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를 다시 가면 어디를 가고 싶어? 라고 남편이 물었다.
울룰루(Uluru). 영어로 에어즈롹(Ayers Rock)이라 불리는 호주 한가운데 덩그렇게 놓여 있는 바위. 아마 사막에 대한 강열한 경험이 잊히지 않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떠올린 게 아닐까. 스무살에 호주에 왔을 때 거금을 들여 떠난 여행이 사막 여행이었다. 시드니 씨티에 있는 현지 여행사에 혼자 가서 여러가지 투어를 살펴보던 중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게 사막 투어였다. 미국 사람 1, 호주 사람1, 영국 사람 2, 일본 사람 2 그리고 나 이렇게 일곱명이 가이드와 함께 지프차를 타고 열흘 동안 사막 횡단을 했고 종착지는 울룰루였다. 밤엔 사막 한가운데 모닥불을 지피고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밤하늘에 별이 얼마나 많은지 별로 만든 이불을 덮은 느낌이었다. 낮엔 사막 옆 도로를 달려 호주 원주민들 마을도 가고 신기한 지형을 구경하기도 했다. 또다시 저녁이면 말도 잘 통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영국에서 온 남자아이는 나와 동갑이었다. 영어는 잘 못했지만 동갑내기라는 공통점이 우리를 친구로 만들어주었다. 고등학교 내내 파트타이머로 일하며 돈을 모았다고 했다. 이번 여행이 끝나면 호주에서 또 일을 해 돈을 모아 세계여행을 떠날 거라고 했다. 대학은 가고싶을 때 가도 늦지 않으니 여행을 실컷 하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나와 동갑의 영국에 사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너무 우물 안 개구리 같았고 온실 속에서 자란 꽃도 아닌 잡초처럼 느껴졌다. 난 잡초인데 괜히 온실에서 자라 생명력도 질기지 않아 보였다.
난 무엇을 하고 싶어서 남쪽 나라로 날아갔을까.
국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영어를 배우러 호주에 간다고 했을 때 학과에서는 나름 이단아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건 변화를 무서워하는 동네에서나 히한한 사람으로 취급당했을 뿐 크게 놓고 보면 그닥 유별날 것 없는 아이였다. 오히려 호주를 다녀와서 점차 동네에서 부담스러워하는 인간으로 변해갔다. 유별나고 특이해서 싹뚝 잘라내지 않으면 미운오리새끼가 될 것 같은 존재. 영국인 친구는 자라면서 사람들과 세상과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기에 나와 똑같은 나이에 훨씬 더 독립적이고 책임감이 있을까 생각했다. 부모 도움 받고 여기까지 와서 그 돈으로 투어 하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 아이와 울룰루를 한바퀴 걸으며 밥은 주로 뭘 먹는 지, 학교에 안가는 주말에는 뭘하는 지, 영어 외 다른 언어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지, 어디까지 여행을 다녀봤는 지 물어봤다. 영국 아이는 한국을 잘 몰랐고 자꾸만 일본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나는 일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둘다 미국에 가보고 싶다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울룰루를 걷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미국인 할머니도 만났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할머니는 남편과 4년째 세계여행 중이라 했고 인도네시아에서 수개월을 보내고 호주로 온 지 한달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일년에 한번 가족들을 만나러 미국에 간다고 했고 호주 여행이 끝나면 뉴질랜드로 간다고 했다. 한참 같이 걷다가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둘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키스를 하며 사랑을 과시했고 어린 나는 그 키스에 깜짝놀라 멍하니 지평선의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하염없이 펼쳐진 호주의 하늘을 바라봤다.
스무살에 이국땅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저 다르게 생긴 자체가 신기했고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가 생긴꼴만큼이나 나와 달라서 놀라웠다.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 생겼을까 싶다가, 내가 유럽이나 미국땅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싶다가,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다다르면 한국에 돌아가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지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은 멜번에서 시드니로 넘어온 날이다. 돈이 없어 쨈만 바른 마른 식빵을 먹으며 책을 읽곤 했던 시드니 달링하버에 왔다. 그 때 본 기억이 없는 놀이터가 있다. 그 땐 놀이터가 있었어도 관심이 없어서 쳐다도 안 봤을 수도 있다. 이 곳에 앉아 십 수년 전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보니 할머니가 된 것 같다. 아이는 놀이터 모래에 주저 앉아 모래성을 쌓고 놀고 나는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가늠해보려 노력중이다.
울룰루에서 만났던 영국 친구는 세계여행을 마무리하고 영국에 돌아가 나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살고 있을까. 미국 할머니 부부는 세계여행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고 있을까 아니면 이 세상을 영영 떠나 다른 세상을 여행 중일까. 세월이 흘렀고 세상은 변했다. 그만큼 나도 달라졌음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자신을 찾으러 여행을 떠난다고 하던데 이럴 때 쓰는 말인가보다. 그러고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여행중이란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에서 울룰루는 못갔다. 언젠가 사막이 어떤 곳인지 아이가 궁금해하는 순간이 오면 아이를 핑계로 다시 가야겠다. 그래! 또 떠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