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멜리 Amelie Sep 20. 2023

04. 스쿨버스가 힘들다던 아이가 2주 만에 꺼낸 말

새학년이 시작하는 9월, 미국 유치원에 입학한 둘째를 지켜보며

여름방학이 한창이던 8월 초, 학교에서 메일이 왔다.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 이름이 담긴 반 배정 이메일이었다. 반 배정이 완료되었기에 절대로 반을 바꿀 수 없다는 내용과 함께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 이름이 굵은 글씨로 표시되어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선생님 반에 배정되면 반을 바꿔 달라는 학부모의 요구는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 학년 시작을 알리는 9월


새 학년이 시작되는 9월, 큰아이는 4학년,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준비 단계인 유치원에 입학했다.  내눈에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어린애로만 보이는 둘째가 제 무릎 정도 높이의 스쿨버스 계단을 밟고 올라가 버스로 등교하는 첫날이었다. 아이 둘이 스쿨버스 좌석에 나란히 앉아 창밖에서 환하게 웃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큰 아이는 버스 뒤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친구들에게 한달음에 달려갔고, 작은아이는 덩그러니 혼자 운전석 바로 뒷좌석에 앉아 까치발을 하고 서서 차창 밖을 향해 느리게 손 인사를 하며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집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혼자 부딪혀 이겨내야 하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아이가 배우는 순간이었다.


미국은 9월 학기제이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우리나라의 3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다는 의미인 백 투 스쿨((Back to school)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는 각종 쇼핑몰과 브랜드가 자주 눈에 띄고, 대형 문구점이나 쇼핑몰마다 새 학년 준비물을 준비하는 아이들과 가족들을 왕왕 볼 수 있다. 


미국은 일반적으로 만 6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4년인 곳이 대다수지만 주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다. 학제는 총 12학년으로 이루어져 있고, 취학 전 교육인 유치원(Kindergarten)이 초등학교에 포함된 경우도 많아 이를 합쳐 K-12 학제라 부르기도 한다.


▲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봤던 스쿨버스를 매일 두 번씩 집 앞에서 만난다.


두려움은 새로움과 짝꿍이다


작은아이를 K 과정이라 부르는 유치원(Kindergarten)에 등록한 지난 2월, 학교에서 첫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던 5월, 반 배정 이메일을 받았던 8월까지 학교 관련 소식이 들릴 때마다 아이의 눈빛은 흔들렸다. 


이유는 새로운 학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아이는 만 5세 인생을 통틀어 총 3개의 유치원을 다녔다. 싱가포르에서 첫 데이케어에 입학한 이후 이사하며 한 번,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이사하면 한번 유치원을 옮겨야만 했다.


유치원이 달라질 때마다 아이의 얼굴에는 세상이 무너졌을 때나 드러낼 만한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익숙한 환경과 가까워진 선생님,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아쉬움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라는 숙제를 해내야 하는 두려움이 두 가지 맛이 뒤섞인 아이스크림처럼 아이의 얼굴에 묘하게 섞여 있었다.


헤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본인이 느끼는 ‘부끄러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이미 잘 알기 때문이다.


▲  유치원을 다녀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자동차들


엄마도 어릴 때 부끄러워했었어


개학을 앞두고 큰아이에게 등하교 시간에는 종종 동생을 도와주라고 일러두었다. 하지만 큰아이도 자신이 친구들과 또래에서 누리고 싶은 시간이 있기에 동생에게 눈길을 줄 여유가 없어 보였다. 


그리하여 작은 아이는 스쿨버스 맨 앞 좌석에 덩그러니 혼자 앉는다. 아이는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지만 내가 나서서 도와줄 수 없는, 아이 스스로 채워야 하는 시간이란 것도 잘 알고 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가 스쿨버스에 있는 시간이 힘들다고 했을 때, 엄마도 어릴 때 부끄러움이 많았고, 새로운 환경이 어려웠다고 말하며 아이를 안심시켰다. 지금 부끄러운 마음을 이겨내면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될 거라고 첨언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난 어릴 때 부끄러워했던 경험이 없기에 이렇게까지 부끄러워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하다. 기질도 성정도 나와 다른 아이를 키우면서 해주고 싶지만 참고 삼키는 말들도 많아졌다.


“그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맨날 징징거려.”

“남들 다하는 거 너도 할 수 있지, 왜 자꾸 힘들다고 그래.”

“엄마는 그냥 하니까 되던데 넌 왜 그게 안 되는 거야.”


이런 말들은 감자 채를 썰 때 모두 같이 썰어 볶아 잊어버린 말들이다. 아이가 가진 부끄러움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없고, 그 부끄러움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리면 자신이 지금 가지는 감정마저 무시당한다고 느낄까 봐 아이를 다그치지 않았다. 


정도와 범위가 다른 어려움이고, 아이가 힘들어하는 영역을 내가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아이가 겪어내는 그 시간을 내가 함께 지켜보고 있으니 너무 지나치게 걱정은 하지 말라는 정도의 다정함을 보여주는 게 멀리 봐서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 자주 머물렀다.


▲  새 학년 준비는 색연필을 깎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스쿨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학교를 다녀오면 아이들은 책가방을 사방에 던져놓고 오렌지나 복숭아를 먹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알지 못하는 미국 학교의 생활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고, 또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은 어떤 곳인지 궁금해 아주 작은 일상의 조각이라도 묻고 또 묻는다. 작은 아이는 아직 기억하는 친구의 이름도 없고, 점심시간에 카페테리아에서 먹은 음식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학교가 재미있는 모양인지 아이의 표정에서 나름 흥이 느껴진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고 스쿨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아이의 표정은 밟지만, 아침이면 아이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여전히 스쿨버스는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스쿨버스에 같이 타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또 한 번 그 마음을 꾹 누르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앉아 이야기한다.


우리 어제 <엄마의 손 뽀뽀>라는 동화책 읽었잖아. 학교 가는 게 힘든 아기 너구리 손에 엄마가 손 뽀뽀를 해주고, 늘 엄마가 너를 생각하고 있으니 씩씩하게 학교에 가서 즐겁게 생활하고 오라고 하잖아. 엄마도 너구리 엄마처럼 네 손바닥에 뽀뽀 해줄게. 스쿨버스에서, 학교에서 너무 부끄럽거나 뭔가 힘든 일이 있으면 집에서 엄마가 너를 기다리고 있고, 우린 곧 만나게 될 거라는 걸 잊지 말고 떠올려. 그럼, 너도 모르는 힘이 생길 수도 있어.


▲  최근 우리 집에서 인기가 높은 그림책, <엄마의 손뽀뽀>


그렇게 이주째 스쿨버스를 타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간식을 먹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학교에 가면 아직 부끄럽긴 한데 그래도 나 잘할 수 있어.


아이가 내뱉은 이 한 문장이 살짝 마음을 졸이던 나에게 한줄기 빛줄기처럼 다가왔다. 학교 갈 때마다 삐죽 튀어나온 아이의 입술을 보면서 겉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약간의 걱정을 하고 있었던 나에게 단비와 같은 말이었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조금씩 용기를 내어봤을 아이의 모습을, 너무 부끄러워 어딘가 숨어버리고 싶지만, 꾹 참고 숨지 않았을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아이는 주어진 시간을 단 일초도 허투루 쓰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던 그 순간들을 이겨보려 애썼을 아이의 용기는 바닷가에서 주운 작은 조약돌처럼 생겼을 거로 생각하며 그 용기의 조약돌이 언제나 아이의 주머니 속에서 아이와 함께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안았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 2023년 9월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03. 두 아이와 떠난 46일간의 여행, 이랬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