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잉맘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지난 연말에 다녀온 한국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코비드 확산 제한 조치로 인해 외부 활동이 자유롭지 않아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가족 친구들과 못다 한 마음을 나누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한국이 그리웠던 큰 아이와 한국을 잘 모르는 작은 아이에게 잊을 수 없는 한국에 대한 기억을 선사했던 시간이었다. 바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보낸 시간이다.
콩나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할머니표 콩나물국과 콩나물무침을 원 없이 먹었다. 지치지도 않고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에 아이들은 끝도 없이 이야기를 했다. 큰 소리로 웃어주시거나 맞장구를 쳐주는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에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이야기꾼이 될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온몸으로 껴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볼을 비비는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에 아이들은 끝도 없이 세상의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돌아보면 나도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중풍으로 오랜 시간 누워 계시다가 국민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작은 체구에 쪽진 머리로 늘 단정하시고 다소곳하셨던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도, 좋은 기억보다 안 좋은 기억이 더 많지만 그럼에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찡해지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울고 웃었던 친구 같은 할머니에 대한 기억도 모두 선명하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나는 많은 손주들 중 하나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유일한 할머니 할아버지였던 분들이니 내가 보내는 마음은 나눠지지도 않았다.
나는 언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았을까?
시골 외가에 가면 외할아버지는 늘 누워계셨다. 의식이 있으신 듯 없으신 듯 커다란 두 눈을 껌벅이며 누워 계신 할아버지 곁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나면 마당으로 들로 쫓아다니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해 추석이었다. 외할아버지가 나를 불러 이렇게 물어보셨다.
“보민이 본(本)이 뭐시고?”
“김녕 김가요.”
“그래, 됐다.”
외할아버지는 성씨 본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씨’가 아닌 ‘가’를 붙여 쓰는 내 모습을 보고 그것을 알면 되었다는 뜻으로 ‘됐다’고 말씀하셨을게다. (지금도 초등학교에서 성씨 본관에 대해 배우는지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하니 내가 아주 옛날 사람이 된 기분이다.) 늘 방안에 누워서 누가 오가는지 들으시기만 하신, 손주 눈 한번 제대로 못 맞춰 주시는 할아버지라 생각했는데 내 발걸음도 목소리도 듣고 계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바깥채에 위패를 모셨을 때 사촌들이 그 방에 들어가기 무섭다고 했을 때에도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어딘가 갇힌 듯 누워만 있었던 할아버지 몸이 자유롭게 훨훨 떠다니고, 할아버지 마음은 우리 옆에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가장 일찍 곁을 떠난 외할아버지보다 조금 더 마주했던 외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추억을 이야기하자면 이박 삼일을 해도 모자랄 정도이고, 같이 기억하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끝이 없는 추억이 쏟아진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런 존재가 아닐까? 항시 자신들을 바라봐주고 눈 맞추고 조건 없이 좋아해 주는 사람들, 굳이 뭔가 잘할 필요도 없고 잘 못해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이들이 오롯이 느끼고 돌아온 덕분에 아이들은 수시로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다시 여행을 다시 가게 되면 또 한국으로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자고 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언젠가 ‘영원히 안녕’하고 떠나서 하늘의 별이 되냐고 물어본다. 아이들은 사랑은 무한하지만 사람은 유한하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내가 이렇게 물었었다.
“할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였어?”
어쩌면 이 질문은 이렇게 풀어쓸 수 있겠다.
“할머니는 그렇게 무한정 주기만 하고 나한테서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아쉬운 게 없어요?”
아이들은 오늘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