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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Sep 26. 2023

05. H마트에 가서 쌀가루와 참깨를 샀다

해외에서 만나는 여섯 번째 고요한 추석

해외에서 여섯 번째 추석을 맞이한다. 가정을 꾸린 후 한국에서 맞이한 추석이 다섯 번이니 해외살이가 길어지고 있다는 게 실감난다.


지난해까지 싱가포르에서 총 다섯 번 추석을 보냈다. 싱가포르에서는 추석을 쫑찌우지에(zhong qiu jie)에라 불렀다. 우리말로 중추절이고 영어로는 미드 오텀 페스티벌(Mid-Autumn Festival)이라 부른다. 중국계가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중국의 명절이나 관습이 많은 곳이 싱가포르이다. 적도에 위치한 싱가포르는 일 년 내내 30도를 웃도는 여름인데 가을의 한가운데 열리는 잔치라니, 머리로는 이해가 되나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는 내 몸뚱아리는 받아들이지 못하곤 했다.


싱가포르인들은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중추절에 선물로 월병을 주고받는다. 내로라하는 호텔이며 대형 쇼핑몰마다 자체 제작한 월병 선물 세트가 넘쳐났다. 고급 월병 세트의 경우 월병을 포장한 보관함을 따로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디자인이 빼어났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월병을 만들까 궁금할 정도로 온 세상에 월병이 넘쳐났다. 이건 우리나라 대형 마트나 편의점 앞에서 비치된 스팸 또는 샴푸 선물 세트를 마주하는 것과 비슷했다.


▲ 작가 그레이스 린(Grace Lin) 의 A Big Mooncakge for Little Star 의 한 장면으로 엄마와 딸아이가 월병을 만들고 있다.


어른들이 가족 친구들에게 선물할 월병 세트를 쇼핑하는 사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랜턴을 만들거나 그린다. 달나라에 사는 토끼를 모티브로 플라스틱이나 종이와 같은 재활용 가능한 재료를 이용해 랜턴을 만들기도 했고, 랜턴 그림을 색칠하는 활동을 했고 그 결과물을 가져와 집을 꾸몄다. 안타깝게도 추석은 공휴일이 아니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로 나름 추석 분위기를 덩달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추석을 즐기고파 파를 듬뿍 넣은 매콤한 소고깃국을 끓이고 잡채를 해서 동네 친구들과 나눠 먹기도 했고,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히고 한국에 사는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밝고 둥근 달을 보며 아이들과 손 모아 소원을 빌었다.


미국에서 첫 추석을 맞이한다. 속절없이 기온이 떨어지며 가을이 여름의 자리를 빼앗아 차지하더니 연일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 비가 끝나면 말간 해가 다시 등장한다고 해도 한번 떨어진 기온은 트램펄린을 탄 듯 올라가진 않을 테고, 우리를 긴긴 겨울로 데려갈 것이다.


한국에서 맞이했던 추석을 떠올려 본다. 구름이 많이 껴 이번 추석엔 보름달을 보기 어려울 거라는 뉴스 앵커의 멘트를 들었던 기억도 있지만 대체로 햇살은 붉은 고추를 바짝 말릴 만큼 따끔거렸고, 하늘은 드없이 높았다. 이맘때 들녘을 수놓은 벼들은 무겁디무거운 알곡을 견디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또 숙였다.


유튜브 영상 제목을 보다가 사람들이 추석을 영어로 코리안 땡스기빙(한국식 추수감사절, Korean Thanksgiving)이라 부르는 것을 발견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은 겨울 초입인 11월 말에나 만날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추석을 두고 땡스기빙과 연결했을까? 주한 미군 대사관 공보과에는 미국의 명절 중 하나인 추수감사절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추수감사절의 역사는 162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는 자신들의 종교적 자유를 위하여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이 매사추세츠주에 도착한 해이다. 그러나 혹독한 겨울을 거치면서, 그중 절반가량이 목숨을 잃게 되자, 청교도들은 주변에 있던 인디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인디언들은 그들에게 옥수수와 다른 작물들을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다음 해 가을에 많은 수확하게 되자, 청교도들은 감사하는 의미에서 추수감사절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추수감사절 행사는 미국 어느 곳에서나 지키는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단지 미국인들이 경제적으로 번영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유를 위하여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당시 청교도들의 의지가 아직도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추수감사절 저녁에 먹는 음식들은 지금도 과거의 전통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추수감사절 저녁에는 구운 칠면조 요리, 크랜베리 소스, 감자, 호박파이 등을 먹는다. 추수감사절에는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함께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을 감사드리며 자신들이 받은 축복을 감사하는 기도를 드린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지난해 미국으로 이사 오고 일주일 후 우리는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이했었다. 연휴 동안 남편의 회사 동료들은 가족과 친지를 만나러 이동한다고 했고, 많은 마트와 식당들이 문을 닫아서 우리는 꽤 난처하고 쓸쓸한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다.


청교도인들이 살던 땅을 떠나 매사추세츠 주로 이주해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살아남았다는 의미로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함께 모인 것 자체에 감사하고 축복했다니 이 점이 우리의 추석과 꽤 닮았다. 추수감사절 즈음 미국으로 이사한 우리 가족에게는 추석만큼이나 추수감사절이 가진 이야기도 아주 가깝게 다가온다.


▲ 어떻게 가지게 된 건지 알 수 없으나 책꽂이에서 발견한 추수감사절 동화책. 추석에 얽힌 동화책도 마련해야겠다.


미국에는 추석도 없고, 연휴도 없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아시아인도 많지 않고, 한국인도 드물다. 추석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한국에 있는 식구들을 생각하며 친구가 농사지은 멜론을 양가에 보냈다. 추석 분위기가 없다 보니 날짜를 잊지 않고 챙기기도 쉽지는 않다.  


추석 느낌은 없어도 두둥실 보름달은 어김없이 뜰 터이니 이번에는 우리 식구끼리 추석 분위기를 내보려 한다. 아이들과 함께 참깨로 속을 채운 송편을 만들고 쪄 먹기 위해 서둘러 H 마트에 가서 쌀가루와 참깨를 사뒀다.


시장 한복판에서 떡집을 했던 나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추석 전날 떡집 간판 불이 꺼지면 송편을 빚느라 바빴던 어른들을 도왔던 이야기, 얼굴도 모르는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고조할머니 할아버지 무덤가에 가서 잡초를 뽑고 집에 오는 길에 고추잠자리를 잡았던 성묘 이야기 등 나의 어린 시절 추석을 마치 옛날이야기처럼 아이들에게 전하며 아이들을 닮아 어여쁜 송편을 빚어야겠다. 나의 어린 시절 추석을 아이들이 얼마큼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득한 그날들을 나누고 같이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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