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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에최 Oct 05. 2023

첫 해외여행 3.

우리는 함께 성장한다.

여행지를 정할 때엔 물놀이가 가능한 남쪽 나라들이 후보지가 된다. 이왕이면 바다를 끼고 있어야 한다. 이건 우리(나와 남편)의 암묵적인 합의 같은 거다. 여행을 다닐 기회와 시간이 많다면 오로라나 설빙을 볼 수 있는 극지방도 좋고, 강과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도 괜찮지만 일 년에 딱 한 번뿐이라면 무조건 남쪽 바닷가다.

     

곱게 화장한 얼굴이 오히려 어색해지는,

화장도 옷차림도 마음가짐도 훌훌 가벼워지는,

차가운 맥주로 태양의 열기를 식힐 수 있는 남쪽바다!

     

그곳으로 4년 만에 떠날 예정이었으니.. 나는 물건을 하나둘 사기 시작한다. 4년동안 고여있던 소비욕은 한번 물꼬를 트기 시작하니 거침없이 밀려들었다. 매일 물놀이를 하려면 수영복 여러벌은 필수지! 가볍게 걸칠 수 있는 원피스도 필요하고, 열대에 잘 어울릴만한 초록색 슬리퍼.. 예쁘게 타려면 태닝오일도 필요하지 암. 꼬맹이를 위한 튜브와 수영복까지..내친 김에 스노클링 장비까지 사려는 것을 점점 불어가는 카드사용금액이 가까스로 막았다.

    

참고로 나는 물만 보면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나는 인간이다. 그렇다고 바다에 첨벙첨벙 뛰어들 수 있는 수영실력을 갖춘 건 아니다. 25미터 수영장을 자유형으로 한번 가로지르면 헥헥대며 10분은 휴식해야 하는 실력이라 답하면 될 것 같다. 공간과 수심이 한정되고 파도가 없는 수영장이라면 겁날 것이 없지만 바다라면 좀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주도 서쪽 해변이나 발리에서처럼 얕은 수심이 길게 이어지고 완만하게 깊어지는 바다가 있는가 하면 동해안이나 남부 프랑스처럼 해변에서 멀리 나간 것도 아닌데 급격하게 수심이 깊어져 당혹스러운 바다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남편은 어떤 바다에서든 수영을 겁내지 않는다. 어릴 적 친구들과 놀며 배운 게 전부라는데 꽤나 수준급이다. 내가 해안가 가까이서 잔망스럽게 물장구치는 동안 그는 저 멀리 유유히 바다를 헤쳐가곤 한다.     


아무튼 우리 둘 다 물놀이를 좋아하기에 자연스레 우리집 꼬맹이도 그럴 거라 생각했나보다.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우리집 꼬맹이는 내적 긴장과 불안도가 높은 축에 속하는데, 그래서인지 매사에 이렇게 조심스러울 수가 없다. 돌다리를 세 번쯤 두드려보고 건너는 타입이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런 아이의 성향이 편한 적도 많다. 이를테면 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치약이나 돌 같은, 입에 넣으면 위험한 사물을 입에 집어넣은 적이 없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가구 모서리에 많이 설치한다는 보호캡도 붙인 적이 없다. 그래도 아이는 스스로 조심하며 집안 구석구석을 탐색했다.      


한편 이런 아이의 성향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때도 많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 같이 노는 놀이공간에서 선뜻 합류해 장난감을 갖고 놀지 못했다. 여기는 다 같이 노는 곳이라고, 장난감들은 누구의 것도 아니니까 원하는 거 해도 된다고 말을 해줘도 한참을 관찰만 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원하는 장난감을 손에 넣어도 다른 친구가 내 꺼, 라고 손을 내밀면 금방 줘버리고 돌아서서 속상해한다. 마찬가지로 꼬맹이를 수영장에 데리고 간 적도 몇 번 있지만 한번도 물에 풍덩하고 뛰어든 적은 없었다. 언제나 물에 들어가고, 즐거워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이런 아이의 ‘소심한’ 성향은 남편보다는 나의 것이라 나는 유독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투사되어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이 든다. 조던 스콧의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를 보면서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기다려주는 게 사랑이란 걸 깨달았지만 실제 상황에서 나는 곧잘 성급해진다.     


아무튼 이번 여행에서도 물놀이에 대한 기대가 한창이었던 우리와 달리 아이는 물놀이에 대해서는 별 흥미가 없었던 게 확실하다. 숙소의 야외테라스에 드넓게 펼쳐진 수영장을 보고 “우와” 하고 감탄했지만 들어간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수영장에 뛰어드는 우리를 아이는 밖에서 물끄러미 지켜보았고 신나게 응원했으며, 경주시켰다. “레이싱! 레이싱!” 거대한 장난감이 된 기분과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는 아이의 주문을 충실히 수행했다.      


첫째 날에도.

둘째 날에도.

셋째 날에는 매일 같이 비가 내리던 중 반짝 해가 나 온 가족이 바다로 출동했고, 아이는 내가 안고 들어간다는 조건으로 바다에 들어가서 파도 놀이를 했다. 무척 즐거워했지만 혼자 들어갈 엄두는 내지 않았다.

넷째 날에도 우리를 지켜보고 응원만 할 뿐.      


그렇게 4일이 지나고 첫 번째 숙소의 마지막 날이었던 여행 5일째 되는 날, 이동하기 전 마지막으로 수영장에 들어가 있는데 평소처럼 밖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튜브를 타고 들어오겠다고 했다.      


튜브를 타고 수영장을 조심스레 탐색하던 아이는 이어서 두 번째 숙소의 더 크고 깊어진 수영장에도 들어갔다.

튜브를 타거나 안겨서 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는 감각에 조금씩 적응해갔다. 그리고는 금세 따로 마련되어 있던 유아풀에 들어가 혼자 놀 수 있게 되었다.

본인의 변화에 본인도 신이 났는지 아이의 행동과 목소리에 힘이 붙었다.     


아이가 튜브를 타고 수영장에 들어오는, 남들이 보기엔 특별할 것 없는 이 장면이 꽤나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아이가 그동안 주변을 관찰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지 못했다면, 충분히 고민하고 스스로가 원한 시기에 내린 결정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아마 그렇게 느끼지는 못했을 거다.

       

가장 좋은 응원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육아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섣부른 개입이나 어설픈 조언보다 말없이 지켜봐주는 게 힘이 될 때가 많다. 관찰의 힘은, 개입의 적절한 타이밍과 방식을 찾아내게 하는 데에 있다.


자신만의 방식을 찾고 자신만의 시계를 따라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좋은 응원이자 육아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육아를 하면서 스스로를 더 잘 응원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좋은 양육자, 좋은 보호자가 되고 싶어 그 조건을 생각하다보면 결국엔 스스로를 귀하게 대하는 법을 깨닫게 되는 것, 정말 육아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실로 아이가 주는 것이 너무나 크다.     


아직은 물놀이보다 돌놀이가 좋은 때
아이는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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