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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Nov 24. 2021

너는 나의 태양, 나의 유일한 햇살

그로잉맘 열아홉 번째 이야기

지난주에 큰 아이는 가을 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했고, 덕분에 한나절은 집이 조용하다. 12시쯤 하교를 하는 작은 어린이는 유치원을 다녀와 여태껏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우리와 마주 앉아 점심을 먹는다. 오후 4시쯤 하교하는 누나를 기다리며 나와 제안서도 같이 쓰고 줌 미팅도 들어가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른다. 


점심을 먹을 때면 언제나 ‘김신영의 정오의 희망곡’ 라디오 프로그램을 틀어 놓는다. 옛날 노래가 흘러나오면 기억나는 몇 소절을 따라 부르기도 하고, 최신 음악에 맞춰 막춤을 추기도 한다. 반복해 듣다 보니 자연스레 외우게 된 광고 CM송은 아이와 합창 대회라도 나온 듯 목청 높여 노래 부른다. 


어느 날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작은 어린이를 번쩍 안아 올려 왈츠를 추듯 거실을 돌아다녔다. 노래가 좋아서일까, 껴안아서일까, 춤을 추어서일까 어린이도 내 목을 껴안고 내 어깨에 제 머리를 파묻었는데 마음이 몽글거렸다. 노래가 다 끝나고도 여윤이 가시지를 않았다.


나도 모르게 이 노래를 불렀다. 어린이가 한참 동안 이 노래를 듣더니 한마디 했다.

“좋아.”


You are my sunshine, my only sunshine 당신은 나의 태양 나의 유일한 햇빛
You make me happy when skies are gray 당신은 하늘이 흐를 때 나에게 행복을 주지요
You’ll never know dear, how much I live you 당신은 알 수 없어요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는지 내 사랑
Please don’t take my sunshine away 제발 나의 행복을 빼앗지 말아 주세요 


큰아이를 낳을 때 13시간 동안 진통을 했고, 안타깝게도 무통주사를 맞을 상황이 아니어서 온전히 내 몸으로 산통을 견뎌야 했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더 많았던 상황이었고, 남편에게 무한반복으로 들을 수 있게 ‘이 노래’를 틀어서 들려달라고 했다. 그 노래는 빌리 조엘(Billy Joel)의 피아노맨(Piano Man).

나의 고통을 모두 씻어줄 수 있는 노래 한 곡을 들려달라고 피아노맨에게 부탁하는 마음과 그 덕분에 아이를 낳고 당당하게 내 두발로 이 병실을 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담은 곡이라 할 수 있다. 열세시간 진통 이후 자연분만은 힘든 상황이 되었고 제왕절개로 큰 아이를 낳고 여섯 시간 가까이 꼼짝 안고 누워있었지만 피아노맨을 원망하진 않았다.


둘째를 낳으러 간 날은 첫째보다 훨씬 편안한 상태로 선곡을 할 수 있었다. 해변에 밀물과 썰물이 오가듯 진통이 왔다 갔다 다시 왔다. (다시 오는 진통은 점점 커졌다) 침대에 반듯하게 누울 수 있는 몸은 아니었기에(통증이 있는 경우 인간은 대체로 똑바로 누울 수가 없다) 병원 침대의 머리 쪽을 세우고 베개를 허리 아래에 쑤셔 넣어 침대에 기대어 누워 내 숨소리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부푼 배를 바라봤다. 나와 둘째가 세상에서 가장 멀리 있는 듯 느껴졌다. 마주할 수 없고 작은 손 꼭 잡아줄 수 없고 내 목소리가 들리냐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는 그곳에 있는 너. 네가 폐호흡을 할 수 있는 순간부터 우리는 마주할 수 있고, 안아줄 수 있고, 얼굴을 쓰다듬어 줄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선곡한 음악은 김광진의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였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멀리 있을 수 없고 딱 달라붙어 있게 되었다. 

마치 딱풀로 붙인 색종이들 마냥. 


아이들이 태어나고 지금까지 우리는 잠들지 전 두 곡의 탄생 곡(?)을 연달아 듣는다.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과 김광진의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 아이들은 본인의 탄생 이야기와 함께 내가 선곡을 한 이유를 전래 동화처럼 들어왔고, 각자 본인의 탄생 곡을 더 좋아하고 명곡이라 여긴다. 며칠 전부터 한 곡을 추가했다. 유 아 마이 선샤인 (You are my sunshine)


너희는 나에게 햇살이지. 

맑고 밝고 넓게 비추는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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