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로잉맘 스물두 번째 이야기

by 아멜리 Amelie

지난해 12월 한국을 다녀왔다. 느닷없는 코로나의 출현으로 달보다 더 멀리 있어 닿을 수 없다 여긴 곳이 한국이었다. 저 멀리 있는 달도 하늘만 올려다보면 보이는데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그곳은 한달음에 달려갈 수 없는 마치 우주의 어느 별처럼 느껴지던 지난 2년이었다. 인천공항에 내린 날은 12월 들어 가장 춥다는 날이었고, 살을 에는 겨울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처음 해보는 코비드 테스트에 또 한 번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큰 아이는 3년 만에 느끼는 추위가 마냥 좋은 지 덥지 않아 좋다는 말만 연신 읊조렸고, 태어나 처음으로 한국의 풍경과 겨울을 만난 작은 아이는 이동하는 자동차 안에서 흘러가는 창 밖 풍경만 말없이 바라봤다. 2년 만에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시 가슴이 벅차 올라 눈물이 찔끔 났다.


서울 동생네에서 얼마간 머무르다 최근에 이사를 하신 대구 부모님 댁으로 내려갔다. 이 방 저 방 다니며 엄마의 살림살이를 구경하고 그간의 변화를 살펴봤다. 부모님 댁에 남아 있는 나의 흔적이라고 한다면 책 정도였는데, 그 책마저 모두 고물상에 넘겨져 내 흔적은 사진첩이 전부였다. 방 한쪽에 오도카니 서 있는 책꽂이 끝에 아주 오래전에 사용한 듯 보이는 공책들이 꽂혀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 썼던 나의 일기장이었다.


어린 시절 나의 글씨체는 동그란 내 얼굴을 닮아 동글동글했다. 방학 때 동네 아이들과 방학 숙제를 같이 한 이야기, 식구들이 모두 감기에 걸려 고생한 이야기, 동생 생일 선물을 마련하러 시장에 다녀온 이야기, 명절에 친척들과 모두 모여 웃고 울었던 이야기, 어린 내가 써 내려간 일기를 읽고 있으니 내 머릿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추억 상자가 단번에 열렸다. 엄마 아빠가 힘드시지 않도록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동생들에게 화를 덜 내고 다정하게 대해줘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공부든 뭐든 혼자 알아서 척척 하겠다고 결심하는 대목에서 콧잔등이 시큰했다. 열 살 무렵의 어린이가 뭘 그리 안다고 이렇게 열심히 후회를 하고 다짐을 했을까 싶었다.


어느 해 추석 풍경은 내 눈앞에 펼쳐지듯 구체적으로 씌어 있었다. 사소한 일로 며느리들을 혼내고, 큰 소리를 내어 명절 분위기를 망치는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가 싫다고 했다. 명절이면 음식 준비와 집안일에 쉴 겨를이 없는 여자들이 너무 안되어 보이고, 왜 남자들은 명절에 쉬고 여자들만 일을 해야 하냐고 토로했다. 일기에는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는 엄마, 아빠의 모습도 많이 담겨있었다. 저녁에 늦게 퇴근하는 들어오는 아빠를 보면서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느라 힘들어하는 아빠의 다리를 더 자주 주물러 드리고 싶다고 했고, 아이 셋을 키우며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어서 빨리 커서 크고 작은 일들 도와드리고 싶어 했다.


마흔이 넘은 내가 이제 막 열 살이 된 나를 바라본다. 그때의 나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각각의 상황과 공간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바라보고 내가 가진 생각에 견주고 판단했다. 그 속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내가 가져야 하는 태도에 대한 다짐도 있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에서 외계인처럼 출현한 아이는 자라며 겪은 일들과 들은 말들 속에서 본인의 생각의 성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지만 모르는 나이라고 할 수 없는 어린이는 나름 단단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적고 체구도 작고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지만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씨방이 크며 과실이 익어가듯 몸과 마음에 작지만 꽉 찬 씨앗 하나 품고 고유한 우주를 만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곁에 있는 나의 아이들을 바라봤다. 우리 아이들도 다 알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세상을 조금씩 배워 나가며 본인이 쌓아 올린 생각의 성 속에서 판단을 하고 있다. 크고 작은 후회도 할 테고, 다짐도 할 것이다. 가끔 마주하기 버거운 상황 앞에서 당황하기도 하고 무안하거나 머쓱해하기도 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답답해 할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게 어렵다고 해서 모른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은 세상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다.

어른들만큼, 아니 어른들보다 더 많이 이미 다 알고 있다. 내가 보는 것보다 더 깊고 넓게 세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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