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한 궁금증과 상관없이,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22

by 아멜리 Amelie
더 콘서트 - 강혜정·백재은 -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중 산들바람은 부드럽게


2018년 11월 14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11월 11일 일요일 아침, 페이스북이 작년 오늘 무얼 했는지 알려주었다. 8개월 임산부의 몸으로 울산에서 있었던 후배의 결혼식에 갔었다. 그냥 결혼을 축하하러 간 게 아니라 축사를 읊으러 갔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어느 날, 후배는 청첩장을 주겠다며 동네에 찾아왔다. 보름달처럼 두둥실 불러온 배를 안고 뒤뚱거릴 임산부를 위한 배려였다. 만두전골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앉아서는 결혼이란 무엇인가, 결혼식이란 무엇인가, 임산부란 무엇인가, 월급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두서없이 나누었다. 갑자기 후배는 자신의 결혼식에 축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후배의 결혼식이었다. 기꺼이 하겠다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부터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주 동안 고민하고 쓰고 지우고 생각하고 또 쓰고 지우며 결혼식 축사를 완성했고, 삐지엠(BGM)까지 내 손으로 골랐고, 울산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11월에 있었던 어느 결혼식에서도 마이크를 잡은 적이 있었다. 축사를 했어야 했는데 축가를 하는 바람에 신랑 신부를 경악게 했던 결혼식이었다. 바로 여동생이 결혼하는 날이었다. 결혼식은 토요일에 있었고, 전날이었던 금요일도 어김없이 빡세게 일을 했다. 매일 밥 먹듯 야근을 하던 시절이었다. 강남 코엑스 사거리에 있는 아주 커다란 빌딩에서 고객사의 월말 마감 업무를 하고 꽉 찬 도로를 헤집고 달려 광화문 사무실에 터치다운을 했다. 헐레벌떡 책상 정리를 하고 동생의 결혼 선물을 사러 갔다. 현금으로 주면 신혼여행을 가서 몽땅 써버릴 것 같아서 오래 간직할 수 있거나, 기억에 남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한참을 생각하다 금가락지를 떠올렸다. 힘들게 살던 시절에 돈이 궁하면 집에 있던 금가락지를 팔아 살림에 보탰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나도 작게나마 살림에 보탬이 되는 선물을 하고 싶었다. 금요일 퇴근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광화문에서 종로로 향하는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주차하기 편해 보이는 가게를 찾아 차를 던지듯 주차해놓고 들어가 금가락지 두 개를 샀다. 잃어버리지 않으려 가방 깊숙이 넣어두고 경부고속도로를 향해 달렸다.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서 커피와 반건조 오징어 한 마리를 샀다. 오징어 다리를 뜯어 먹다가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오징어 머리를 씹다가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네 시간을 달리는 내내 들었던 노래는 딱 한 곡이었다. 다음날 결혼식장에서 마이크를 들고 부를 예정이었던 윤종신의 <환생>이었다. 내가 부른다고 했는지, 동생이 축가를 해달라고 부탁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가사를 외우기 위해 며칠 내내 이 노래만 듣고 따라 불렀다. 밤 열두시가 다 되어서야 대구 엄마 집에 도착했고, 내 목은 쉬어 있었다.

결혼식 날이 밝았고, 새 신부가 될 동생은 화장을 받고 웨딩드레스를 입기 위해 먼저 나갔고, 혼주라는 이름을 얻은 부모님도 뒤따라 나갔고, 노래를 불러야 하는 나도 새빨간 원피스를 챙겨 입고 남동생을 데리고 나갔다. (사실 나와 남동생은 그날 있으나 없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였다.) 결혼식 사회를 보는 제부의 친구와 눈인사를 나누고, 식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모들 옆에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예쁜 부산 고모할매가 물어본다.
“니는 언제 가노?”
새빨간 립스틱과 원피스로 치장한 내가 답한다.
“가길 어딜가. 나는 천년만년 엄마 옆에 있을라꼬. 우리 엄마 내 좋아하잖아.”
외할매랑 똑같이 생긴 시골 이모가 한마디 한다.
“야가 와카노, 가야지. 니 애인 없나.”
꼬깃꼬깃 접어 너덜너덜해진 윤종신의 <환생>을 담은 A4 용지를 만지작거리며 내가 답한다.
“이모야, 내 오늘 축가 부른다.”
엄마와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부산 이모가 거든다.
“니는 동생 먼저 시집보내면서 와카노, 안 부끄럽나.”
노래 가사를 모두 잊어버릴 것만 같아 자리를 뜨며 내가 말했다.
“이모야, 내 노래 끝나면 박수 많이 쳐래이. 알았제.”

식순에 따라 내 차례가 왔다. 반주가 흘렀다. 첫음을 아주 정확하게 짚어 소리 냈다. 시작이 좋았다. 얼굴은 이쁘장한데 웃는 모습이 어색한 동생이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내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잠깐 보고, 눈을 돌렸다. 작은 어깨를 분홍색 한복 저고리로 감싼 엄마가 장갑 낀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세 소절 정도 불렀을 때였는데, 내 눈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 나는 눈물이 많고, 그 눈물이 터지면 그칠 줄을 모르며, 꺼이꺼이 울기도 잘한다는 것도 잘 안다. 수위를 조절하느라 열어둔 수문에 콸콸콸 물이 터져 흐르듯 내 눈에서 눈물이 터졌다. 이제 노래는 끝이겠구나 직감했다. 그래도 끝까지 불러보겠다고 마이크를 쥐고 있었고, 하객들은 반주 위로 흐느끼는 내 울음소리를 2절까지 모두 들어야만 했다. 내 앞에 해맑게 서 있던 신랑 신부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반주가 끝날 때 내 눈물도 끝이 났다.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었던 사람처럼 마이크를 던지고는 하객들이 밥 먹는 식당으로 갔다. 하객들에게 식권을 나눠줬던 육촌 아재가 한마디 했다.


“니 동생이 니보다 먼저 시집가서 울었제. 밥이나 묵자.”
동생이 먼저 시집을 가서 운 건 아닌데 난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동생이 제일 먼저 던진 왜 울었냐고 묻는 질문에 미안하다고 대답하는 작은 사람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결혼하기 전에 하객으로 앉아있었던 모든 종류의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보며 울었다. 엄마 생각에 한번 울고, 어른이 되기 싫다는 마음에 또 울었다. 큰딸이 노처녀로 늙어가진 않을까 걱정하는 엄마 속도 모르고 남의 결혼식에 앉아 울다가 밥을 먹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결혼식장에서 울지 않는다. 대신 예식장 밥을 식전에 챙겨 먹는 사람이 되었다. 눈물은 여전히 많지만 결혼이 울 일은 아니며, 감정의 문제가 아닌 현실의 문제이며 눈물이 날 만큼 마음이 짠하고 아득하기 전에 일과 육아와 살림살이에 지쳐 쓰러져 잠드는 날이 더 많다는 것 정도는 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후배의 결혼 축사는 결혼하는 오늘을 축하하는 만큼이나 앞으로 펼쳐질 나날에 대한 격려를 전하고 싶었다. 축하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이 났다.

시간이 흘러 눈가에 생기는 주름에 마음 아파하지 않고, 편협하고 온화하지 않은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생기는 미간의 굵은 주름이 도드라지지 않도록 맑은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턱 선이 흐릿해지고 예전의 젊고 맑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을 한탄하지 않고, 웃지 않고 감동받지 않아 축 처지는 입꼬리가 생기지 않도록 늘 세상에 깨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뱃살이 늘어나고 등허리에 군살이 생겨도 눈 내리는 날 누구보다 즐거워 날뛰는 강아지처럼 가슴 벅차게 움직이며 들끓는 에너지가 서로의 심장에 흐르면 좋겠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과 인연을 맺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걸음 내딛는 그대들의 오늘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그대들이 서로를 향해 가진 애틋하고 따뜻한 그 마음, 영원하길 기도합니다.



어느해 11월에 있었던 결혼식 에피소드를 이것저것 떠올리다 현재 나의 결혼 생활을 바라본다. 짝꿍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날, 왜 나와 결혼을 했냐고 물어봤다. 아직도 그 이유를 찾고 있다고 짝꿍이 답했다. 짧은 답을 마친 짝꿍이 나에게 왜 자신과 결혼했냐고 물어봤다.

상냥해서.

사람에게, 세상에게 상냥해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식> 중 ‘산들바람은 부드럽게’가 떠오른다. 여성 이중창인 이 노래를 듣다 보면 귓가에, 손가락 끝에, 발목에 산들바람이 살짝 스치고 도망가는 느낌이 든다. 맑고 영롱한 소프라노의 음색을 듣다 보면 세상 악기 중 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사람이 만드는 목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우아하고 여유 넘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내일부터 아이에게 저렇게 환하게 웃으며 깨끗한 목소리로 응답해보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된다. (과연 일상에서 실현 가능한 목표일까?)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기고 눕듯 앉아서 귓가에 하루 종일 이 노래를 틀어두면 온갖 근심이 모두 사라질 것만 같다. 그래서 쇼생크의 탈출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에 이 곡이 활용된 것은 아닐까 싶다.

강혜정 소프라노의 음색이 마음에 들어 다른 곡들을 찾아보다 동무생각을 같이 들어본다. 자고 일어나 아침이 되면 나도 새소리 같은 목소리를 갖게 되면 좋겠다. 이왕이면 노래도 잘 부르면 좋겠다. 아니다. 그냥 둘째 아이가 밤새 안 깨고 잘 자서 나도 덩달아 푹 한번 잘 자보면 좋겠다. 소망과 바람과 꿈이 점점 소박해진다.


동무생각 Thinking about Friends : Soprano : 강혜정 Kang Hye-Jung / 이화영 Lee Hwa-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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