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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Oct 28. 2021

둘째가 첫째와 다른 이유

그로잉맘 열일곱 번째 이야기

최근에 그로잉맘에 기고한 글을 보면 둘째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주변에서 둘째는 사랑 그 자체라 하고, 첫째는 이쁘고 둘째는 더 이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그런 마음에서 둘째를 더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기도 했다. 서로 다른 성향과 성별을 가진 아이들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내 마음이 궁금했다.


만 일곱 살이 된 첫째와 나누는 대화의 방향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고, 오가는 대화도 구체적이다. 어릴 때에는 그저 콩순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놀았다면 요즘은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를 알고 있냐고 물어본다. 또는 하늘에 떠 있는 별 중 가장 처음에 반짝인 별이 뭐냐고 물어본다. 나와 남편에게 옛 남자 친구와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그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지금은 마음이 어떠냐고 물어본다. 엄마는 어떻게 자신을 찾아서 뱃속에 품었다가 낳게 되었냐고 물어본다. 세상의 역사와 마음과 생명의 신비가 가득한 질문들이다. 그리고 저녁에 뭘 먹겠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동글동글하게 생긴 파스타 말고 국수처럼 생긴 파스타를 먹고 싶은데 오일 말고 토마토소스가 좋고, 오징어는 없으면 좋겠고 브로콜리는 좋아.’


정확하고 명료한 방향을 제시하는 답변이다.


둘째와의 일상을 떠올려본다.


장면 1.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 나에게 다가오는 아이에게 물었다.

‘넌 왜 이렇게 이쁜 거야? 뭘 먹고 이렇게 이쁜 거야?’

아이가 답한다.

‘똥.’


장면 2. 사용하는 태블릿 PC 전원이 꺼져서 배터리가 없다고 혼잣말을 할 때였다. 둘째가 주섬주섬 뭔가 챙겨서 다가온다. AA 사이즈 건전지를 제 장난감에서 꺼내고 들고 와서는 쓰라고 건네준다.


장면 3. 동네 공원 놀이터에 가면 땅에 너부러진 온갖 종류의 나뭇가지와 꽃잎, 이파리를 주우러 다닌다. 길고 짧은 나뭇가지로 요리도 했다가, 던지기도 했다가, 탑 쌓기도 한다. 그러다 제일 이쁘다고 생각하는 나뭇가지, 꽃잎, 이파리는 자전거 바구니에 잔뜩 담아와서 나에게 건네며 배시시 웃는다.


둘째는 이제 막 제 스스로 세상을 탐험하고 있는 중이다. 어른들의 말을 알아듣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익숙한 단어로 표현한다. 아이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면 내가 스쳐 지나면서 제대로 보지 못한 세상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첫째와 성향도 기질도 다르기에 둘째가 보여주는 세상은 첫째와는 또 달라서 신기할 때가 있다. 모든 일이 처음이고 서툴렀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멀찍이 서서 바라보고 기다려주는 여유가 나에게 생긴 것도 한몫을 한다.


동일한 X, Y염색체가 만나 빚었으나 아이들은 각자 자기 스타일의 DNA를 가지고 있고, 몇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고, 아이들이 주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도 같지 않다. 한 명의 아이는 아이 고유의 태초를 마음속에 품고 제 색깔에 어울리는 우주와 같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고, 아이와 나는 우리만의 시간 축에서 서로를 만난다. 수백수천의 우연이 겹쳐 만난 우리 사이는 결코 아이의 형제자매와 같을 수 없고, 달라야 한다. 나는 매일 살아 숨 쉬는 두 개의 우주를 서로 다른 깊이와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속에서 느끼는 감동 역시 결코 비교할 수도 없다.


태초에 우주에서 커다란 폭발과 함께 별이 생성되었다고 한다. 지금 둘째가 그런 과정을 거치는 듯하다. 머릿속에 커다란 도화지를 펼쳐 놓고 아이가 만난 세상과 사람을 제 색깔로 스케치하고 있는 중은 아닐까. 오늘 저녁에는 오일보다 토마토를 좋아하고 오징어보다 브로콜리를 좋아하는 큰아이와 마주하고 싶다. 그리고 아이가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은 어떤 모습인지, 어떤 색깔을 주고 쓰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우린 각자의 우주를 품고 세상을 살아가는 고유한 존재들이라는 사실도 꼭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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