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잉맘 여덟 번째 이야기
* 이 글은 그로잉맘에 게재되었습니다.
둘째는 밤새 꿈을 자주 꾸는 모양이다. 낮에 잘 놀고 잘 먹고 자기 직전까지 떼도 안 쓰던 아이인데 잠든 후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누가 겁박이라도 한 듯, 누가 세상을 떠나기라도 한 듯 자다 일어나 서럽게 목놓아 운다. 알아듣지 못할 말을 늘어놓는 날은 아이를 달래는 게 더 어려워진다. 차라리 내가 악몽을 꾸는 편이 낫겠다 싶다.
아이들을 재우러 아이들 옆에 나란히 누워 있던 저녁이었다. 둘째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엄마, 내가 자고 나도 다른 방에 가지 마. 꼭 내 옆에 누워 있어. 알겠지?”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재워야 하는 사명감 하나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응, 그럼. 네가 잠든 후에도 네 옆에 있을 거야.”
아이는 가르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고, 내 손을 잡고 있는 아이 손을 조심스레 떼어내던 순간이었다.
“엄마, 가지마라고 했잖아.”
잠든 줄 알았던 아이가 말을 던져 당황했다. 일으키던 몸을 다시 아이 옆에 눕히며 가지 않겠다고 읊조렸다. 이런 날 아이는 새벽에 더 심하게 울며 내 방으로 건너온다.
첫째의 불안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너 살 무렵 집에 있던 모든 손수건을 물고 빨았다. 그중 괜찮다고 느껴지는 손수건이 있으면 하루 온종일 가지고 다녔다. 다섯 살이 되어서는 나의 티셔츠를 모두 물고 빨았다. 티셔츠에 온통 구멍이 날 정도였다. 그중 꽃분홍색 티셔츠를 하루 온종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여덟 살이 된 지금까지 말이다. 이 티셔츠가 왜 좋으냐고 물어봤다.
“맛있어, 특히 부드러운 부분이 있는데 정말 맛있어.”
맛있는 티셔츠는 ‘마미 클로즈’라는 이름을 얻은 후, 아이를 따라 놀이터도 가고, 쇼핑몰도 가고, 친구 집도 간다. 잠들기 전 마미 클로즈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아침이면 마미 클로즈도 함께 일어나 거실로 나온다. 아이는 마미 클로즈가 없이는 어떤 곳도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자다가 엄마를 부르고 나의 대답이 없으면 울어버리고 마는 아이를 보면서, 하루 온종일 물고 빨아 더럽기 그지없는 너덜너덜한 내 티셔츠를 바라보며 아이의 불안에 대해 생각해 본 날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아이의 표정이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킥보드를 타고 앞으로 내달리던 아이를 뒤쫓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지점에서 아이가 내달리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세상이 떠나가라 엉엉 울면서 킥보드를 타며 나를 찾고 있는 아이를 만났다. 앞으로만 내달리던 아이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멈춰 서 뒤를 돌아보았고 자신을 따라오던 내가 보이지 않자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온 얼굴에 눈물이 번진 아이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마주하자 아이는 안심이 된다는 듯 더 크게 울었고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밤마다 내 방을 찾아오는 아이와 오래된 나의 티셔츠를 물고 빠는 아이를 볼 때마다 이 날 아이의 눈망울이 떠오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이는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엄마가 어딘가로 사라질까 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다시 보지 못할까 봐 불안해한다. 시꺼먼 어둠이 온 세상을 뒤덮으면 그 불안은 더해지고, 익숙한 사람이 없는 공간에 가면 그 불안이 더 커지나 보다.
아이에게 불안을 극복하자고 가르치거나, 네가 가진 불안은 별일 아니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걱정 근심을 적당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자신의 불안을 그 나름 표현하는 중일 것이다. 그 불안을 자연스레 소화하지 못하기에 어른들 눈에 다소 엉뚱하고 과한 방법으로 그 불안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불안이라는 마음을 스스로 보듬을 수 있도록, 제 속도에 맞게 불안과 이별할 수 있도록 지켜보려 한다. 이 또한 자라는 중이라는 뜻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