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잉맘 여섯 번째 이야기
* 이 글은 그로잉맘에 게재되었습니다.
월요일 아침은 여느 날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밤인지 아침인지 모를 시간을 뭉그적거리기 시작한다. 한 주의 끝인 일요일 밤에 앞으로 펼쳐질 다음 한 주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잠을 청하려 애쓴다. 하지만 일요일 밤의 마음은 온 마음으로 보낸 주말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기에 앞으로 닥칠 시간을 미리 들여다볼 생각이 없다. 월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음도 현실에 눈을 뜨고 다가올 시간을 머릿속으로 그려준다. 한여름 나라에 삼 년 넘게 살면서도 아침이면 발가락 끝에 보슬보슬한 이불이 닿는 게 좋아 홑이불을 비비적거린다. 깜짝 선물처럼 새벽에 우리 방으로 건너온 아이들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며 빙그레 웃는 것도 잊지 않는 습관이 되었다.
둘째 녀석의 머리칼을 쓰다듬다 나도 모르게 ‘아이고’ 소리를 냈다. 아이의 이마가 보통 때보다 뜨겁고, 손 발은 차다. 굼벵이처럼 꾸물거리며 하루를 시작하겠다는 마음이 사치스러운 듯 벌떡 일어나 아이를 눈으로 확인한다. 밤새 열이 났는지 얼굴은 바짝 말라 있고 아이의 작은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는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몇 년의 경험이 준 데이터가 신호를 준다. 아픈 아이와 함께 이번 주는 꽤 힘들게 흘러갈 것이라고.
해가 뜨기도 전에 회사 동료들에게 아이 병원을 다녀와야 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병원 문이 열기가 무섭게 달려가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아이는 배를 부풀렸다 꺼뜨리며 숨을 몰아 쉬었고, 몸속 한 구석이 터져 나올 기세로 토하듯 기침을 했다. 최근 싱가포르에 코비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외출도 많이 자제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고약한 기침 바이러스를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생각하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기침약 몇 개 처방받아 집에 갈 거라 생각했던 내 입에서 또다시 ‘아이고’가 작은 소리로 터져 나왔다.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 선생님의 마지막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괜찮을 거야, 걱정 마, 아무 일 아닐 거야. 아이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들을 되뇌며 엑스레이를 찍는 병원으로 향했다.
큰 아이는 각종 알레르기 때문에 36개월이 될 때까지 자주 아팠다. 식품 중 우유에 대한 알레르기 수치는 의사 선생님도 놀랄 정도여서 아이는 그 어떤 유제품도 먹을 수가 없었다. 온갖 종류의 알레르기 영향인지 기관지도 약해서 다른 아이들이라면 기침감기로 며칠 고생할 일인데 아이는 늘 급성 폐렴으로 일주일 가까이 입원을 해야 했다. 동네 대학병원 소아과 의사 선생님들이 아이를 기억할 정도로 자주 병원을 드나들었다.
아이의 입원 수속과 동시에 마음이 바빠진다. 하루 이틀 휴가를 낼 수 있는 상황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날들이 더 많았다. 멀리 사시는 친정 엄마에게 SOS를 치고 낮에는 출근을 하고 밤엔 보호자 침대에서 잠을 청한다. 병실에서 잠든 아이를 남편이 지키고 있으면 노트북을 들고 보호자 대기실로 가서 못다 한 일을 했다. 새벽 일찍 병원에 오신 엄마와 바통 터치를 하고 집에 가서 씻고 회사로 달려가는 날은 허기짐도 잘 못 느꼈고 피곤한지도 몰랐다. 미팅을 하면서도, 기획안을 쓰면서도 생각은 온통 병원으로 향해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해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전해 듣고 기쁜 마음에 병원 짐을 싸서 집에 돌아와 세탁기를 돌리면 그제야 일주일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곤 했다.
아이들은 해가 떠 있는 낮보다 어두운 밤에 더 많이 아파한다. 둘째 아이는 밤새 온몸으로 기침을 토해냈고, 기침이 터질 때마다 울면서 물을 찾았고, 나는 우는 아이에게 물통을 쥐어 주며 달래느라 밤새 한 숨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나흘 밤을 꼬박 지새우고 나니 아이의 기침은 잦아들었고, 의사 선생님도 마음을 놓아도 되겠다는 기쁜 소식을 들려주셨다.
작년까지만 해도 하나가 아프고 다 나으면 다른 하나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둘째 녀석의 기침에서 간병인 역할이 끝이 났다. 기침 바이러스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큰아이가 자라 건강한 것을 보며 한쪽 마음을 쓸어내렸다. 밤새 뒤척이는 아이를 안아주다 삐끗한 내 허리의 통증도 거의 사라졌다. 아이가 아픈 동안 뒤흔들린 우리의 일상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한 번 아프고 더 쑥쑥 자란다고들 한다. 아픈 아이를 가운데 두고 생활과 일과 체력과 마음을 보듬어야 하는 나는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보다 더 빨리 늙는 느낌이다. 우리가 타고 있는 롤러코스터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무서운 구간을 지나 이제 조금 즐겨도 되는 구간으로 진입하는 순간이다. 아프고 두렵고 힘든 구간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일단 지금 즐겁기만 한 구간을 즐겨 보자. 다음 구간은 진입하는 그 순간 고민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