차차 하기로 했다.     


꽃무늬 커튼은 봉평에 기가 막히게 어울렸고 세탁한 침구를 배치하니 기분까지 뽀송해졌다. 가져온 피톤치드 원액을 이곳저곳에 아낌없이 분사했다. 하나씩 비우고 채우고 쓸고 닦고 뿌리고를 반복한 결과 봉평집은 낡았지만 제법 아늑한 세컨드하우스의 구색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노력과 정성을 쏟으니 자연스레 정이 들어버렸다. 강원도에 두고 온 꿀단지처럼 자꾸 생각이 났다. 시간이 나면 한번이라도 더 봉평집에 가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일년동안 집을 사용하면서 제안을 받아들일 때에는 예상지 못했던 작고 큰 문제들이 발견되었다.


먼저 서울집과의 거리. 서울에서 봉평까지는 2시간 남짓의 거리다. 금요일 밤 10시에 출발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이 시간대에는 뻥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짜릿함을 경험할 수 있다.그러나 너무 늦은 이동이 부담스러워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하면 1시간이 더 붙고 다시 돌아오는 일요일을 기준으로 하면 이동거리가 꼭 두 배로 늘어난다. 주말만 되면 봉평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꽉 막힌 도로에서 어린이를 달래며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 생각을 하면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두 번째 난방 비용. 봉평은 평창군에 속한다. 사실 봉평집을 관리하게 되면서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험난한 산세를 지닌 대관령이 평창의 대표 이미지라 그랬던 것 같다. 봉평은 대관령에 비하면 평지가 많은 지역이지만 평창은 평창이다. 평창이 어떤 곳인가. 해발고지 700m. 한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는 곳이다. 여름은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하지만 겨울에는 맹렬한 추위와 동거해야 한다.  겨울철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부재시에도 늘 집안 온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맞추어 놓는 건 필수다.(그걸 몰라 외출모드로 두었다가 보일러 동파) 사정이 그렇다 보니 두 집의 관리비를 대다가 허리가 끊어질 판이다. 결국 유난히 혹독했던 지난 겨울에는 낡은 보일러가 터져 보일러를 교체하는 대공사를 겪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상주하는 곳이 아니다 보니 날짜가 정해져 있는 폐기물 처리나 사람을 불러 진행해야 하는 집안 수리도 여의치 않다는 점, 펜션 내 각 집의 소유주들이 모두 달라 노후된 단지 관리가 쉽지 않다는 복잡한 내부사정 등등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에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봉평집 관리를 내게 맡긴다면 엎드려 절을 할 셈이다. 봉평에 집이 생긴 이래로 삶의 질이 조금 올라갔기 때문이다. 봉평집이 있어 매월 강원도로 달려가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호사를 일상의 즐거움으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필요한 개인물품과 살림이 구비되어 있으니 가볍게 훌쩍 떠날 수 있으면서도 여행의 들뜬 마음과 일상의 안정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니 아이를 동반하는 여행으로는 최적의 모양새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집 어린이가 좋아한다. 집 안에서 아무리 뛰어다녀도 꾸지람을 듣지 않아서일까. 집 한 켠에 만들어 준 자신만의 조립식 집이 그곳에 있어서일까. 아니면 봉평집에서는 어른들의 표정이나 태도가 더 느긋하고 너그러워진다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그렇게 서울과 봉평을 오고 가는 삶이 시작되었다.


늘 찍게 되는 밤의 봉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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