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신호를 읽는 사람

그로잉맘 스무 번째 이야기

by 아멜리 Amelie

큰아이와 작은아이 모두 콧물을 줄줄 흘리기에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하루 온종일 쉬었던 날이었다. 하루 푹 쉬었으니 다음날에 학교를 보낼까 보내지 말까 고민을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콧물이 조금 흐르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하루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다 보니 아이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불편하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상태를 보고 학교에 갈지 말지 결정을 하자며 잠을 청했다. 누워 있는 아이의 숨소리가 고르지 않았고 힘겨워 보였다. 다행히 집에 호흡기 치료기기가 있어 급하게 치료제를 썼다.

엄마의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잠든 아이를 보는데 밤새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 곁에 새우처럼 몸을 뉘었다. 잠들지 않고 기다렸다가 새벽 1시쯤 잠든 아이를 살짝 부축하듯 안아 한 번 더 호흡기 치료를 했다. 새벽 4시, 아이가 벌떡 일어나 침대 끝에 걸터앉더니 말했다.


“엄마, 숨이 안 쉬어져. 병원에 가고 싶어.”


잠든 남편을 깨워 긴급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남편은 응급실로 가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텐데 아침에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몇 시간을 기다릴 수 있을 정도인지 아닌지 내가 판단할 영역은 아니지만, 집에서 기다리면 내 마음이 곶감처럼 쪼그라들 것이 분명했기에 응급실에 가야만 했다. 코비드로 인해 응급실 보호자는 한 명으로 제한되었고, 누가 아이와 병원에 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남편이 가는 것으로 결정하고 부랴부랴 가방을 쌌다. 응급실을 자주 가봤기에 가방 싸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큰아이는 두 돌에서 세돌 사이에 네 번 입원을 했다. 다른 아이들이 콧물 기침으로 조금 고생하는 감기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해도 아이는 크게 앓았다. 그때마다 자다 깨어 응급실을 갔고, 곧바로 입원 병동으로 올라가는 수속을 밟았다. 그땐 아이는 모두 아프면서 자란다는 말이 주문처럼 들렸다. 그 주문은 조금 더 자라면 안 아플 거라는 기대감이 되었고, 그 기대감이 주는 안도감은 나를 위한 치료제였다.


초등학교 1학년 나이의 아이가 아파서 입원을 하고, 의사는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하니 주문의 효과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의 치료제도 물거품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와 잠든 아이의 손과 발을 주물러주며 생각했다. 지금부터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 하나를 부여잡았고 짧은 글로 끼적이며 다짐했다.


아이가 아픈 것은 아이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다. 아프지 않은 아이가 있다면 아픈 아이도 있고, 짧지만 심하게 앓고 회복하는 아이도 있고, 오랜 시간 아픈 아이도 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아이가 보내는 몸의 신호를 잘 읽는 것, 아이의 몸이 보여주는 신호를 잘 감지하고 신호의 색깔에 맞게 반응하는 것. 아이가 제 스스로 몸의 신호를 인지하고 반응할 수 있을 때까지 곁에서 같이 신호를 읽어 주는 것이 유일하지만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내 역할이 아닐까.


퇴원하고 닷새 정도가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가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은 정신없이 뛰어놀며 땀을 뻘뻘 흘리는 지극히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모두 아프면서 자라고, 크면 안 아플 거라는 효력을 잃은 주문은 꼬깃꼬깃 접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이는 또다시 아플 수 있고, 아프더라도 같이 견딜 수 있다는 내 마음이 효력 만점의 부적으로 자리 잡았다. 언제 어떻게 이 일상이 달라질지 아이도, 나도,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일상이 흔들리는 충격이 다시 찾아와도 지금처럼 잘 대처할 거라는 단단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마음을 꾹 누르고 있다. 더 큰 안도감이 내 마음 깊이 자리 잡는 지금, 엄마로서 마음의 키가 10cm 정도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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