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바로 그 봉평장에 가다.
봉평집이 생기기 전까지 나에게 봉평이란, 메밀과 동의어였다. 칭따오, 하면 맥주. 등촌 하면 칼국수 또는 샤브샤브. 횡성 하면 한우. 그리고 봉평, 하면 자연스레 메밀이 따라 붙는 것이다.
사실 메밀은 강원도 봉평뿐 아니라 충청과 경북, 제주에서도 난다. 엄밀히 따지면 대한민국 최고의 메밀 산지, 그러니까 메밀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은 제주도다. 그러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봉평은 흔들림 없는 메밀의 성지로 자리매김했으니 내가 제주도라면 억울할 법도 하다. 소설의 유명세를 증명하듯 메밀국수집 앞에 지명이 들어가야 한다면 그건 백이면 아홉 봉평일 것이다.
봉평을 메밀 산지의 대명사로 만들고 본인과 관련된 관광상품(이효석 생가, 이효석 문학관, 효석 문학100리길 등)으로 지금까지도 봉평의 지역경제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계신 이효석 선생님. 그가 쓴 <메밀꽃 필 무렵>을 봉평집이 생긴 이후 다시 읽어보았다. 한갓 소설 속 배경이었던 봉평이 개인적인 공간이 되니 봉평이라는 지역을 더 알고 싶은 애정과 호기심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봉평을 그토록 유명하게 만들어 준 소설이라면 다시 읽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교과서에 실렸던 소설 중 하나일 뿐이었던 <메밀꽃 필 무렵>의 문장들이 이전과 다르게 다가왔다. 옛 봉평의 모습을 수집하는 마음새로 문장 하나 하나를 꼬옥 꼬옥 눌러 읽었다. 이전에는 읽고 지나쳤던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개울가 돌밭에서 그냥 옷을 벗어도 좋을 정도로 천지에 메밀꽃이 가득하다는 표현이나 봉평과 진부, 대화에서 열리는 장에 가려고 밤을 새워 산길을 걷는 장돌뱅이의 모습이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특히 봉평 관광의 일등공신과도 같은 유명한 문장, 봉평장을 떠나 대화장으로 가는 밤길을 묘사한 그 문장은 매번 읽을 때마다 덩달아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아,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지역에 대한 헌사이구나 싶었다.
옛 봉평에도 있었지만 <메밀꽃 필 무렵>의 축복을 받고 관광상품으로도 유명해진 것이 바로 봉평장이다. 소설 속 허생원은 봉평과 그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봉평장을 들락거리게 되고 우연히 일어난 사고 같은 인연으로 봉평에서 제일가는 일색이었다는 성서방네 처녀와 하룻밤을 보낸 후 봉평을 고향 같은 곳으로 여기게 된다. 그리하여 소설은 봉평장에서 시작하여 봉평장에서 대화장을 가는 밤길에서 마무리된다.
드팀전 장돌림을 시작한 지 이십 년이나 되어도 허생원은 봉평장을 빼논 적은 드물었다. 충주 제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지방도 해매기는 하였으나 강릉쯤에 물건 하러 가는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아다녔다. 닷새만큼씩의 장날에도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으로 건너간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삼아 말하였으나 고향에 돌보러 간 일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그 유명한 봉평장을 봉평에 들락날락 거린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구경하게 된 것이다. 장이 서는 곳에서 가까운 봉평면문화센터 놀이터에서 먼저 몸을 푸는데 평소와 다른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놀이터 앞 넓은 공용주차장에 차가 빼곡한 것이다. 주말에도 공터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산한 주차장에 차가 그렇게 많은 것은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오일장의 기분 좋은 북적거림이 벌써부터 느껴졌다.
하늘 높고 햇살은 따사로운 날이었고 장에는 활기가 넘쳤다. 주변에 단풍놀이를 하러 온 관광객들이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잠든 마을같이 조용한 시내에 사람들이 가득하니 신이 났다.
골목골목마다 깔린 가판 위에 열심히 가꾸고 수확해온 결과물들이 자랑스레 전시되어 있었다. 내륙지방답게 밭에서 기른 과일과 채소, 갖가지 곡물과 산에서 채집한 나물과 열매, 버섯류가 봉평장의 주품목이었다. 커다란 솥에서 굴러다니는 군밤이나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찐옥수수도 유혹적이지만 그 중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름 앞에 햇자를 붙이고 나타난 햇땅콩, 햇호두, 햇밤 견과류 삼총사였다. 오일장에 오면서 어째서 현금을 챙겨오지 않았는지 나의 기가막힌 무심함을 탓하고 있는데 계좌이체가 가능하다는 메모가 있는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곳곳에 계좌번호와 은행명을 적어둔 작은 팻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커다란 망에 흙 묻은 껍질 채 담겨진 이 견과류들이 어찌나 실해 보이던지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햇땅콩 한 망을 덜컥 사버렸다. 핸드폰으로 계좌이체를 하면서 어떻게 먹어야 되냐고 물으니 쪄서 먹는 게 가장 맛있다는 말이 되돌아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흙을 깨끗이 씻어낸 후 끊는 물에 삶아 딱딱한 껍질을 벗겨내는 일은 내가 가진 것 이상의 부지런함을 요했다)
소설 속에서 여름의 봉평장은 파리떼가 날리는 별 볼 일 없는 장으로 그려지는데 가을의 봉평장은 마치 한가위 같다.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채소와 과일, 열매들을 보니 저것들을 손 안에 넣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문득 봉평장에서 산 꽃들로 봉평집을 꾸미고 봉평에서 난 식재료들로 요리를 하며 봉평집에서 몇 달이고 머물고 싶어졌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마다 시내에 나가 5일치의 먹거리를 구매해야지. 5일간 알뜰하게 식재료를 소비하고 또 다시 장에 나가 냉장고를 채워야지. 상상만으로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상품의 사진을 보면서 터치나 클릭만으로 문 앞까지 물건을 배달받는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오늘 서울로 떠나야 하는 것이고, 차가 있긴 하지만 장에서 주차장까지 들고 갈 수 있는 짐의 한계가 있으며 유아차를 타고 있는 아이까지 있으니 이 모든 상황을 적절히 고려를 해야 한다.(눈여겨보던 이불 탈락) 그리하여 치밀한 계산 끝에 햇땅콩을 시작으로 내 손에는 사과 한 봉지, 송이버섯 한 바구니, 햇땅콩 한 망, 튤립 구근 한 알이 들렸다. 돈을 쓰면서 마음이 채워지는 쇼핑은 역시 제철 먹거리 쇼핑만 한 게 없다.
오일장 쇼핑을 마치고 점심 먹을 장소를 물색한다. 출출해진, 혹은 시골장에 대한 호기심이 어린 손님들을 맞는 포장마차에서는 떢볶이를 데우고 김밥과 순대를 썰면서 봉평에서 역시나 빠지지 않는 메밀전병과 메밀전도 부쳐낸다. 테이블에는 여지없이 막걸리병이 놓여 있다. 막걸리 역시 메밀막걸리다. 지글지글 고소한 기름내가 공기에 녹아든다.
눈에 들어온 국밥집에 큰 고민 없이 들어갔다. 지역주민으로 보이는 작업복을 입은 남성 무리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동네 맛집일 확률이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아기 의자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아이와 나누어 먹으려고 특소머리국밥을 시키니 뽀얀 국물에 다른 양념 없이도 간이 딱 맞는 시원한 국밥이 나왔다. 고기와 부속들이 다 먹지 못할 만큼 넉넉하게 들어 있다. 국밥과 함께 깍두기와 배추김치, 애호박조림의 단출하지만 내실 있는 반찬을 싹싹 비웠다. 뜨끈한 식사를 하니 기분이 잠시 장돌뱅이가 된다. 왠지 봉평에 한뼘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오랜 시간 변동이 없었던 봉평맛집 목록을 업데이트 할 수 있을 것 같아 감개가 무량해졌다.
앞으로 웬만하면 봉평장이 있는 주말에는 봉평집에 가볼 참이다. 지갑에 현금을 채우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달력을 보며 다음 봉평장과 주말이 겹치는 날을 헤아려 본다. 다음은 11월 12일이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