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잉맘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저녁 메뉴를 고민하기 싫은 화요일이었다. 저녁으로 토마토소스 스파게티가 어떠냐고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학교에서 점심으로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를 먹었다고 했고, 화요일은 늘 토마토소스 스파게티가 점심메뉴로 나온다고 말하지 않았냐며 말을 덧붙였다. 그제야 화요일 점심으로 나오는 토마토소스 스파게티가 맛있다는 말을 아이가 했던 게 떠올랐다. 토마토를 다시 냉장고에 넣고 주말에 먹다 남긴 오징어 볶음과 참치 전을 데워 한 끼를 해치웠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잠자리에 누워 책장을 넘기듯 하루 일상을 떠올리다 아이와 저녁 메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시간에 잠시 머물렀다.
만약 내가 재택근무를 하지 않고 출근을 했다면 아이들을 돌봐주는 도우미 이모에게 스파게티를 아이들 저녁으로 챙겨달라고 아침에 미리 말했겠지. 이미 점심때 스파게티를 먹은 아이는 저녁에 또 스파게티를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도우미 이모에게 볼멘소리를 했을 수도 있고,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했을 수도 있겠지. 저녁을 양껏 먹지 않은 아이는 자려고 누웠을 때 배에서 울리는 꼬르륵 소리에 배고프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했을 테고, 왜 저녁을 충분히 먹지 않았냐며 꾸지람을 듣는 밤을 맞이했을 수도 있겠지.
그 소소한 한마디, “저녁에 토마토 스파게티 먹을까?”가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와 얼굴을 마주하고 저녁 메뉴를 이야기했던 그 찰나의 시간이 없었다면 저녁 메뉴로 인해 우리가 보낸 저녁 시간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스럽거나 편안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마치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큰 날씨 변화를 일으키는 나비효과처럼 토마토소스 스파게티가 예상하지 않은 결과를 우리 일상에 선사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워킹맘이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질’과 ‘양’ 중 하나를 골라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리고 일하는 엄마가 아이와 질적으로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양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많은 육아 관련 책에서 워킹맘들을 위로하듯 아이와 보낸 절대적인 시간의 양보다 함께한 시간의 질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질적으로 좋은 시간이 과연 무엇일까 한참 고민했던 날들도 있었다. 주말이면 꼭 어디를 나서야 했고, 이왕이면 그곳이 근사하고 새로웠으면 했다.
큰 아이가 네 살이 되었을 때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서울은 할 거리는 많지만 너무 넓었고, 나는 일과 인간관계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었다. 주중에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고, 주말에는 누워서 쉬고 싶다는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고 아이와의 외출을 위한 탐색에도 시들해져 갔다.
그때 선택한 우리의 놀이터는 양평에 있는 주말 농장이었다. 일 년에 7만 원만 내면 우리는 땅을 빌릴 수 있었고 여러 채소의 모종도 얻을 수 있었다. 바람이 포근해지고 땅이 카스텔라처럼 보드라울 때 상추, 방울토마토, 가지, 옥수수 모종을 심었다. 양평에 두고 온 아이를 키우는 마음으로 온 식구가 토요일마다 주말 농장에 갔다. 모종에 물을 주고, 피를 뽑고, 원두막에 앉아 간식을 먹기도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초보 농사꾼에게 작은 밭떼기에서 해야 하는 일보다 놀아야 하는 일이 더 중요했기에 밭에 물을 주고 피를 뽑는 한두 시간도 놀이에 불과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 온종일 흙에서 놀 수 있었다. 잘하지 못하는 밭일이었기에 욕심도 없었고, 그저 자연 속에 파묻혀 아이와 흙놀이를 하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놀았다. 조급할 것 없고 서두르지 않고 마음 놓고 놀면서 별 것 아닌 일에 같이 웃고 울었다..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 하늘, 해의 움직임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여러 느낌의 초록을 보여준 산,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 향기도 강도도 같은 적이 없었던 바람, 해가 질 때의 쓸쓸함, 아이들 눈빛만큼 이쁘게 빛나던 윤슬, 무엇 하나 잊을 수가 없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하루 온종일을 산에 둘러싸인 밭에서 놀고 오면 일주일 동안 아이와 자주 마주하지 못해도 아이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는 별것 아닌 일을 같이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재택을 하면서 양평을 오가던 그때의 큰아이 나이가 된 둘째 아이를 본다. 자동차와 기차와 공룡과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매일 아이의 기호가 다르고 놀이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아이를 들여다볼 기회가 많으니 아이와의 대화도 빠른 속도로 본론에 이를 수 있다. 어느 정도 확보되었던 시간의 양을 통해 우리는 질적으로 좋은 시간을 누릴 준비가 된 것이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이 중요한 지, 질이 중요한 지 묻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음식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 오랜 시간 천천히 익혀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는 요리가 있고, 센 불에 빠르게 조리해야 그 맛이 남다른 요리가 있듯이 우리가 아이와 보내는 순간에도 그에 맞게 필요한 시간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가진 유한한 시간에서 한 덩이 뚝 떼어 아이와 보내는 순간도,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시간도 아이와 우리 사이를 각기 다른 빛깔로 연결하고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