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아주 다양한 종류의 중독이 있다. 돈을 흥청망청 써버리고 알거지가 되어도 정신을 못차리는 중독도 있고, 건강을 송두리째 빼앗겨 제대로된 몸뚱아리 조차 남지 않을 중독도 있고, 시간을 훔쳐가는 도둑이 몰래 들어와 시간을 한움큼 가져가도 모를 만큼 그 속에 빠진 채 허덕이는 중독도 있다.
나는 활자 중독자다. 노래를 들으며 길을 걸으면 가사를 곱씹거나 간판을 따라 읽어야 한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페북 글을 읽거나 또는 남기거나 뭐든 읽고 읽어야 한다. 회의 시간엔 남들이 하는 말을 손으로 쓰며 따라 간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토끼의 손을 잡고 미지의 세계에 따라가듯 말이다. 가끔 남이 써 놓은 글을 다시 써보는 이상한 짓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안내판이 하나 있는데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새어 자동차를 부식시킬 수 도 있으니 참고하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문장의 주술관계와 부사 위치, 너무 길게 쓴 문장이 마음에 안들어 그 안내판을 볼 때마다 머리속으로 다시 쓰기를 한다. (심지어 글을 다시 써서 관리실에 가져가야겠다는 마음이 커지는 날도 있다. 이놈의 오지랖)
집에 옷보다 그릇보다 아이 장난감 보다 책이 많다. 가끔 남편은 청소를 하다가 호흡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고 심지어 울지도 않는 책에 화를 낼 때가 있다. 책상에 몇 권, 거실 테이블에 몇 권, 침대 옆에 몇 권, 소파 옆에 위에 아래에 책 몇 권이 나뒹구는 것을 치우다 뭔가 치밀어 오르는거다. 치우고 또 치웠는데도 누가 갖다 놓은 것처럼 등장하는 종이 나부랭이가 싫기 때문이다.
책이 좋아서 육아 휴직 기간 동안 동네 도서관에서 엄마들이 동화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독서 동아리에 가입했었다. 제일 앞에 앉아 있어서인지, 나이가 제일 어렸는지 아니면 말을 많이 해서인지 기억은 잘 안지만 엉겹결에 회장을 맡았다. 9개월 동안 매주 수요일 오전에 도서관 동아리방에 모여 앉아 한 주 동안 아이와 같이 읽은 동화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주요 활동이었다. (이때부터 동화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동화책을 읽다 엉엉 울며 아이를 부둥켜 안은 날들의 연속이었고, 할아버지부터 고양이까지 성대모사 능력은 나날이 높아졌고, 아이를 재우다 이야기를 지어내고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얼마나 즐거웠는 지 이 시간을 회상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책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이미 눈은 빛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독서 교육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은 애시당초 없었다. 내가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들을때 가장 행복해하니 책을 읽는 나를 아이가 보며 '저 여자가 지금 행복하구나. 행복해서 저렇게 울고 웃고 떠드는구나. 저 여자가 행복하니 나도 안심이 되네' 정도로만 생각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지금도 아이는 내가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거나 전단지를 보고 있으면 '뭐 그리 재밌는 걸 보나' 하는 얼굴로 내가 보던 걸 빼앗는다. 빼앗아 보면 딸기맛 알사탕을 닮은 홍삼 캔디인데 말이다.
한 해 독서 동아리 활동을 마무리하고 돌아보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을 했었다. 서른 중순에 개근상 정도는 거뜬히 받을만큼 열성을 보였다. 도서관 사람들도 나의 열정을 봤는 지 연말에 공로상(?) 같은 상도 받았다. 독서 모임이 서울시 우수 독서동아리에 선정되기도 했다. 작년에 2기 모임이 시작되었고, 나는 회사로 돌아왔다. 2기가 마무리될 무렵, 문집에 들어갈 1기 회장의 인사글을 담고 싶다는 요청이 왔다. 누가 글 써달라는 부탁엔 열일 재쳐두고 뛰어들기에 잠든 아이 옆에 누워 핸드폰을 들고 줄줄 써내려갔다. 책이야기는 세상 제일 행복한 이야기이고 할 말도 나눌 말도 천지삐까리여서 뭍에서 힘겹게 기어다니는 거북이가 물 속에서 유유히 수영하듯 써내려갔다.
가끔 동화책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 나가고 싶다. 혼자 읽고 혼자 울고 혼자 웃는 책 말고 같이 읽고 같이 울고 같이 웃는 책 이야기가 라디오스타보다 더 재미있을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집 인사말이다. 다시 보니 이 글을 쓰던 작년 10월보다 지금의 나와 아이는 조금 성장한 것 같다.
성장은 꼭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뜻하지는 않는다. 깊어지고 넓어졌다. 자꾸만 자란다. 그래서 좋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만 2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올린 나무 블럭마냥 시나브로 들어온 어른들의 입말을 작고 여린 입술로 노래하듯 내뱉습니다.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입말을 받아 써 봅니다. 그 속에는 아이가 그 동안 바라봤던 세상이 있습니다. 하늘, 구름, 햇살, 달님, 별님이 바람결에 춤을 춥니다. 나뭇가지에 걸터 앉은 비둘기와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이 숨바꼭질을 합니다. 개미와 작은 돌멩이가 씨름을 하고, 강아지와 달팽이는 달리기를 합니다. 아이가 노니는 세상의 끝이 어디인지 궁금할 정도로 넓고 깊고 높습니다. 아무도 아이를 가르치지 않았지만 아이는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세상 그대로의 모습을 아무런 편견없이 배우고 있었습니다.
먹물을 그대로 흡수하는 화선지같은 아이에게 책이란 뭘까 수도 없이 고민합니다. 어떤 책을 보여주고, 어떻게 들려줘야할 지 고민하는 방법론적인 접근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왜 책이어야 할까요. 가끔은 책이 나에겐 무엇인지도 되짚어 봅니다. 어린시절 세상에 움직이는 것이라곤 시계 바늘밖에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집중해 읽어내려간 글들이있었습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찍힌 쉼표가 나의 들숨과 날숨이었고, 문장 마지막을 장식한 마침표와 느낌표는 터져나오는 한숨이기도 했습니다. 책 속에 묻혀 있다 고개를 들면 넓은 캔버스같이 펼쳐진 하늘에 주인공의 얼굴과 서사의 흐름이 담긴 구름이 넘실 거릴 때가 있었습니다. 심장 한쪽이 지릿하게 저며오는 감동과 할머니 뱃가죽처럼 굴곡진 주인공의 인생사가 주는 교훈, 단어와 문장과 문단 사이의 작은 공간에서 터져나오는 생각에서 우린 책의 기쁨을 만끽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책은 들기름 같은 존재이면 좋겠습니다. 일상이란 밥알의 사이 사이를 채워 질리지 않는 구수한 풍미로 밥맛을 내는 들기름 같은 책, 현실이란 보리밥 아래에 숨어 있으면서 입속에 들어와야만 퍼지는 고소함으로 꿈과 미래, 상상을 향한 여행을 만끽하게 만드는 들기름 같은 책 말이지요.
아이가 가끔 함께 읽어내려간 책장을 펼쳐 놓고 하염없이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아이는 그 장면에서 주인공도 되었다가, 달님으로도 변신합니다. 달님의 눈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풀꽃의 시선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합니다. 아이가 꿈꾸는 시간이 바로 이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시간을 아이가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우리는 지금도 아이와 나란히 앉아 책을 마주합니다.
맘스북스가 두번째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엄마들의 책여행 시간만큼 우리 아이들의 세상도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엄마들도 성장했겠지요. 맘스북스라는 즐거운 책 여행의 마침표에서 아이들의 새로운 꿈의 세계가 열리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