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잉맘 네 번째 이야기
* 이 글은 그로잉맘에 게재되었습니다.
코비드 19로 열 달 가까이 재택근무를 하다가 얼마 전부터 주 3회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며칠 출퇴근을 하니 아침이면 아이들이 먼저 물어본다.
“내가 학교 다녀오면 엄마 집에 있어, 없어?”
집에 없다고 하면 아이들 얼굴에서 섭섭함이 뚝뚝 떨어진다. 코비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붙어 생활한 시간이었는데 아이들은 그 시간이 꽤 괜찮았던 모양이다. 집에서 일한답시고 늘 잔소리하는 엄마인데도 내가 집에 있기를 바라니 말이다. 아이들의 말간 얼굴을 한번 더 쓰다듬고 귀엣말로 속삭인다.
“엄마 오늘 일찍 퇴근해서 올게. 너 좋아하는 사과 주스도 하나 사 올게.”
사무실에서는 앞만 보고 달리는 시간을 보낸다. 퇴근, 그 세상을 빠져나오는 순간이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역을 종종걸음으로 향할 때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봄비가 떨어지기 직전 흐드러지게 핀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을 한밤중에 마음으로 보는 것, 굽이굽이 이어지는 7번 국도를 따라가며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 여름이 찾아올 무렵 한낮의 더위와 달리 시원하게 불어오는 저녁 바람을 맞이하러 산책길에 나서는 것 정도의 기쁨이다. 무채색 같은 어른의 세계에서 무지갯빛 아이들의 세계로 진입하는 순간이니 이보다 더 찬란한 순간이 또 있을까?
사실 퇴근을 하고 나면 더 바쁘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슈퍼도 들르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국을 끓이거나 밑반찬을 만들기도 한다. 잠든 주인 곁에 우두커니 서 있는 책가방을 열어 알림장도 살펴본다. 큰아이의 숙제를 봐주던 나의 소소한 재미는 사라졌고, 아이는 이제 제 스스로 숙제를 하고 알림장에 숙제를 완료했다는 표시를 해 둔다. 아이 방이나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종이 조각이며 장난감을 찾아 살펴보는 일도 추가되었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쏠쏠하다. 아이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면 한낮의 아이들이 보인다. 요즘 둘째는 두루마리 휴지심을 팔찌처럼 끼고 놀거나 하루 온종일 선글라스를 끼고 노는 게 분명하다. 집 곳곳에 두루마리 휴지심이 돌아다니고 선글라스들이 거실이며 책상 위를 나뒹군다.
사실 믿는 구석이 있어 출근을 해도 마음이 덜 불편하다. 아직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남편! 남편은 여유가 있을 때면 스쿨버스를 타고 오는 아이를 마중 나가기도 하고, 낮잠 자고 일어난 아이들 보듬어 안아 주기도 한다. 안방에서 퇴근을 하고 주방으로 달려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오일 파스타를 해주기도 하고, 내가 아주 늦게 퇴근하는 날에는 달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한참 동안 놀아 주기도 한다.
첫아이를 낳고 복직을 일주일 앞둔 저녁, 다른 날보다 불안해하는 나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많이 도와줄게. 걱정 마. 아이도 너도 다 잘 적응할 거야.”
“아니, 아빠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야. 아이와의 시간을 같이 채우는 사람이지.”
첫아이 육아휴직 1년 동안 살림과 육아를 즐기고 있던 터라 남편이 집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커다랗고 무거운 쓰레기를 버리는 일, 가끔 요리를 하고 주말 대청소를 함께 하는 정도였다. <아내의 복직에 따른 가정의 변화>에서 남편은 제삼자의 자리에 자신이 앉을자리를 마련했고, 나는 육아 당사자 자리에 그의 의자를 건넸다. 비로소 아빠가 양육의 중심에 입장하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남편은 6년 동안 나와 함께 육아와 일의 중심에서 균형을 잡으려 부단히 애쓰고 있다. 아이가 좋아하고 잘 먹는 음식이 뭔 지 살펴보고 직접 해준다. 놀이터에 나가면 동네 어린이집 선생님이 오신 것 마냥 온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놀아준다. 타고난 세심함으로 아이와 조곤조곤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아이가 좋아하는 장황한 이야기들도 곧잘 지어낸다.
남편과 나는 매일 밤, 아이를 하나씩 맡아 재우고 아이 방을 빠져나와 우리만의 공간에 들어온다. 몸과 마음이 지치는 날은 각자의 이야기를 밤이 새도록 늘어놓는다. 이런 이야기를 나눈 날이 있었다.
“언젠가 아이들이 다 자라면 우리가 아이들을 재울 일도 없고, 우리 둘이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겠지. 그때가 오면 시간이 많아져서 좋다 싶다가 아이들 키우는 재미가 사라져서 섭섭하기도 하겠다. 지금은 몸이 힘들어서 그렇지 마음은 늘 좋으니까. 그렇지?”
‘이상한 나라 엘리스’에서 토끼가 엘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인도했듯 아이들은 우리를 그들의 세상에 데려가 주었다. 그 세상에서 나와 남편은 엄마, 아빠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 이름에 맞게 살아내려 무단히 애쓰는 중이다. 내일은 알 수 없지만 오늘은 희로애락이 넘쳐나는 그 길 위에 우리는 버드나무처럼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