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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Oct 02. 2021

네 속마음 알 길이 없고

그로잉맘 열다섯 번째 이야기

 속마음을  길이 없는  아니라  속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은 


40개월이 된 둘째 어린이와 동네에서 공차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작은 공 하나 발로 차고, 오는 공 잡아 다시 발로 차는 단순한 놀이었다. 아이가 공을 차는 모습을 본 동네 아기 엄마가 한마디 건넸다.


“공차기에 소질이 있어 보여요. 동네에 축구 수업하는 센터가 있는데 거기 한번 데려가 봐요. 재밌게 할 것 같아요.”


양육자라면 한 번쯤 떠올려봤을 생각을 나도 했다. 우리 아이가 혹시 축구에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동네 축구 수업 갔는데 축구 신동 소리를 듣는 건 아닐까, 이러다 손흥민 같이 세상을 뒤흔드는 축구 선수가 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손가락은 바빴다. 동네에 있는 축구 수업을 검색하고 시범 수업을 신청했다. 코비드 19로 인해 운동할 수 있는 인원 제한이 있어서 바로 수업에 참여할 수 없었고, 11월까지 기다려야 했다. 지금 내 눈앞에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될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11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미래의 축구 선수와 자주 공차기를 하면서 이 감각을 잊지 않게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갑자기 축구 센터에서 오는 일요일 아침 9시 시범 수업 참여가 가능하니 시간 맞춰 오라는 연락이 왔다. 누가 보면 마치 자식이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이라도 했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한껏 높아진 톤의 목소리로 ‘쌩큐’를 외쳤다.


토요일 밤, 잠자리에 들며 아이에게 축구 수업 이야기를 했다. 진짜 축구장처럼 잔디가 있는 곳에서 진짜 축구공을 차면서 놀게 된다고, 내일은 운동복을 입고 운동화를 잘 챙겨 신고 가야 하고, 제일 중요한 물을 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허공에 상상의 축구공을 그려 놓고 누워서 그 공을 뻥 찼고, 내 눈에도 그 공이 보이는 듯 나는 연신 ‘잘한다, 잘한다, 참 잘한다’를 읊조렸다. 아이는 그날 밤 축구장에서 손홍민처럼 경기장을 달리며 공을 차는 꿈을 꾸었을지도 모르겠다.


일요일 아침, 우리 식구는 모두 운동복 차림으로 둘째 어린이의 축구 시범 수업을 따라갔다. 비가 보슬보슬 내렸지만 축구장은 지붕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했고, 앞으로 아이가 축구 수업을 듣고 있는 한 시간 동안 근처에서 조깅을 해야겠다고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까만 그물로 사방이 둘러싸인 동네 축구 센터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둘째 어린이가 가던 길을 뚝 멈추고 머리를 숙이고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나 축구 가기 싫어.”


장차 손홍민같이 멋진 축구 선수가 될 어린이가, 어제저녁 축구 센터에 간다는 소리에 그렇게 행복해했던 어린이가, 공을 찰 때 얼굴 한가득 웃음이 가득한 어린이가 축구센터를 코 앞에 두고 축구를 안 하겠다니!

길 한가운데 서서 축구 센터에 가보자고 아이를 설득했다. 결과는 실패. 축구 센터 안에 들어가서 공을 보여주면 달려가서 차고 놀겠지 싶어 둘러업고 들어갔다. 결과는 또 실패. 그 사이 수업은 이미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이 공을 차고 노는 모습을 보면 같이 하고 싶겠지 생각했다. 결과는 그 역시 실패. 30분 정도 경기장 밖에서 서성이며 아이가 축구장에 들어가겠다고 말하기를 기다렸다. 아이가 할 말이 있다며 내 곁으로 와서는 나의 손을 끌어당긴다.

“나가자, 밖에 나가자, 다른 곳에 가자.”

네 속마음 알 길 없고, 허탈한 마음에 우리 식구는 털레털레 걸어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일요일 아침 9시 30분, 축구 센터 앞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커피로 속을 달래며 어린이에게 물어봤다.

“축구 좋아하는데, 축구 센터는 가기 싫어? 다른 아이들이랑 공 차고 노는 거 하기 싫어?”

“응 하기 싫어. 축구하기 싫어.”


어쩌면 나는 너에게 공을 차러 가고 싶은 지, 다른 아이들과 수업을 듣는 것은 괜찮은 지 제대로 물어보지 않고 손홍민을 만들어보겠다는 내 욕심에 이끌려 일요일 아침에 그곳을 향했던 것은 아닐까. 너에게 공은 길에 떨어져 있는 수많은 나뭇잎과 돌멩이처럼 흔한 장난감 중 하나였을 뿐인데, 나 혼자 공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 것은 아닐까. 네 속마음을 알 길이 없는 게 아니라 네 속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르니 정답이 보였다.

기다려야지. 아이가 뭔가 하고 싶다고  목소리로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아이가  마음을 들여다보고 하고 싶은  무엇인지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우리는 하고 싶은 , 좋아하는 ,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를 찾는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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