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잉맘 아홉 번째 이야기
* 이 글은 그로잉맘에 게재되었습니다.
5월 중순부터 싱가포르에 코비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아이는 홈스쿨링, 나는 재택근무가 다시 시작되었다. 아이의 온라인 수업 접속을 도와주고, 업무를 보고 미팅을 하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하루가 저문다. 살갗이 타들어가는 적도의 대낮이 기울기 시작하면 동네 아이들이 놀이터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우리도 질세라 하던 일을 후다닥 마무리하고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손에 손을 잡고 놀이터로 향한다.
매일 놀이터를 향하면서 놀이터를 애용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눈에 익힐 수 있었다. 큰아이는 마음이 조금 통하는 친구 두 명을 만났고, 매일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시간에 그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뛰어다녔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작은 아이의 발걸음을 눈으로 좇거나 뒤따라 다녀야 했기에 큰아이가 친구들과 노는 모습은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언젠가부터 뛰어다니는 세 아이 중 유독 큰아이만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자포자기한 표정이 보이기도 했고 속이 상해 억울해 보이는 날도 있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하는 수 없이 친구들을 따르는 마음이 얼굴에 가득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날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친구 둘이 한 편이 되고 아이만 덩그렇게 놓인 듯한 상황이 얼마간 지속되더니 아이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 아이에게 집에 가자고 했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을 뿐인데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늘 게임을 생각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애들이 늘 싫다고 해. 난 이제 같이 하고 싶은 게임 아이디어가 없어. 왜 다들 나한테 ‘싫어, 안돼’라고만 하는 거야. 친구들이랑 나도 베스트 프렌드가 되고 싶은데 나랑은 베스트 프렌드를 안 해줘.”
그냥 놀이터에 풀어 두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같이 논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의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아이는 친구들과 놀면서 충분한 만족감도 못 느끼고 본인만 소외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저녁 내내 눈물 콧물을 다 흘리는 아이에게 두서없이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모든 친구들과 베스트 프렌드가 될 수는 없어. 어떤 친구는 매일 만나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가끔 만나기도 해.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교실에서 생활한다고 모든 아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도 아니야. 같은 동네에 살아도 꼭 친구가 되지도 않고 인사만 나누는 정도로 아는 사이도 있어.”
아이는 울면서 대답했다.
“난 그 친구들이 좋은데 그 친구들은 나를 싫어해. 나는 친구가 되고 싶어서 주스랑 과자를 가지고 가기도 하는데 그때만 같이 먹고 놀 때에는 자기들끼리만 놀아. 나도 그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고 싶다고.”
아이의 말에 내 마음이 울컥했고 나를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그랬구나. 너는 같이 놀고 싶은데 다른 아이들은 네 마음을 잘 몰라줬구나. 친구의 마음을 얻으려고 애썼는데 그게 잘 안되니까 속상했구나. 친구랑 놀고 싶다고 꼭 친구들이 하자는 대로 다 안 해도 돼. 네가 하기 싫은 건 친구에게 싫다고 말해도 되고, 기분이 나쁘면 기분이 나빴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돼. 그래야 친구도 네 마음을 알고 맞추려고 애를 쓰지. 이렇게 네 마음이 힘든 거 알았으니까 천천히 네 마음부터 살펴보자.”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나의 상상력에는 끝이 없었고, 혹시나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는 과정에서 친구들이 원하는 것만 아이가 해야 하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친구들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이게 친구 사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행여나 아이가 마음을 심하게 다쳐서 유쾌하지 않은 이번 경험 때문에 다른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힘들어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속이 상했다.
요즘 우리 집의 가장 큰 화두는 ‘친구’이다. 아이에게 친구는 어떤 사람일까? 친구 사이는 어떤 관계일까? 친구로 마음이 아픈 아이는 다른 친구를 통해 위안을 받을 수 있을까?
친구에 대해 아이가 느끼고 품는 마음을 들여다보려 애쓰고 있다. 아이가 느끼는 결이 다른 감정들을 허투루 대하지 않고 아이 스스로도 제 마음을 느끼도록 도와주려 한다. 방어적인 자세를 먼저 취하기보다는 아이가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같이 찾아보려 한다.
세상에 인간관계만큼 어렵고 복잡한 게 또 있을까? 아이가 인간관계를 대하는 첫 단추를 끼우는 순간이라 생각한다. 아이가 자라는 소리가 벌써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