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엄마 관찰자의 시선

그로잉맘 스물네 번째 이야기

by 아멜리 Amelie

등굣길에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책을 좋아해?”

“음, 책을 읽으면 완전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아서 참 좋아. 낯선 곳에서 익숙한 풍경이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익숙하다고 생각한 곳에서 뜻밖의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하고 말이야. 글을 읽으면서 여유가 있을 때도 있고 마음이 바쁠 때도 있고. 글자를 읽고 있는데 내 몸은 마구 움직이는 느낌. 그게 참 좋아.”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피아노가 좋아?”

“음,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내가 피아노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 악보를 마주 보면서 음표 하나하나를 같이 소리 내어 읽어보고 그 소리가 주는 느낌들을 같이 느끼고, 멜로디를 따라가면서 같이 감동받고 또 그 마음을 피아노와 내가 주고받는 느낌 말이야. 꼭 너랑 지금 대화하듯 피아노랑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그게 참 좋아.”


잠자리에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나무가 좋아?”

“음, 나무는 뿌리는 땅을 향하고 줄기는 하늘을 항해 뻗어 있어서 마치 두 손을 벌리고 서 있는 사람 같아. 푸르른 이파리들은 건강해 보여서 나도 덩달아 건강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밑동이 넓은 나무는 우직해 보여서 매력적이고, 가느다랗고 키가 큰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며 바람이랑 노는 것처럼 보여서 좋아. 보기에 따라서 생각하기에 따라서 나무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을 품고 있어서 참 좋고.”


아이는 느닷없이 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내가 어렸을 때 주로 했던 놀이는 무엇인지, 동생들과 싸운 적이 있는지, 예전 남자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여태껏 여행해본 나라는 어디인지, 어떤 종류의 음악을 좋아하는지, 질문의 유형은 다양하고 주제는 끝이 없다.


아이의 질문이 쏟아질 무렵 온몸과 마음으로 느꼈다.

‘아이는 매 순간 나를 지켜보고 있구나.’


아이는 내가 무심코 하는 행동과 태도를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즐겨 쓰는 말투와 추임새를 따라 하기도 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추측하기도 한다. (아이가 듣는 게 무서워 각종 이니셜과 별명을 활용해 대화를 나누지만 아이는 그마저도 누구를 지칭하는지 찾아내는 것 같다.) 음악을 듣거나 쇼윈도의 옷을 보다가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스타일이면 아이는 ‘엄마 스타일’이라 해주며 나에게 말을 건다.


나를 관찰하는 아이의 시선은 다정함이었다.

‘아이는 나를 사랑하는구나.’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면 아이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내가 가진 우주가 아이를 보듬어주고 안아줄 만큼 넉넉하게 크고 넓은지 알 수 없으나 그 크기에 상관없이 아이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내 그릇이 더 커야 하는데 부족함이 더 많고, 내 마음이 더 넓어야 하는데 뾰족해질 때가 있음에도 아이는 나를 태산처럼 바라보고 조건 없이 사랑하고 있다.


몸속에서 열 달을 키워 아이를 세상에 등장하게 만든 장본인이 나라는 생각에 내가 아이에게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주고 있다고 착각했다. 오히려 아이가 나에게 무한한 사랑이 무엇인지, 다정함은 어떻게 표현하고 보여줘야 하는지 알려준다.


초저녁에 온라인 수업을 듣다가 초콜릿이 먹고 싶어 아이에게 냉장고에 있는 초콜릿 하나 꺼내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오늘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것을 기억해내고 짧은 편지와 함께 초콜릿을 건네줬다. 오늘 또 아이의 다정한 시선과 마음을 통해 애틋한 사랑을 배운다.

그로잉맘_김보민_24.jpg


매거진의 이전글채식주의자인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