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우리 어디로 갈까?

그로잉맘 열두 번째이야기

by 아멜리 Amelie

* 이 글은 그로잉맘에 게재되었습니다.


금요일 저녁만큼 즐거운 시간이 또 있을까? 일도 많고 탈도 많은 한 주를 끝내고 주말을 맞이할 때의 기분은 사회 초년생일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상콤 달콤하다. 꼬였던 일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도, 골치가 아플 것으로 예상되는 일이 눈에 띄어도, 오후 5시에 급한 미팅이 잡혀도, 마음 한 구석에 ‘야호, 금요일이다’가 있어서 뭐든 용서가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난주 금요일은 조금 일찍 일을 마무리하고 김치찌개를 끓이고 참치 야채전을 굽고 호박을 달달 볶아 한상을 차렸다. 누군가 하늘을 캔버스 삼아 그림이라도 그린 듯 하늘을 수놓은 노르스름하고 붉으스름한 석양을 바라보며 아이들은 포도 주스, 어른들은 와인을 한잔 하며 고단한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순간이다.


맛있게 저녁밥을 먹는 식구들은 일주일 동안 즐거웠던 순간들, 마음 쓰라린 기억들, 배시시 웃음이 터지는 찰나를 순서도 방향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토해내며 웃고 떠든다. 이야기가 무르익으면 누군가는 꼭 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반드시 응답을 해야 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오늘은 그 질문을 내가 던졌다.


내일은 우리 어디로 갈까?


싱가포르로 이사를 와서 집 정리가 어느 정도 되었을 무렵부터 우리의 방랑은 시작되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유모차에 짐을 가득 싣고 출발해 해가 지고 나서야 비로소 집에 들어왔다. 한번 나갈 때 챙기는 짐이 좀 많은 편이라 가끔 남편은 우리가 집을 나가서 안 들어오는 건 아니냐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우리가 온종일 마실 물, 아이들의 여벌 옷과 얇은 거즈 이불,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 몇 개, 갑자기 허기질 때 필요한 주전부리, 긴박할 때 유용하게 쓰이는 기저귀와 물티슈, 혹시 몰라 챙기는 아이들 수영복 등등. 중고로 산 쌍둥이 유모차는 아이 둘과 이 짐을 모두 감당해내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퍼져버린 듯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피로감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코비드로 인해 외출이 어려워지면서 우리의 토요 나들이도 전략과 방향 변경이 시급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는 곳, 하루 온종일 야외에서 지내는 때도 있기에 뙤약볕 아래에서 이따금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곳, 하루 온종일 걷고 뛰고 움직일 수 있는 곳. 원숭이가 출몰하는 산을 오르기도 하고, 허기질 때까지 바다 수영을 하고 하루 온종일 모래성을 쌓기도 하고, 인적이 드문 동네 놀이터에서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놀기도 한다.


최근 우리 식구 모두 사랑에 빠진 공간이 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사이의 바다를 끼고 있는 아주 큰 공원이 바로 그곳이다. 드넓은 공원에 브로콜리를 닮은 커다란 나무가 빽빽하게 모여 있고, 바다가 보이고 바다 색을 닮은 하늘이 보이는 곳. 해가 쩅쨍해도 비구름이 몰려와도 비가 흩뿌려도 어여쁜 곳, 구불구불한 공원길을 걷기만 해도 즐겁고 뜀박질하면 행복해지는 곳이 그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카약을 만났다.


바닷물 그대로 뒤집어쓰며 노를 저어 바다 위를 두둥실 떠다니면 천국이 따로 있나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 저 멀리 보이는 브로콜리를 닮은 나무와 하늘이 배경이 되고, 사람들의 목소리는 멀어지고 찰랑찰랑 물소리가 배경 음악이 되고, 아이와 내가 세상 한가운데 단 둘이 있는 느낌, 여기에 우리가 매주 집을 떠나 자연을 찾아 떠나는 이유가 있다.


산이 있고, 들이 있고, 바다가 있는 곳에서 만나는 나와 아이는 도심 한가운데에서 만나는 우리와 조금 다르다. ‘안돼, 하지 마’ 보다는 ‘가보자, 해보자’를 더 자주 외치게 된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고 너도 처음 만나는 세상이니까 남 눈치 보지 말고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고 말하게 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세상의 시계에 맞춰 고단하게 살았으니까 이제 우리의 시계에 맞춰서 살아보자고 말하게 된다. 바람이 불면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과 마주하고 온전히 느끼게 되고, 비가 내리면 비가 만드는 풍경에서 놀거리를 찾게 되고, 해가 쨍한 날은 더위를 어르고 달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자연이 던져주는 풍경과 배경 음악 속에서 우리의 속도를 만끽하는 것, 이것이 진짜 휴식이고, 여기서 우린 채울 수 있다고 믿기에 우리가 내일 어디에 갈지 서로 물어본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지 물어보는 말과 같다.


지난 주말은 싱가포르 국경절이 있어 연휴였고, 우리는 하루 더 나갈 수 있었다! 싱가포르 센토사 옆에 있는 작은 섬에 가서 바다 수영을 하고 모래성을 쌓고 바닷바람을 원 없이 만끽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날 손가락 끝을 간지럽힌 곱디고운 모래들이 발가락 사이를 채우고 빠져나가는 듯하다. 다음 토요일에는 우리 어디로 갈까, 혼자 속으로 물어보고 소리 없이 웃어본다. 한 주를 살아내게 만드는 기분 좋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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