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는 자라고 있지

그로잉맘 열 번째 글

by 아멜리 Amelie

* 이 글은 그로잉맘에 게재되었습니다.


7월 12일 월요일 아침 7시, 아이는 활처럼 휘어질 기세로 기지개를 켜고는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주말 동안 잘 놀았던 덕분인지 얼굴 곳곳에 밝고 맑은 기색이 가득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나오는 아이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꼭 한번 끌어안고 물 한잔 마시고 멍하니 앉아있기다. 굳이 질문을 하지도 않고, 서로 말도 걸지 않고, AI 스피커처럼 하루 일과를 읊조리지도 않는다. 거실 창 너머 건너편 아파트 위로 보이는 약간의 하늘과 구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아있다. 서로의 손이나 발을 주무르며 꿈의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건너오는 우리만의 의식을 치른다.


아이의 손을 주무르다 손가락 위로 웃자란 손톱이 느껴져 깜짝 놀라 아이의 손을 바라봤다. 아주 건강하고 깔끔하고 기다란 손톱이었다. 서둘러 손톱깎이를 챙겨 들고 빛이 환한 베란다로 나가 나란히 앉았다. 아이의 손톱은 또각또각 소리에 맞춰 초승달 모양으로 잘렸고, 베란다 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2년 만에 아이의 손톱을 깎는 아침이었다.


싱가포르에 이사 오고 난 후 언젠가부터 아이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처음엔 엄지손가락을 집중 공략했는데 그것도 모자랐던지 손가락 열개의 손톱이 온전할 때가 없었다. 좀 물어뜯다가 그만두겠지 싶어 손톱을 물어뜯으면 병균이 입으로 들어오기 쉬우니 안 하는 게 좋다는 정도의 설명한 반복 했다. 그러다 엄지발가락의 발톱을 물어뜯는 아이를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아이가 손톱만 물어뜯기 시작하면 혼을 냈다.


내 눈에 손톱 물어뜯는 아이의 모습만 보이는 순간이 계속되던 날들이 있었다. 아이가 노는 모습도, 친구들과 환하게 웃는 모습도, 아이의 반짝이는 눈망울도 어느 것 하나 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손톱 물어뜯는 모습만 보이는 날들이었다. 재작년 학교 발표회에서도 무대 위에서 다른 친구들이 모두 노래를 부를 때 아이는 하염없이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새로 입학한 유치원에서 생활한 지 6개월 만에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아이는 얼마나 어색하고 초조하고 불안했을까. 그때에는 그런 아이의 마음이 잘 보이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만난 아이에게 왜 노래는 부르지 않고 손톱만 하염없이 물어뜯었냐고 다그쳤다.


그렇게 2년 동안 아이는 줄곧 손톱을 물어뜯었다. 책상 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조금이라도 손톱이 톱니바퀴처럼 오돌토돌할 때면 끝까지 물어뜯었다. 아이의 손톱은 손톱깎이라도 사용한 듯 아주 짧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잠든 아이의 손톱을 보고 한숨을 토해낸 밤들도 있었고,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무슨 고민이나 걱정이 있는 것은 아닌지 속으로 물어보던 날들도 있었다. 아이 자신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내가 무슨 수로 읽을 수 있겠냐며 자포자기한 날들도 있었다. 손을 붕대로 칭칭 감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하염없이 바라보는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2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아이의 웃자란 손톱을 손톱깎기로 잘라주며 이유를 물어봤다.

“왜 요즘 손톱 안 물어뜯었어?”

“몰라, 그냥 안 물어뜯었어. 그러지 않아도 되더라고.”


그래, 뭐든 그러지 않아도 되는 날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올 때가 있다. 이유를 꼬치꼬치 캐 물어 문제의 원인을 모조리 없애겠다고 비장한 마음을 먹지 않아도 어느새 그리 되어 있는 날들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마치 봄 지나 여름 오고, 여름 지나 가을 오 듯 말이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이의 마음속에는 굽이쳐 흐르는 아이의 인생 여정이 조금 다른 각도로 흐르기 시작한 모양이다. 굳이 손톱을 물어뜯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 오고야 만 것을 보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언제나 아이는 자라고 있다.

아이의 뒤에서 응원의 함성을 내지르는 것만이 내 몫일 지도 모르겠다.


그로잉맘_김보민_10.jpg


매거진의 이전글아이의 친구 관계,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