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대학교 동기가 단체 카톡으로 교수님의 부고를 전했다. 구비문학을 가르쳐주셨는데 구비문학 학회 활동을 했던터라 가끔 선생님이 주신 돈으로 술을 마신 인연이 있던 분이다. 선생님 연세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내가 1학년때 선생님이 쉰은 넘으셨을 것 같다. 일흔에서 여든의 어느 사이에 선생님은 세상을 하직하셨다. 선생님이 운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도 놀라웠고 그 소식을 전한 동기 녀석의 단체 카톡도 놀라웠다. 대학교 1학년때 호주로 어학연수를 가기 전에 그 녀석과 사귀었다.술 퍼마시는 것도 지겹다고 느끼던 2학기였고 선배들과도 한 판 싸워 과에서 왕따같은 시절이었다. 우리끼리 몰려다니고 우리끼리 연애했다. 1학기 과대표였던 그 녀석과 2학기 여자 과대표인 내가 인수인계를 하다 눈이 맞았다. 술마시고 취중진담으로 사귀자고 한 후 몇 달 사귀다 더 큰 세상을 배워 오겠다며 호주로 날아갔다. 그 녀석의 단체카톡에 답장을 바로 하기 머쓱해 일대일 카톡창을 열고 한 줄짜리 안부를 묻고 연락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ㅎㅎㅎ'를 연신 보냈다. 그 녀석은 1학년 1학기 과대표로 돌아가 본인이 할 일이라는 말만 남겼고 서로 결혼은 했는 지 애는 있는 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각자 할 말을 하고 카톡 방을 닫고 나왔다.
이틀 후 남편이 두팔 벌리고 나와 코딱지를 기다리고 있는 호주로 향했다. 18년 전 더 큰 세상 배우겠다며 김포공항을 통해 날아간 대륙이었는데 딱히 배운 건 없고 나이만 꽉 차서 아이의 손을 잡고 날아간다. 그 땐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될거라는 허황된 꿈을 꾸었고 지금은 이름을 날리는 사람보다 이름값은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꾼다.
호주.
지평선이 매력적인 그 곳에서 가슴을 활짝 열면 내 마음에도 지평선이 그려진다는 것을 배웠다. 20대의 뭔지 모를 외로움이 밀려오면 대륙 한 가운데 혼자 오도카니 앉아 별들의 노래를 듣는 울룰루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닭꼬치에 쓰는 꼬챙이를 지구에 꽂는다면 딱 꽂기 좋은 북극과 남극 중 남극 가까이를 배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지구의 구석 구석을 걸어다니며 살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국장위원장을 만나 악수 하는 모습을 본 곳이었다. 그들은 죽어 세상을 떠났고 난 그 곳을 다시 간다.
올해 계획에도 없었던 여행이 남편의 출장으로 갑작스럽게 생겼다.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예상치 않은, 계획에 없던, 기대하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 아닐까. 겨울이 다가온다는 그 곳을 향해 지난 겨우내내 입고 다닌 옷 몇 벌 챙겨 떠났다. 봄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가 사는 땅에 오고 있었는데 맑은 봄의 얼굴 제대로 못보고 날아왔다.
비행기와 공항에서 일어난 예상치 않은 일들은 이번 여행의 소금 후추 같이 간을 맞추는 에피소드였다고 하자. 이 정도 에피소드는 있어야 쓸 글이 있지. 두번째 호주 여행은 옛 기억은 지우고 새 것을 남길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우린 호주를 방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