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1
2018년 6월 11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1월에 태어난 둘째 아이 백일이 지났다. 이제 산후조리라는 말이 조금 머쓱하게 들리는 시간이 찾아왔다. 이 녀석을 뱃속에 품고 열 달 동안 열심히 먹어댄 덕분에 등허리와 배에 하사 받은 지방 덩어리들은 그 곳이 제 고향인양 떠날 생각이 없다. 거울 앞에 서서 옷을 입을 때마다 상상한다. 나를 짠하게 여긴 요정님이 마술가루를 뿌려주어 한 바퀴 휙 돌면 군살이 쏙 빠지는 기가 막히는 장면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딸아이 동화책에만 존재한다) 아이가 50일이 될 무렵 열성적으로 운동은 못하더라도 식단 관리는 해야겠다 다짐했다. 맛집 프로에 소개된 떡볶이를 본 순간 내 의지의 1차 저지선이 무너졌다. 연예인도 아니고 출산 후 50일부터 식단 관리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자기 합리화가 뇌 속에 똬리를 틀었다. (가끔 이런 자기합리화는 만족감과 찐한 행복을 선사한다.) 출산 후 두 달이 되는 날, 무한대로 흡입하던 빵을 끊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를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 손에 들린 온갖 종류의 빵 앞에서 내 의지는 또다시 무너졌다. 친정엄마는 애 둘 키우면 정신이 없어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을 거라고 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애들 뒤치다꺼리에 지칠수록 먹는 것으로 버티기에 돌입한다. 매일매일 악착같이 먹을 거리를 입 속에 넣어준다. 의지의 마지노선은 하루에도 몇 번씩 붕괴와 복구를 오가며 참패할 위기에 처한다.
선택지 달랑 2개인 '먹다'와 '먹지 않는다' 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만큼 끊임 없는 고민이 절실한 문제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을까 말까 고민한다. 오늘도 아이가 먹던 초콜릿 바를 남긴 순간 동공이 흔들리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애가 나중에 초콜릿을 찾을 수도 있으니 냉동실에 넣어둬야겠어.’ 하다가 ‘아니야, 입대고 먹어서 침 묻힌 걸 냉동실에 넣어두면 위생에 안 좋아. 내가 지금 먹어 치우지 뭐.’하며 손을 갖다 댔다. 그러고도 몇 번을 고민하다가 결국 입에 톡 털어 넣고 오물오물 씹어 삼켰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먹어 치웠다는 만족감과 온 몸을 휘감는 달콤함이 주는 즐거움에 한껏 밝아진 내 표정을 마술가루를 뿌려주러 찾아온 요정님이 보았다면 마술가루를 뿌리려다 말고 아연실색하며 돌아갔을 게다. 선택지 달랑 2개인 '먹다'와 '먹지 않는다' 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만큼 끊임 없는 고민이 절실한 문제이다.
살다 보면 이정표 조차 보이지 않아 갈팡질팡하며 마음 졸여야 하는 순간이 있다. 혹은 두 가지 답안 A 또는 B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에도 있다. 가끔 두 가지 선택지 저편의 미래가 아주 선명하게 보일 때가 있다. 이럴 땐 불 보듯 뻔한 결론까지 예측하고 선택하려 애쓰는 탓에 고민은 깊어지고 머리는 아파온다. ‘선택’이란 녀석은 좀 웃긴다. 선택한 답안지에 대해 백퍼센트 만족하기란 참 어렵다. 오히려 선택에서 탈락한 답안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 잘못 선택했다는 자책이 앞서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어쩌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두세 개의 답안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보다 마음은 더 편하지 않을까. 앞에 뵈는 게 없으니 홀가분하게 직관적으로 움직이거나, 일찌감치 포기한 채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더 느긋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하나를 결정하기 위한 고민이야말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 ‘운명’의 서막이지 않을까.
베토벤 ‘운명’은 이미 미래는 정해져 있고, 변할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운명'으로 들리지 않는다. A와 B 중 꼭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주구장창 서야 하는 인생살이의 고단함과 고뇌가 멜로디를 따라 흐르는 느낌이 든다. 마감 기한은 정해져 있고 그 안에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감 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어렵게 선택한 길이 생각했던 것보다 걷기 쉬운 평지여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만족감이 감도는 소리도 들린다. 버린 카드가 가진 길이 못내 아쉬워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선망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선택의 결과가 엉망이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며 가슴을 치는 상황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모든 선택과 관련된 마음들이 베토벤 '운명' 속에 숨어있는 듯 하다. ‘이것’과 ‘저것’ 중 하나를 결정하기 위한 고민이야말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 ‘운명’의 서막이지 않을까.
‘운명’을 듣고 있으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내일의 나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진다. 인생의 여정 위에 놓인 선택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의 모습, 선택지가 가지는 결말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들여다 보는 나의 모습, 카드 하나를 고른 후 괜찮은 선택인지 입술을 깨물며 뒤돌아보는 나의 모습 말이다. ‘운명’적으로 선택한 인생 카드 뒤에 버려진 수 많은 카드에 대한 미련도 그 인생이 품고 있는 운명이니 말이다.
오늘도 우리는 절체절명의 순간들 속에서 조금이나마 덜 다치고, 덜 아프고, 덜 힘들 수 있는 선택지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크고 작은 선택이 조금씩 나아지는 생(生)의 방향으로 운명의 흐름을 가다듬어 주길 기대한다. 백일이 갓 지난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제 자리에 눕혀놓으면 손발을 조금 버둥거리다 이내 잠든다. 불어난 몸 때문에 신경질적인 엄마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덜 듣기 위해 취침의 다양한 방법 중 제 스스로 잠들기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 젖은 얻어먹고 살기 위해서 말이다. 오늘 우리의 '운명'은 어땠을까. 순풍에 돛 단 듯 인생 여정이 순탄하고 느긋하게 흘러서 길가에 핀 봄 꽃 한번 바라본 날이었기를 바라본다.
이 아이들은 원하던 원치 않던 나의 운명 1과 2가 되었다. 2018년 5월 어느 화창한 날에
음악 읽어주는 이>> 아멜리, 소소한 일상과 사람의 마음에 관심 많은 10년 차 마케터. 현재 남편 따라 싱가포르에서 체류중. 왈츠부터 덥스텝까지 모든 선율에 맞춰 춤추는 여섯 살 딸아이와 눈 맞추고 환하게 웃기 시작하는 14개월 된 사내아이의 엄마
주요 음악 경력>> 초등시절 피아노 학원에서 체르니 40번까지 수학(?), 5학년 때 담임 선생님 결혼식 연주 담당 / 고딩시절 가곡 ‘목련화’를 부르고 중창단에 합격해 메조 소프라노 파트 담당 / 대딩 이후 크고 작은 클래식, 뮤지컬, 오페라 공연 찾아 다니며 프로그램북 사 모으는 취미 가짐 / 현재 마음 가는 대로 온갖 종류의 음악을 들으며 발가락 까딱거리는 순간을 최고로 여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