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를 받는 대가로 일을 하는 시간, 코딱지 취침 시간, 두명 이상이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 정도를 빼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굼뜨다. 굼뜬 정도가 코알라 수준이다. 한발 떼고 앞이나 옆으로 몸을 옮기는 데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굼뜬 게 게으름을 뜻하는 건 아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해야할 일과 하고싶은 일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걸 말한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다. 거실에서 빨래통에 빨랫감을 던지러 베란다로 가는 게 목적이다. 가는 길은 약 5미터 정도. 가는 길에 식탁에 놓인 신문의 헤드라인에 눈길을 살짝 보내본다. 뭔가 궁금해지는 내용이라 느껴지면 곧바로 신문을 펼쳐 서너개의 문단을 읽어 내려간다. 생각과 다른 전개라면 재빨리 마지막 문단으로 눈길을 인도하고 괜찮은 내용이라면 신문을 뒤적이며 관련 기사가 더 있는 지 찾는다. 그러다 뭔가 눈에 꽂히는 게 보일 땐 커피 머신 전원을 켜고 본격적으로 읽을 준비에 들어간다. 커피를 진하게 마실 지 연하게 마실 지 잠깐 고민하고 행동에 옮긴 후 과일을 같이 먹을 지 말지도 덩달아 생각해본 후 식탁에 착석한다. 그 순간 코딱지가 쉬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면 고개를 갸웃하며 아쉬운 제스쳐를 취한 후 화장실에 가서 코딱지의 욕구 해소를 도와준 후 다시 펼쳐 놓은 먹잇감에 눈길을 보내며 착석한다. 그 사이 빨랫감은? 식탁 의자 한 켠에 마치 마른 빨래가 옷장 서랍에 들어갈 준비를 하듯 여유있게 널부러져 있을 거다.
일상이 이러하니 동네 시장을 가나 비행기를 열시간 타고 가나 똑같다. 이번 호주 여행은 아이와 단 둘이 열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야하고 짐을 찾아 또다시 국내선을 갈아타야했기에 긴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를 혼자 돌보는 상황이 열흘 넘게 전개되면서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에 이유 없는 미소가 입가에 번지거나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어깨춤이 저절로 나오는 상황은 아니었다. 단둘이 일상을 유지해나가며 입 속이 부르터서 남들은 잘 모르는 피곤함이 상당했다. 내 몸이 피곤해서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터져나오는 짜증이 큰 비에 댐 수문 열어놓은 듯 터져나올까봐 조바심이 났던 날들도 있었다. 출발하는 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와와 가져가야하는 물건을 메모자에 써내려갈 때 비로소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웅크린 어른 하나 들어갈만한 커다란 여행가방, 혼자 펴고 접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여행용 유모차, 코딱지가 좋아하는 미니마우스 여행 가방, 기내용 가방까지 정리했다. 킥보드를 가져갈까말까 백만번 고민하다가 코딱지의 행복이 나의 불행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녀석은 집에 두고 나섰다.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를 때까지 완벽했다. 공항 버스에는 코딱지와 나를 포함해 단 4명이 탑승했다. 조용한 버스에서 너무 흥분한 코딱지는 각종 감정 상태를 표출했다. 노래와 웃음까진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다왔어?'를 노래처럼 부르던 아이는 삼십분이 넘어가자 지겨움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악을 쓰기 시작했고 급기야 쉬가 마렵다며 화장실에 가자고 했다. 우린 한강이 보이는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었다.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챙겨온 기저귀 한 장을 빛의 속도로 입힌 후 마음껏 쉬를 하라고 웃어주었다. 아이는 쉬를 하고 얼마 후 응아를 해야한다고 했다. 응아도 기저귀에 하라고 하니 화장실에 가야할 수 있다고 목청껏 외치며 항의를 하기 시작한다. 안아주겠다고 하자 자신은 걷겠다고 했고 걸어다닐 수 없는 곳이라고 하자 또다시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악다구니를 쓰기 시작했다. 이게 30개월 산 인간과 함께하는 여행이지 하는,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이 담긴 길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참새처럼 뛰어다닐 수 있는 공항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인터넷 면세점에서 각종 할인을 받아 기분 좋게 결제한 화장품을 찾는 것도 문제 없이 해치웠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코딱지와 테니스 공으로 축구를 하며 시간을 채웠다. 그래 또 여기까지 좋았다.
밤 비행기를 탔기에 기대한 바가 참으로 많았다. 남이 주는 저녁밥을 냠냠 먹는다. 피곤한 하루를 보낸 아이가 쿨쿨 잠을 잔다. 행복에 겨워 눈물 지으며 영화 하나는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 것까지 보고 무겁지만 애써 챙겨온 책 한권을 단숨에 읽어내려가며 남이 내려주어 더 맛난 커피를 홀짝이며 마신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의 저녁 밥이 먼저 나왔고 아이는 스파게티 면을 호록호록 청소기가 빨아들이 듯 먹었다. 기류 이상으로 비행기가 많이 흔들린다는 기내 방송이 나온다. terbulence 라는 단어가 귀에 꽂힐 때 아직 영어 실력이 죽지 않았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아이는 방송이 끝나자 동시네 지렁이처럼 몸을 배배꼰다. 몸으로 뭔가 보여주는 것은 같은데 해석할 능력이 떨어지는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며 짧은 지식을 총 동원했다. 졸려서 저러나, 밥을 먹으니 피곤이 몰려오나, 비행기가 지루해서 저러나, 뭘 꺼내줘야하나......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실타래마냥 줄줄 쏟아지는 그 순간, 아이는 갑자기 몸을 곧추 세우더니 좀 전에 먹었던 스파게티를 줄줄 쏟아냈다.
멀미. 아이는 멀미와 첫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비행기를 처음 타는 것도 아닌데 기류 이상으로 멀미를 하는 것은 처음 알았다. 스페인에 가면 토마토를 던지는 축제가 있다는데 우리가 딱 그 꼴이었다. 축제는 끝났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이가 나를 봤다. 끌어안아주고 싶은데 각종 잔해가 우리를 방해하기에 정신을 차려 옷부터 벗겨줬다. 토사물은 액세서리마냥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맨몸의 아이를 보니 또다시 정신이 든다. 여분의 옷이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승무원을 불러 비닐 봉지와 담요를 부탁했다. 승무원은 옷을 빨아 말려보겠다고 했다. 담요 두장으로 옷을 지어 입혔다. 까슬까슬한 담요의 촉감이 싫었던 아이는 담요 옷을 거부했다. 잠든 아이는 밤새도록 담요를 걷어 찼고 난 걷어차인 담요를 주섬주섬 주어 아이 배를 덮어줬다. 밤.새.도.록.
브리즈번 공항에 내렸다. 아이의 옷은 승무원의 애정에도 불구하고 마르지 않았다. 아이는 항공사 담요로 치장하고 호주 땅을 밟았다. 우린 그나마 지상에 발을 디딘 자체만으로 행복했다. 뜬 눈으로 지샌 건 나였는데 땅에 내리자마자 아이는 쿨쿨 잤다. 유모차를 끌고 어른 사이즈의 가방을 찾아 세관을 통과했다. 시간도 제대로 못보고 다녔다. 사람들에 떠밀려 가다보면 멜번에 가 있을거라 생각했다. 멜번행 티켓을 받으러 갔다. 비행기 이륙 준비가 끝나 못 탄다고 호주 억양의 아저씨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타게 해달라고 했다. 안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듯 말하며 항공 티켓을 구입한 항공사에 가서 해결하란다. 항공사 담요로 멋을 낸 아이를 데리고 동서남북이 어디인 지도 모르는 처음 온 공항을 한참 뛰어다닌 후에야 항공사를 찾았다. 다행히 한시간 후 날아갈 예정인 비행기 티켓을 얻어 다시 움직일 준비를 했다. 짐가방에서 가까스로 꺼낸 옷을 아이에게 입히고 커피 한 잔 마시려고 지갑을 열었는데 지갑엔 대한민국 남한에서만 사용 가능한 체크카드 한 장과 푸르른 일만원 권 한 장, 그리고 20대 초반의 어여쁜 내 모습이 담긴 빛바랜 사진이 붙어 있는 주민등록증만 있었다. 흔하디 흔한 신용카드 한 장이 내 지갑 속엔 없었다. 이 곳에서 내 힘으로 커피 한 잔 못 산다는 좌절감에 토냄새의 여운이 몸에 붙어 있는 아이를 꼭 껴안았다. 시장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라고는 하나 지갑마저 이렇게 쓸모 없이 홀가분한 모습일 줄 몰랐다. 다행히 멜번 가는 비행기에서 나이 많은 승무원 언니가 쿠키 하나와 커피 한 잔을 건네줬다. 후후 불며 호로록 마시는데 여태 마신 커피 중 가장 맛있는, 위로의 맛이 났다.
비로소 멜번에 도착했다. 토냄새 나는 여자 아이와 대한민국 국적을 지갑 내용물로 증명할 수 있는 여자 사람이 멜번 땅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