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재택근무의 달콤함을 맛보다

그로잉맘 열세 번째 이야기

by 아멜리 Amelie

* 이 글은 그로잉맘에 게재되었습니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재택근무에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싱가포르 백신 접종률이 80%에 이르고, 일일 확진자 수 관리가 가능한 단계에 이르자 싱가포르 정부는 근무자의 50%까지 회사에 복귀해도 좋다는 발표를 했다. 곧 회사의 부름(?)을 받고 사무실에 출근을 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장장 4개월에 걸쳐 진행된 큰아이의 홈스쿨링과 여름방학도 끝이 보인다. 올해 초 다시 악화되었던 코비드 상황이 좋아져서 숨통이 트이는가 싶어 기뻐야 하는데 환호성을 지를 만큼 기쁘지만은 않다. 재택근무의 달콤함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둘째가 첫돌을 맞이한 무렵 싱가포르에서 취업을 했다. 회사 생활을 다시 시작하며 한국과 달리 집에서 같이 살며 아이를 봐주는 필리핀 출신의 이모님을 고용했다. 누군가를 고용해 한집에서 사는 것도 태어나 처음이고, 고용인이 외국인이라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싱가포르 자체와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고 나름 능력 발휘하려 애쓰느라 정신이 없었고, 코딱지만 한 아이가 외국인 이모와 하루 종일 잘 지내는지 신경이 쓰였다. 그것도 아주 많이.


큰아이가 새로운 유치원으로 옮겨 어느 정도 적응하고 다닐 즈음, 둘째가 두 돌을 맞이하고 동네 어린이집 등하교를 편안하게 여길 즈음 코비드로 인해 싱가포르는 락다운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식구는 오랜만에 모두 집에 갇혀 오랜 시간 마주했다. 눈뜨는 시간부터 잠이 드는 순간까지 온 식구가 함께 하는 것이 엄청 힘들 것이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아이들을 매일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다는 것, 출근시간마다 눈물 콧물 쏟아내며 울지 않아도 된 다는 것, 가장 좋은 것은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르면 1초도 주저하지 않고 ‘응’ 하고 대답하면서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원할 때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주는 즐거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1년 넘게 이어지는 재택근무와 홈스쿨링을 통해 서로를 더 많이 알아가고 있다.


하루 삼시 세끼를 매번 준비하고 같이 먹으면서 아이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첫째는 콩나물국은 좋아하지만 미역국은 싫어한다. 둘째는 콩나물국과 미역국을 모두 좋아한다. 첫째는 오징어는 좋아하지만 생선구이는 싫어한다. 둘째는 오징어도 생선구이도 모두 좋아한다. 첫째는 이제 거의 흘리는 밥알이 없이 혼자 밥을 먹을 만큼 컸고, 둘째는 도움이 필요하지만 혼자 숟가락 포크를 쓰는 재미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밥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 주제도 예전에 비해 다양해졌다. 첫째는 나와 남편의 회사 상사와 동료들의 이름을 모두 알게 되었다. (밥 먹으면서 지나치게 자주 회사 이야기를 한 듯하다.) 아이들은 깊은 바다와 멀고 먼 우주에 관심이 많아져 바닷속 물고기와 문어, 우주선에 탑승한 우주인 이야기를 자주 한다. 친구 관계에 부쩍 눈을 뜬 첫째와 ‘인간관계와 친구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고, 인간은 누구나 조금은 외롭고 쓸쓸할 수 있으니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채우는 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조금씩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가 다소 심각해지기 시작하면 우리 집의 귀여움은 모두 제 몫이라 여기는 둘째가 등장해 어디서 보고 따라 하는지도 모를 춤사위를 선보이며 우리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뱃속 싶은 곳에서 올라오는 웃음이 터지게 만든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모두 조약돌처럼 동글동글하고 풀꽃처럼 여여쁘지만은 않다. 나의 업무량과 컨디션에 따라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의 질이 달라질 때도 있고, 지치고 힘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같이 있는 시간이 귀한 이유는 다시 출근을 하기 시작하면 못 얻을 시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농담을 던지는 것도, 지나가다 슬쩍 얼굴에 뽀뽀를 할 수 있는 것도, 무심한 표정으로 아이의 팔다리를 쓰다듬으며 이쁘다는 말을 건넬 수 있는 것도 시간이 없으면 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육아 전문가들은 아이와 마주하는 시간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적으면 순식간에 돈독한 관계로 진입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징징거리듯 아쉬워하다가도 회사에 가야 하는 시점이 오면 난 누구보다 재빨리 마음의 짐을 툴툴 털고 회사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을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누구보다 빨리 변화에 적응해서 출퇴근에 익숙해질 것이고, 육아와 살림 외주화에도 문제가 없도록 계획을 세우고 일상이 삐걱대지 않도록 애쓸 것이다.


가끔 아이들과 있는 시간의 어느 축이 한동안 멈춰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여덟 살, 네 살 아이들의 얼굴을 하염없이 어루만지고 내 기억 속에 이 모습이 지워지지 않도록 박제하고 싶다.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아이들은 옥수수처럼 쑥쑥 자라고 세상은 울퉁불퉁하게 변해간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나이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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