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일찍 출근하면 등교하는 초등학생들과 발걸음을 나란히 하게 된다. 아파트 모퉁이에서 시간 맞춰 만나 손꼭잡고 걸어가는 여자아이들, 천방지축으로 날뛰어 세상 두려울 게 없어 보이는 남자 아이들, 그 속에 늙수그레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음이 바빠지는 저학년 아이들이 뒤섞여 있다. 아이들은 다람쥐가 도토리를 주어 먹을 때 입을 오물거리둣 입말을 주고 받는다. 말을 하지 않는 때에는 담벼락이나 엘리베이터 벽 위에서 피아노 치듯 벽을 간지럽히며 얇고 하얀 손가락을 움직이며 논다. 움직이는 손가락이 송사리떼처럼 어여쁘다. 지나가는 친구나 어른들 가방에 달려있는 물건을 보며 아이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한참동안 웃음 머금은 대화를 나눈다.
아이들의 시간은 몸 속에 있다. 즐거운 때, 기분좋은 때를 굳이 밖에서 찾지 않는다. 몸속 어딘가가 간질간질하는 느낌만 들어도 웃음과 에너지가 나온다. 궁금하고 신기하고 재밌고 유쾌한 마음과 눈빛과 움직임이 모두 몸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팝콘 터지듯 우수수 밖으로 쏟아져나온다.
어른들은 휴화산도 아닌 사화산마냥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그 어른들도 한 때 아이였다. 몸 속 어딘가 진화하지 않고 퇴화하지 않은 미토콘드리아 속에 아이의 천진난만함이 옹송그리며 앉아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