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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May 04. 2023

닌자고 캐릭터를 둘러싼 아이들의 자랑과 시기

남편은 닌자고 캐릭터를 여기저기 그리는라 꽤 분주하다.


어느 날부터 둘째 아이가 ‘닌자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게 뭐야?”

"레고에 닌자고가 있어. 로이드, 제이, 카이, 센세이가 닌자고 이름이야.”

“그걸 어떻게 알게 되었어? 엄마도 모르는데?”

“마커스가 알려줬어. 마커스는 닌자고 레고가 엄청 많아.”


마커스는 둘째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막내아들 이름이다. 둘째는 가정형 보육 기관을 다니고 있는데 집 한쪽은 선생님 가족들이 생활하고 집 한쪽은 어린이집인 곳이다. 선생님은 아이 셋을 키우는 워킹맘으로 큰 아이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둘째는 중학생, 셋째는 초등학교 3학년인 마커스. 마커스는 하교하고 돌아오면 엄마가 있는 어린이집으로 등교(?)해 자신의 레고를 꺼내어 그때까지 어린이집에 머무는 아이들과 플레이룸에서 같이 논다. 


닌자고에 눈을 뜬 아이는 어느 날부터 하굣길에 시무룩했다. 어린이집에서 마커스, 윌(동갑내기 어린이집 친구)과 닌자고 레고를 가지고 실컷 놀았지만, 집에 가면 자신의 닌자고는 없다는 게 속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닌자고 레고 캐릭터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가 아니면 장난감을 사주지 않은 나로서는 이런 아이를 달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동갑내기 친구 윌도 닌자고 레고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세상 모든 어린이가  크리스마스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그러던 어느 날, 동갑내기 친구 윌이 닌자고 레고를 장만(?)한 모양인지 등굣길에 만난 둘째 아이에게 본인의 닌자고 캐릭터를 보여줬다. 그때부터 어린이집을 오갈 때마다 나와 남편은 닌자고 레고를 사고 싶고 갖고 싶다는 아이와 더 힘든 씨름을 해야만 했다. 어린이집에는 원칙이 있었는데 장난감을 가지고 와도 어린이집에 머무는 시간 동안은 절대 꺼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동갑내기 친구 윌도 닌자고 캐릭터 레고를 가지고 올 수는 있지만 겉옷 주머니에 꽁꽁 숨겨 뒀다가 하굣길에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정도였다. 순식간에 이뤄지는 자랑이지만 아이들에게 그 모습은 강렬했기에 집에 오는 내내, 잠들기 전까지 둘째 아이는 윌이 가지고 있는 닌자고 레고에 온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던 어느 날 중고 장난감을 파는 가게에서 닌자고 레고 ‘제이’ 캐릭터를 발견했다.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되는 그 레고 캐릭터가 뭐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이는 행복해했다. 그리하여 아이도 그 빨간 닌자고 캐릭터를 겉옷 주머니에 넣어 등교하기 시작했다. 레고를 잃어버릴까 봐 등교 내내 호주머니에 들어간 손은 나올 생각이 없고, 지퍼로 주머니를 잠글 수 있는 겉옷만 챙겨 입었다. 하굣길이 되어서야 그 주머니의 지퍼는 열렸고, 세상 밖에 나온 레고 캐릭터를 동갑내기 친구 윌이 세상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도록 허공에 흔들어 댔다. (아마 윌의 집에서도 우리집과 비슷한 상황들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아이들의 속옷을 사러 대형 매장에 들렀다가 닌자고 캐릭터가 그려진 잠옷 한 벌을 발견했는데 세일까지 하고 있었다. 손에 쥐는 레고는 다 사 줄 수 없지만 잘 때마다 이 잠옷을 입으면 아이가 즐거워할 것 같아 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 잠옷 한 벌을 샀다.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그 잠옷을 좋아했다.


“엄마, 나 학교 갈 때 잠옷 티셔츠 입고 가도 돼?”

“네가 그 티셔츠를 입고 가면 윌이 너무 속상할 것 같아. 윌도 닌자고를 좋아하는데 너랑 같은 티셔츠가 없으면 얼마나 갖고 싶겠어.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친구한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만약에 친구가 그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괜히 섭섭하고 속상해질 수 있어. 친구가 속상해하면 네 마음도 안 좋을 거야. 그 티셔츠는 내일 안 입는 게 좋겠어.”


이 말을 끝냄과 동시에 아이는 잠자기를 거부하며 티셔츠를 입게 해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고, 하루 일정에 지쳤던 나는 그럼 한 번만 입고 가라며 아이를 다독여 재웠다.


다음 날, 아이는 세상 누구보다 밝은 표정으로 닌자고 잠옷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갔다.

아이가 아빠 차를 타고 하교를 했다. 닌자고 잠옷 티셔츠를 뒤집어 입어 캐릭터가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가 아이에게 물어봤다.


선생님이 닌자고 캐릭터 안 보이게 뒤집어 입으라고 했어.

아이는 캐릭터가 보이도록 티셔츠를 뒤집어 입으며 설명했다. 선생님도 닌자고 캐릭터를 둘러싼 아이들의 자랑과 시기, 질투의 대서사를 알고 계신 듯 했다. 


자신이 가진 것을 과시하기 위해 한 행동이 친구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아이는 경험으로 알게 되었을까?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비싸고 좋은 것을 소유한다는 것을 보여주느라 분주하다. 그 좋은 것의 쓰임새가 오롯이 과시에 있는 듯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온 마음으로 좋아하기에도 시간은 모자라는데 보여주려 애쓰는 것에만 급급하다면 좋아하는 그 ‘마음’은 진짜일까?


비가 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 아이는 어린이집 플레이룸에서 마커스의 레고를 꺼내어 놀다 온다. 아이들이 닌자고 레고를 하나 더 소유하는 것보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을 한 시간 동안 4살 많은 형과 동갑내기 친구와 닌자고 캐릭터를 가지고 그들만이 꾸며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더 값지게 다가온다.


다행히 오늘은 비가 오고, 아이는 플레이룸에서 놀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어린이집에 갔다. 마커스와 윌, 아이는 닌자고의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까? 문득 나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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