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잉맘 스물세 번째 이야기
올해로 만 여덟 살이 된 큰 아이는 채식주의자다. 본인이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라 칭하기에 우리도 아이의 취향과 자아를 존중하고 있다. 아이가 모르는 재료로 요리한 음식이 있으면 재료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진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서 셰프가 음식을 소개해주듯 말이다. 재료명에 대한 친절한 안내와 함께 재료가 채소인지 고기인지 정확하게 알려준다. 외식을 할 때에는 메뉴판을 펼쳐 두고 요리와 재료에 대한 설명이 진행된다. 채식주의자의 취사선택을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매 끼니마다 이런 상황이니 밥을 하는 것도 먹이는 것도 지칠 때가 있다.
그나저나 우리 아이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을까?
코비드로 인해 끝도 없이 집에만 갇혀 있을 때 아이들과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곤 했다. 사람만큼 똑똑하고 정이 넘치는 문어 이야기, 인간이 지나치게 많은 물고기를 포획해 몸살을 앓고 있는 바다 이야기, 깊은 바다를 찾아 유영하는 스쿠버들의 이야기까지 주로 바다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았다. 다큐멘터리는 대체로 잔잔하게 흘러갔고, 잔인하다거나 눈살을 찌푸릴 만한 장면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바다 관련 다큐멘터리를 몇 편 보고 난 후 아이는 생선을 더 이상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조금 의아했지만 뭔가 생각한 게 있겠지 싶어 생선을 조리해도 아이를 위해 생선살을 발라주지 않았다. 며칠 몇 주가 지나도 생선을 먹지 않아서 그제야 왜 생선을 먹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바다에 사는 생물을 사람이 죽여서 먹는 거잖아. 난 그렇게 죽여서 먹는 거 싫어.”
아이의 말이 틀리진 않았기에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고, 아이의 생각에 공감을 하는 부분도 있어서 달리 부정도 할 수 없었다. 나도 살아있는 낙지를 뜨거운 물에 바로 넣어 요리를 한다거나, 살아있는 그대로 먹는 것은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곧 돼지고기, 소고기와 같은 고기도 거부하기 시작했다. 생선과 고기 사이에 추가로 시청한 다큐멘터리는 없었고, 고기를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는 말을 한 적도 없었다. 생선과 고기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생성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지점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생명을 해치고 사람이 그것을 먹는다는 것. 여기서부터 머리가 살짝 아파오기 시작했다.
양육자인 나에게 단백질, 탄수화물, 무기질 등이 골고루 포함된 식단을 아이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기에 고기와 생선을 대체할 수 있는 단백질을 찾아 나섰다. 어린이는 달걀물을 입혀 구운 두부는 먹지만 달걀찜은 먹지 않았다. 우유를 싫어하는 아이 덕분에(?) 싱가포르에서 맛난 두유를 찾아 나섰고 아직도 만나지 못해 급기야 해외 배송으로 한국 두유를 주문하기도 했다. 순두부찌개를 끓이고, 간 소고기로 국물을 우려내 미역국을 끓여낸다. 어린이 단백질 섭취에 진심을 다했다.
그러다 어느 날 온 식구가 프라이드치킨을 먹는 식당에 갔고, 아이는 닭다리 하나를 들고 열정적으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물어봤다.
“채식주의자가 닭다리를 먹어? 닭고기도 고기인데?”
“아, 나는 닭고기를 먹는 채식주의자야. 채소를 가장 좋아하고, 닭고기랑 국수를 좋아하고 가끔 초콜릿은 먹지만 사탕은 먹지 않고 사과주스를 좋아하지만 달콤한 주스는 적게 마시려는 채식주의자.”
어쩌면 아이는 자신의 식생활을 스스로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는지, 또 어떤 음식은 손이 잘 가지 않는지 정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음식과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본인의 취향을 찾아가는 중이었는데 어른들이 채식주의자, 육식주의자 등과 같은 단어로 규정짓는 모습을 보면서 그 단어를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는 아이가 건넨 단어를 어른의 시각으로 인식하고 그 틀에 아이를 구겨 넣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후로 우리는 더 이상 채식주의자가 먹을 수 있는 음식, 먹으면 안 되는 음식으로 세상을 나누지 않는다. 대신 어린이 채식주의자가 경험해보면 좋을 식재료, 좋아하는 음식 리스트에 추가해도 좋을 음식 정도로 생각하고 아이에게 먹을 수 있도록 권해본다.
‘닭고기를 먹는 채식주의자’는 아직도 도전하고 경험하는 과정에 있다. 언젠가 아이는 자신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은 자기만의 단어를 찾아낼 것이다.
그 단어가 지구 상에 없다면 아마 만들어내겠지?
우리는 각기 다른 취향과 풍미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다 다른 삶의 주인공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