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21
2018년 11월 7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아이 수영 강습을 다녀오는 날이었다. 아이는 수영장에 함께 가는 동네 친구와 신나게 수영을 배우고 나와 아이스크림콘 하나를 손에 쥐고 신이 났다. 아이는 강아지처럼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아이스크림을 아주 맛있게 핥았고, 춤추듯 걸으며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다 먹기를 기다리느라 집으로 가는 버스 두어 대를 그냥 보냈다. 이윽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도착했다. 이미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동네 친구와 그 친구의 엄마, 그 친구의 동생들이 모두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다 먹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신경 쓰였다. 급한 마음에 에제 집에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며 아이에게 윽박지르듯 말을 뱉었고, 아이 손에 들려 있던 아이스크림콘을 빼앗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유모차를 버스 속으로 욱여넣으며 아이 손을 잡아끌었다. 가까스로 버스 좌석에 나란히 앉았고, 이내 버스는 엔진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출발했고, 아이는 엔진 소음보다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엔진 소리와 싸워 이긴 아이의 울음소리에 억울함과 원통함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아무런 설명 없이 아이스크림을 낚아채어 쓰레기통에 집어던진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왜 우는지 알기에 아이에게 구차한 설명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내가 구질구질해 보였다. 아이스크림에 꽂혀 있는 아이의 관심을 애써 돌려보려 동네 친구와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제안했고, 이긴 사람에겐 사과 주스를 주겠다고 했다. 아이들의 각자의 속도로 힘껏 달렸으나 한 살 많은 동네 친구가 먼저 도착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모두 다 잘 했다며 준비해 간 사과주스 2개를 차례로 나눠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게임에서 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사력을 다해 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집에 가는 길이었다. 수영강습에 함께 갔다 돌아오던 아이의 동네 친구 엄마가 한마디 했다.
“대단하시네요. 어쩌면 화를 안 내세요. 저 같으면 벌써 화내고 난리 났을 거예요.”
집에 들어와 아이 둘을 씻기고 저녁을 준비해 먹고 정리하고 책 읽어 주고 재우고 다시 거실에 나왔다. 소파에 몸을 던져 눕듯 앉아서는 멍하게 캄캄해진 창밖을 바라보다 갑자기 동네 친구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수영장을 나서서 집으로 오는 길 자체가 전쟁터나 다름없었는데 난 왜 화가 안 났을까?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걷는 길이 모두 자갈과 진흙 범벅의 길이었는데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었을까? 수영장을 다녀와서도 해야 할 일은 줄줄이 소시지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짜증 없이 다 할 수 있었을까?
정답은 하나였다. 나의 체력과 정신력 모두 평균 이상 수준을 유지했던 날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수영장을 가는 전날 밤, 밤마다 하던 달밤 운동을 한 시간 꽉 채워 했다. 운동을 하고 잔 날은 아침에 일어날 때 훨씬 가벼워진 몸을 느낄 수 있고, 몸 한구석 부어있는 곳이 없어서 아주 상큼한 컨디션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큰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 오랜만에 둘째가 깊고 달달한 낮잠에 푹 빠진 덕분에 점심을 챙겨 먹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마른 옷을 개켜 정리하고 나서 책을 읽었다. 듣고 싶은 음악도 서너 곡 골라 듣고, 많은 분량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다가 잠깐 생각에 잠겨 상상의 세상을 여행하기도 했다.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한 오후였고, 어느 것 하나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이 없는 시간이었고, 자동차 연료통이 꽉 차듯 나의 체력과 정신력도 모두 가득이었다.
그렇다. 화가 나거나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는 것은 나의 체력과 정신력이 담긴 연료통이 비어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빨간 경고등과 다름이 없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넘어서는 정도의 어려움과 고단함이 찾아오면 머릿속에 경고 메시지가 울리기 시작한다. 어렵사리 현 상황을 지탱하고 있는 몸과 마음의 연료가 고갈되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마치 시뻘건 속살에 소금을 뿌린 탓에 저절로 터져 나오는 비명처럼 화와 짜증이 활화산처럼 터져 나온다. 머릿속으로 정돈할 여유가 없었기에 비난과 질타가 섞인 말들이 찌푸린 미간을 배경으로 세상에 쏟아져 나온다. 화낼 때 주로 쓰는 단어들이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면 또다시 머릿속에 경고 메시지가 울린다. 그만하라는 신호다.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임을 인정하고 여기서 마무리 짓자는 소리다. 결국 화와 짜증이 터져 나온 진앙지는 바로 ‘나’였음을 인식하라는 메시지다.
아이가 똑같은 실수를 하고도 어떤 날은 그냥 넘어갈 수 있고, 어떤 날은 모진 소리가 나오려 아우성이다. 급기야 그 모진 한 소리가 터져 나오는 날도 있다. 일관성 없이 들쭉날쭉했던 나의 체력과 정신력 탓이다. 아이에게 한소리 하고 넘어가는 날에는 나도 내 마음의 쓴소리를 들어야 한다. 체력과 정신력 관리에 소홀했던 나를 탓하고, 나에게 필요한 도움의 손길을 주변에 있는 누군가에게 요청해야 한다. 이렇게 서둘러 수습하려 애쓰지 않으면 날카로울 대로 날카로운 나의 말과 행동에 여럿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만큼 나의 체력과 정신력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행위는 가족의 안녕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
나의 체력과 정신력 관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이토록 중요한 지 예전에는 잘 몰랐다. 결혼을 하고 한 남자와 단둘이 공간을 공유하고 살 때에도 이 정도로 중요한 지 알 수 없었다. 나처럼 미주알고주알 설명해내지 못하고, 나만큼 재빠르게 행동하지 못하고, 나같이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게 어려운 아이라는 존재와 함께 생활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의 손길이 필요하면서 동시에 내가 홀로서기를 도와야 하는 존재와 함께 있으면서 아이의 앞에 서있다가 뒤를 따라가기도 해야 하는 일상에서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은 고작해야 내 마음과 내 몸뚱어리가 전부였다. 그 외의 대부분은 내가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다짐한다고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딱 하나 얻어서 실천하는 중인 게 나를 내가 잘 알아나가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나 스스로를 덜 아프게 만들고, 덜 힘들어하며 커다란 우주를 가진 한 아이를 키워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수영장에서 집까지 아이가 엉엉 울면서 돌아온 그날 저녁, 잠자리를 정돈하고 책 두어 권을 같이 읽고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아이를 곁으로 끌어와 손을 잡고 눈을 바라봤다. 그러곤 수영장 다녀오는 길에 맛있게 먹던 아이스크림을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쓰레기통에 던져버려 미안하다고 했다. 친구 식구들이 버스를 너무 오래 기다리는 게 신경 쓰여 그랬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다음에 우리끼리 버스 타고 돌아오는 날에는 아이스크림 다 먹을 때까지 버스 기다리고 천천히 여유 있게 버스 타고 집에 돌아오자고 했다. 입술을 씰쭉거리던 아이가 끝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자기 전에 그렇게 하루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아이는 울다가 남은 눈물을 제 두 눈 속과 마음 저 밑에 꾹꾹 눌러 담아 참아냈을거다. 나중에 또다시 지금처럼 속상한 날이 오면 은행 이자처럼 묻어둔 눈물이 저도 모르게 솟구쳐 올라와 자기 자신조차 이유도 모른 채 엉엉 울어댈지도 모른다. 녹아 흐르는 아이스크림처럼 아이는 눈물을 쏟아내며 내 품에 안겼다. 옥수수수염처럼 가늘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눈물과 뒤엉켜 아이의 뺨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머리카락을 정돈해주고, 눈물을 닦아주며 한 번 더 미안하다고 했고, 네 마음이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는 다 울었는지 눈물을 닦고 머리카락을 슥 얼굴 뒤로 넘기면서 나를 보고 웃었다. 좋은 꿈 꾸고 자라며 볼록 튀어나온 배를 토닥여주니 아이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오후 햇살 아래에서 수영을 해서인지 누운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바람에 뒹구는 가랑잎 같은 소리를 내며 아이가 잔다. 해변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 않아 손바닥으로 모래를 어루만지듯 아이의 마음을 쓰다듬은 것 같아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 밤이었다. 잠든 아이들 이마를 한 번씩 짚어주고 헝클어진 이불을 정돈해 배를 덮어주고 콩닥거리며 뛰고 있는 가슴 한 쪽에 굿나이트 뽀뽀를 해주고 불을 끄고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루가 저물어간다.
마르고 비틀어진 마음이 있다면 나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잘못한 일이 있다면 다음에 더 애써보자고 격려의 마음을 채워 넣어주고, 못생기고 구질구질해 보여도 이대로도 정감 가는 구석이 있다고 치켜세워줘 보자는 거다. 내가 나를 쓰다듬어주지 않는데 세상 누가 나를 정성으로 쓰다듬어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오늘도 나를 톺아본다.
허기진 내 마음의 연료통을 채우고, 아이와 마음이 겹쳐지는 느낌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가브리엘 포레의 파반느를 찾는다.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몸에 힘을 빼면서 멜로디를 따라간다. 나의 하루가 무성영화처럼 머릿속을 흘러간다. 마치 머릿속으로 일기를 쓰고 있는 느낌이다. 하루 일기의 마침표를 찍을 때 즈음 느낌을 보면 하루 성적표가 나온다. 뿌듯한 하루였는지, 악몽 같은 날이었는지, 힘들었지만 견딜만한 시간이었는지에 따라 내 몸과 마음의 연료통 눈금도 각기 다르다. (가끔은 생각의 스위치를 꺼버리고 싶은 날도 있다.) 나의 몸과 마음을 톺아보는 것은 나를 채찍질하고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가르고 반성하는 시간이 아니다.
마르고 비틀어진 마음이 있다면 나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잘못한 일이 있다면 다음에 더 애써보자고 격려의 마음을 채워 넣어주고, 못생기고 구질구질해 보여도 이대로도 정감 가는 구석이 있다고 치켜세워줘 보자는 거다. 내가 나를 쓰다듬어주지 않는데 세상 누가 나를 정성으로 쓰다듬어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오늘도 나를 톺아본다. 나의 마음가짐, 나의 다짐만으로 하루 일과를 모두 맨정신에,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경쾌하게 웃으면서 헤쳐나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다만 스스로 채우는 몸과 마음의 연료통에 문제가 없어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잣대가 흔들리지 않고 지그재그로 걷더라도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아침에 아이 유치원 준비를 다 마치고 집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똥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기저귀를 갈아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둘째가 똥을 쌌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화낼 일도 아니지만 마음은 답답해지고 허리는 뻐근해진다. 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괜찮다, 유치원 버스 놓쳐서 지각해도 괜찮다. 씻겨서 다시 기저귀 채우고 나가면 된다. 다 할 수 있다. 괜찮다. 다 괜찮다.
오늘은 또 이 주문을 몇 번 외치게 될까.
기대가 아니 될 수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