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잉맘 서른 번째 이야기
지난 주말, 2박 3일 일정으로 말레이시아 페낭 출장을 다녀왔다. 코비드가 터지고 2년 만에 가는 출장이었고,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었다. 내가 먼저 공항 간다고 나서면 아이들이 헤어지기 싫어서 울까 봐 미리 아이들과 남편을 내보냈다. 혼자 공항에 가서 출국 수속을 밟고 커피를 한잔 마시는데 온 몸이 가벼운 느낌에 어색하기도 했고 홀가분하기도 했다.
페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일은 쏟아졌고,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전화 통화를 할 겨를 조차 없었다. 일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아이들 기상 시간에 맞춰 전화할 여유를 얻었다. 아이들은 내가 묵고 있는 호텔 방을 보여달라고 했고, 자신들도 호텔에 가고 싶다고 했다. 어젠 아빠와 재미있게 잘 놀았고, 오늘은 친구네 집에서 바비큐를 하고 놀 거라며 즐거워했다. 엄마가 보고 싶냐고 물었더니 아주 담백한 목소리로 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하늘땅만큼 너희들이 보고 싶다고 했고, 서둘러 전화를 끊고 호텔을 나서서 일을 하러 갔다.
페낭에서 싱가포르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연착되어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쿨쿨 잠든 아이들 얼굴을 들여다보니 비로소 집에 왔다는 게 실감 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 늦은 밤 남편과 마주 앉아 각자의 주말 시간을 나눴다.
장면 1.
토요일 아침, 시내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데 작은 아이가 멍하게 앉아 있었다고 했다.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어보니 아이가 이렇게 대답을 했단다.
“엄마 생각해. 엄마가 비행기를 타고 말레이시아에 가.”
장면 2.
토요일 저녁, 집에서 저녁을 먹다가 어쩌다 내 이야기가 나왔는데 큰 아이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엄마 이야기 그만해. 나 지금 눈물 날 것 같아.”
아이들이 눈뜨기만을 기다린 아침이었다. 아이들이 일어나면 온몸으로 껴안아주고 내가 없는 동안 잘 지냈냐고 물어볼 참이었다. 큰 아이가 먼저 일어나 거실로 나왔고, 여느 날과 다름없는 얼굴과 목소리라 ‘엄마 안녕’이라 인사를 하고 늘 앉는 곳에 앉았다. 며칠 만에 만나 너무 반갑다는 몸짓도 없고, 보고 싶었다며 품에 안기지도 않았다. 작은 아이가 부스스한 얼굴로 거실에 등장했다. 이 녀석은 달려들어 안기겠지 기대했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작은 아이도 ‘엄마 안녕’이라 인사를 하고 늘 하던 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자동차 장난감 두어 개를 집어서는 늘 앉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멍한 얼굴로 아침을 맞이 했다.
잠깐 섭섭했다. 주말 내내 나 없이 지냈으면서, 아빠한테는 엄마가 생각난다고 말했으면서 내가 이렇게 있는데 왜 둘 다 반갑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 건가 싶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올 시간이었다. 대문 넘어 아이 목소리가 들리는데 신발을 집어던지고 한달음에 집안으로 달려들어올 기세다. 아이가 말한다. “엄마, 집에 있어?”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데 빛줄기 같은 생각 하나가 번뜩이며 지나갔다. 아이들은 나를 좋아하고 내가 집에 머무르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가 없는 시간과 공간에서도 아이들은 자신들이 지켜온 일상들을 만들어 나간다. 식사 시간이 되면 둘이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고, 각자 좋아하는 놀이를 스스로 찾아 하고, 좋아하는 옷을 골라 입으며 외출 준비를 하고, 자기 전에 좋아하는 책을 골라서 아빠에게 읽어달라고 한다. 엄마가 생각나면 잠깐 머릿속으로 엄마 생각을 하지만 곧바로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엄마가 출장을 마치면 집에 돌아올 것을 알기에 징징거리지 않을 수 있다.
아이들은 나의 빈자리를 공허함이나 공백으로 여기지 않고 빈자리가 채워질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며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제 삶과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자신들 곁에 있든 없든.
나는 늘 나의 심장과 아이들의 심장에 빨간 털실이 연결되어 있다는 상상을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 우리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실타래의 실이 술술 풀리는 상상도 한다. 짧은 출장을 다녀온 지금, 아이들과 나를 연결하고 있는 실타래의 실이 엄청 많이 풀려서 내 손에 쥐어진 실뭉치가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내가 아이들 곁에 꼭 붙어 있지 않아도 아이들은 마음으로 나를 느낄 수 있고, 아이들 스스로 안정적으로 일상을 영위하는 모습을 경험했으니 말이다.
너희가 내 눈앞에 없어도 내 삶이 유지되고, 내가 너희들 눈앞에 없어도 너희들의 삶이 유지된다는 것, 우린 아주 큰 일을 경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