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32
2019년 3월 20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싣자마자 핸드폰과 이어폰을 꺼내어 둘을 연결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무슨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을까 기대하며 플레이리스트를 들여다본다.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인데, 좋은 생각이 몽글몽글 떠올라 한참 동안 즐거운 상상에 빠져들거나, 작고 소소한 감정들이 증폭되어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여행을 떠나 어느 별에서 내 얼굴과 내 몸을 가지고 다른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나를 만나기도 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고르다 좋아하는 한국 가수가 새 앨범을 발표한 것을 보고 기대하며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그 가수의 예전 노래에서 자주 듣던 익숙한 선율과 비트,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오븐 속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게다가 제목도 마음에 든다. ‘Sleepless’, ‘in Seoul’, ‘술이 달다’, ‘새벽에’, ‘비가온다 내일도’... 요즘 들어 너무 행복하다거나, 내가 제일 예쁘다고 외치는 제목들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조금 외롭고, 완벽하지 않고, 이대로도 괜찮다고 말하는 제목들은 현실적이어서 마음에 든다.(내가 남들만큼 또는 남들보다 이뻤던 적이 없고, 무언가 많이 가져본 적도 없어서 마음이 이렇게 비뚤어졌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노래를 주르륵 듣다가 남동생이 이 가수를 좋아한다는 게 떠올라 오랜만에 카톡을 보냈다. 남동생은 이 가수의 다른 노래를 들어보라며 추천한다.
에픽하이의 <11월 1일>
전주부터 딱 남동생 스타일이다. 약간 슬픈 멜로디에 비트가 강하게 들어가고 노래방에서 부르기 좋은 노래 같은 느낌. 지하철의 강한 에어컨을 한국의 11월의 추위라 여기고 흘러가는 가사에 귀를 기울인다. 이 정도 추위와 이런 노래라면 광화문에서 근무할 때 자주 갔던 주꾸미 집에서 소주를 한잔하고, 3분 거리에 있는 실내포차에 가서 백합탕 국물에 2차로 또 소주를 해야 할 것 같다. ‘사랑했단 말없이 그리웠단 말없이 고마웠단 말없이 그대를 바라 봤’다는 비현실적인 가사 앞에서 모든 사랑은 원래 비현실적이지 않냐는 생각을 하며 오른쪽 발을 까닥이며 박자를 탄다. 슬픈 곡조를 무한 반복해 듣다 보면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듯 슬픔으로 가득 차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되기에 반복 버튼을 누르고 계속 듣는다. 세 번째 정도 들었을 때 귀에 그대로 꽂히는 가사를 발견했다.
내 사랑 언제나 그대 내 곁에
비처럼 음악처럼 남아주오 어둔 새벽에
등불처럼 비춰 골목길 넋두리
자만했던 현실에 찌든 목소리 마치
물처럼 증발해 사라진 그대여
비오는날의 수채화에 그댁 빗대어 간직하고 있다면
웃어주오 아스라히 사자길 미소라도 주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단어들이 귀에 들어오자 뇌가 제 스스로 가동하더니 퍼즐을 알아서 맞춰준다. 가사 속에 김현식과 유재하의 노래 제목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다시 제목을 본다. ‘11월 1일’. 김현식이 사망한 날이 11월 1일이었다는 걸 기억해낸다.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의 사망일을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떠오를 때가 있다. 내 어린 시절 또는 과거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던 좋은 친구를 잃은 느낌이 커서일 거다. 4월이 되면 장국영이 생각나고 10월이 되면 신해철이 생각난다. (‘11월 1일’은 유재하와 김현식을 추모하며 에픽하이가 만든 곡이다. 유재하도 11월에 사망했다는 건 알았지만 김현식과 꼭 같이 11월 1일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이사 가는 집 근처로 중학교를 배정받기 위해 전학을 갔다. 나의 등하교는 아빠의 몫이었다. 아빠 차에는 오래되어 찐득찐득한 먼지가 묻은 카세트테이프가 늘 나뒹굴고 있었다. 아빠가 시동을 걸면 전날 듣던 노래 테이프가 자동으로 켜졌고, 볼륨은 어찌나 높았던지 한 쪽 귀를 막고 볼륨을 줄여야 했다. 아빠는 시동을 걸며 그날 듣고 싶은 노래를 골랐다. 비틀즈의 ‘I want to hold your hand’ 나 ‘ Come Together’는 아빠의 18번이었다. 기타 사운드가 쨍쨍거리기 시작하고, 빨간 신호에 차가 잠깐 멈추면 아빠는 두 손으로 기타를 잡고 연주하는 포즈를 취하고 미간에 힘을 주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우리가 타고 있는 자동차가 출근과 등굣길이 아니고 저 멀리 비틀즈의 고향 영국 런던을 향하는 길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빠는 가을을 타는 남자였다.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하늘이 높아지고,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 바바리코트를 꺼내 한껏 멋을 부리고 김현식의 노래를 아침저녁으로 틀어 대기 시작했다. 가을을 타는 남자가 으레 들어야 하는 노래를 김현식이 다 불렀구나 하는 마음으로 그의 노래를 모두 섭렵했다. 두어 달 같이 듣고 나니 나도 김현식의 노래 대부분의 가사를 외울 수 있었다. 김현식의 노래는 대부분 찐한 커피 같은 두터운 슬픔이 뚝뚝 흘러내렸다. 가사를 읊다 보면 슬픔과 외로움은 증폭되었고, 따라 부르기 시작하면 마음속에 꾹꾹 눌러 둔 감정들이 모두 터져 나왔다. (이걸 초등학교 6학년 때 느꼈다니! 내가 스스로 대견스럽다.) 김현식의 ‘사랑사랑사랑’이나 ‘사랑했어요’는 따라 부르기 좋았다. 목청이 탁 터지는 느낌이 들면서,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했고, 애잔하기도 했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마저 여미게 만들면 ‘추억 만들기’로 넘어간다. 김현식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새끼 손가락 걸며 영원하자던 그대는 지금 어디에~’가 흘러나오면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아팠다. 나중에 커서 실연을 당하면 꼭 김현식의 ‘추억 만들기’를 부르며 그 슬픔을 스스로를 위로하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이 노래에 흠뻑 빠졌었고, 아빠가 목청 터지게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의 청춘은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들국화의 노래와 기타 선율들, 70년대 대학가요제 무대를 장식했던 노래들... 아빠 덕분에 참 많은 노래를 듣고 따라 불렀다. 그땐 누구의 노래인지, 어떤 노래인지도 모르고 듣고 따라 듣고 불렀는데 가끔 기억나는 노래를 찾아보면 죄다 한 시대를 풍미한, 고전과도 같은 곡들이었다. 몇 해 전 록 페스티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현장에서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can’t stop’ 공연을 실제로 보았다. 1984년에 데뷔했다는 이 록 밴드 공연을 보면서 아빠와 영국 런던 근처에서 열린다는 록 페스티벌에 같이 가서 음악을 듣고 맥주를 마시고 춤을 추고 놀면 아빠가 꽤 즐거워할 것 같았다.
퇴근길에 노래 하나 찾아 들었을 뿐인데 노래 한 곡은 추억 한 조각을 머릿속에 소환시켰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옛날이야기가 마음속에 넘실거렸다. 아빠 차에 뒹굴던 카세트테이프들은 모두 언제 어디로 갔을까. 동성로 좌판에 펼쳐 놓고 팔던 짝퉁 카세트테이프도 여러 개 있었을 테고, 좀 컸다며 멋부리며 내가 직접 레코드점에 가서 구입한 머라이어 캐리 테이프도 있었을 텐데, 다 어디로 갔을까. 실체는 사라졌지만 음악은 우리 추억과 함께하니 사라진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뜨거운 싱가포르에도 아침저녁에 바람이 불면 마치 초여름 저녁에 동네에 불어오는 바람처럼 느껴진다. 바람에 날리는 아이들 머리카락을 쓰다듬다 보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노래가 하나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 있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김광석 <바람이 불어오는 곳>
우리 아이도 언젠가 나만큼 나이가 들면 엄마가 자주 부르던 노래라며 이 노래를 기억할까. 그리고 나처럼 지하철에서 찾아 듣다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하나 두 개씩 꺼내 보며 울고 웃을까. 누구보다 흥이 넘치지만 아픔과 슬픔에 예민하고 세심하게 반응하며 가끔 고독을 즐기는, 조금 멋진 사람으로 나를 기억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욕심을 부려본다.
오늘의 나를 기억케 하는 음악은 무엇일까.
십 년, 이십 년이 지나 찾아 듣게 될 오늘의 내 음악은 뭐가 될까.
음악으로 오늘을 기억하고 싶은 3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