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잉맘 다섯 번째 이야기
* 이 글은 그로잉맘에 게재되었습니다.
2021년의 삼분의 일이 흘렀다. 그간 참여했던 온라인 독서 토론 모임이 끝났고, 뭘 더 해볼까 고민하던 찰나에 온라인 수업 하나를 등록했고, 코칭을 받기 시작했다. 코비드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서 일주일에 세 번 출근을 하고 이틀은 재택을 한다. 주말이면 만사를 제쳐 두고 아이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다. 10KM 떨어진 곳을 굳이 자전거를 타고 가보기도 하고, 바닷가에서 하루 온종일 놀기도 하고, 산속을 탐험하기도 한다. 둘째의 활동량이 늘어나고 의사 표시를 명확하게 하기 시작하면서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 이 친구 덕분에 우리의 주말이 풍성해졌다.
일을 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다고 ‘말’은 하지만 마음은 늘 엎치락뒤치락이다. 일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업무 성과와 업무 능력, 생산성은 늘 향상되고 있을까, 넘치는 에너지와 긍정적인 마음으로 일한다고 하지만 이게 진짜 나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불쑥 올라와 커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지게 된다. 이런 생각은 일을 대하는 나의 마음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마음, 식구들을 대하는 마음에 어둠의 손길을 뻗친다. 온 마음과 생각이 울퉁불퉁 해지는 순간이 오면 말끝이 뾰족해지고 곧 누군가를 찌를 것만 같은 상황이 찾아온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제자리로 돌아오려 애쓴다.
이런 마음을 남편 또는 가족, 친구들과 나눠봤지만 ‘정답’이라 말할 수 있는, 내가 원하는 답을 얻기는 어려웠다. 어떤 이는 ‘꼭 일을 해야 하나,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에게 집중해’라 했고, 내 마음은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어떻게 그만둬, 그리고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라는 내 속마음이 들렸다. 어떤 이는 ‘애들도 중요하지만 너무 마음 많이 쏟지 말고 너도 돌봐야 해’라 했고, 내 마음은 ‘엄마인 내가 아무리 중요해도 세상 물정 모르는 애들인데 마음을 안 쓸 수가 없지’라고 속으로 답했다. 내 손에 쥔 역할들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고, 내 손길이 닿아야 한다는 생각은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과 아이, 좌우 균형을 맞춰 줄타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나라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주저 않은 줄꾼이 바로 나였다.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한두 걸음 물러나 나를 본다. 아이들이 몇 살이 되면 엄마 역할이 줄어들지? 그때까지 견디기만 하면 되는 시간일까? 그러면 나는, 내 모습과 내 마음은 모두 어디에 둬야 하지? 한참을 생각했다. 아주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애벌레였을지도 몰라. 혼자 온전히 서 있는 독립적인 사람이라 여겼지만 세상 보는 눈이 이토록 넓지 않은 사람이었을 거야. 혼자 꼬물거리며 제 좋아하는 것만 찾아다녔지. 즐겁고 신나는 일을 수없이 해도 채워지지 않은 텅 빈 마음도 있었고 말이야. 나는 아이를 낳아 키우며 조화로운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지금과 그때의 나는 백팔십도 다르지. 같은 사람이라고 하기 어려울 거야. 암. 아이를 통해 아주 많은 것을 배우고 느껴. 그래서 가끔은 내가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해. 엉망진창이지만 오롯이 나 혼자 즐겼던 애벌레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그런데 이제 돌아갈 수 없잖아. 내일은 다가오고 오늘은 흘러가고 과거는 고개를 돌려야 볼 수 있는 시간이잖아. 다가오는 시간을 제대로 마주해야지. 언젠가 내 나이가 조금 더 들어서 아이들이 제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오면 그때 다시 나를 만나야지. 지금은 나를 조금 옹송그리는 시간인 거야. 그래, 지금은 내가 지은 고치 속에 있는 거야. 고치 속에서 시간을 잘 보내야 해. 그래야 이 고치를 깨고 밖으로 다시 나갈 때 오색찬란하고 크고 멋진 날개를 단 나비가 될 수 있거든."
난 언젠가 나비가 될 거야.
지금은 자의 반 타의 반 고치를 짓고 기다리는 존재가 되었다. 울고 싶다고 수시로 울 수 없고 외롭다고 무한정 외로워할 수 없다. 역할이 있으니까.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과 어쩔 수 일들과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앞으로 십오 년이 흐르면 서서히 고치를 깨고 나와 날개를 펼쳐야지. 아이들이 제 갈 길을 가면 나도 내 갈 길을 가야지. 널브러져 있기도 하고, 마구 울기도 하고, 주야장천 뛰기도 하고, 하염없이 앉아서 고요한 시간을 가져봐야지. 내 몸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 내 시간을 써야지. 그렇게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야지.
얘들아, 기대해 엄마도 날아오를 거야. 서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