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불땐 샹송 한 곡, 에디뜨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

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20

by 아멜리 Amelie
Edith Piaf - La Vie En Rose


2018년 10월 30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대화가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가끔은 삼천포로 빠진 이야기가 더 재미있을 때도 있다. 한참을 삼천포로 빠진 이야기를 하고 놀고 있는데 누가 한마디 던진다. ‘‘근데 우리 어쩌다 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 그렇게 가던 길에서 살짝 비켜나가 샛길로 빠지기도 해야 가던 길이 더 재밌고 신나지 않나. 그래서 나도 오늘은 클래식이 아닌 샹송(Chanson)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5년 전,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를 배웠던 곳은 ‘앙제(Angers)’라는 작은 도시였다. 사람들이 거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답했다. "파리에서 떼제베(TGV)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남쪽을 향해 달리면 만날 수 있어요". 프랑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이다도시(방송인)밖에 없던 때였다. 아는 도시는 파리와 니스, 깐느가 전부였다. 엄청 유명한 것 하나 없는 앙제에 어학연수를 갈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지금도 미스터리다. 어쩌면 프랑스어를 배우겠다고 마음먹은 것 자체가 더 미스터리일지 모른다. (불문과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는 건 더더욱 아니다. 해외에 나갈 필요가 없는 국문과 공부를 했다.)

앙제에 도착하고 며칠 후 한국인 언니를 만났다. 한눈에도 나랑 통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우린 죽이 잘 맞았고, 1년 내내 놀기도 잘 놀고 공부도 많이 하고 서로의 고민 상담은 더 많이 했다. 홈스테이 생활 3개월 후 언니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침저녁으로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언니가 예전에 산 CD라며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 뮤지컬 OST를 건네주었다. 프랑스어 실력이 아주 형편없을 때였는데 씨디를 틀자마자 주옥같은 노래가 내 귓구멍을 뚫어 하늘을 향하더니 우주로 날아갔다. 감동 그 자체였다. 가사를 모른 채 듣기만 해도 좋았지만 내용이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때마침 방학이어서 남는 건 시간이었고, 아침저녁으로 노래를 들으며 노래 가사를 공책에 옮겨 썼다. 한 문장 한 문장 사전을 찾아가며 해석을 했고, 프랑스어 가사 아래에 한국어 해석을 달았다. 뮤지컬 속 사람 이름, 동네 이름을 찾아 익혔고, 파리 지도를 펼쳐놓고 공부하듯 훑기도 했다. 뮤지컬 OST 씨디는 총 두 장이었고 노래는 53곡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반복해서 들었고 따라 불렀다. 같이 사는 언니는 아마 귀마개를 하고 싶었을거다. 아침에 눈뜨고 주방으로 들어올 때마다 그걸 듣고 있는 나에게 아침 인사를 이렇게 건넸다. "또?”

듣고 따라 부르기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했다. 뭐하나 좋아하면 끝까지 해야 하는 성격이 프랑스어 익히기에 일조를 했다. 프랑스인 친구들이 프랑스 노래 중에 뭘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노트르담드파리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들을 경악게 만들었다. 우리가 모두 이십 대 초반이었으니 최신 노래를 좋아할 것으로 예상했을거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나니 뮤지컬 속 웬만한 노래는 다 익혔고 가사를 외워 부르는 노래도 두어 곡 생겼다. 설거지를 하거나 샤워를 할 때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내가 에스메랄다(노트르담 드 파리 여주인공 이름)가 되는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 뮤지컬 주인공 놀이를 혼자 한 셈이다.

프랑스어를 반년 정도 배우고 난 후 프랑스로 입양된 17살 한국인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줄 기회가 있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아들의 나라에서 온 한국 사람이 궁금했고, 곧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프랑스 가정식을 엄청 맛나게 꼭꼭 씹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을 좋아한다고 했다. 뮤지컬을 본 적은 없지만 노래는 다 안다고 했다. 그리고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고 했다. 프랑스인들 앞에서 프랑스 뮤지컬을 부르는 한국 여자. 뮤지컬에서 남자 주인공 3명이 같이 부르는 벨(Belle)을 혼자 완창했다. 호스트인 아이 엄마 아빠는 손바닥이 벌게지도록 손뼉을 쳐 주었고, 나의 한국어 과외생인 아이는 피식 웃었다. 노래 부를 때 발음이 좋다는 칭찬과 노래를 참 잘 부른다는 격찬을 듣고 그 집 문을 닫고 나왔다. 그때의 칭찬은 나를 춤추게 하여 훗날 샹송 경연 대회에 도전하게 된다.(결과는 예선 탈락이었다.) 왜 그 노래를 그 집에서 부르고 싶었는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좋아하는 것에 너무 몰입한 결과, 태어나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 앞에서 뮤지컬 주인공이라도 된 듯 테마곡을 부르는 코믹한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으리라. 그때의 나는 자리만 깔아주면 앙제 시청 앞에서도 오가는 사람들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주변 사람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건 변함없다.) 그럼 내가 완창을 했던 그 노래를 함께 들어보도록 하자.


Notre Dame de Paris - Belle

아이러니한 건 아직도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은 본 적이 없다. 프랑스 배우들이 한국까지 왔던 공연도 있었고, 국내 유명 뮤지컬 배우들이 모두 참여한 뮤지컬도 있었지만 공연이 있을 때마다 나는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거나, 같이 갈 사람이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중에 파리 여행 가면 뮤지컬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짝꿍아 미안, 우리 언제 파리 또 여행가?)


요즘도 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 나도 모르게 노트르담 드 파리 노래를 흥얼거린다. 급기야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도 그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 노래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라고 알려주며, 프랑스어 인사말도 가르쳐주고, 지도를 펼쳐 놓고 프랑스가 어디에 있는 지도 알려줬다. (아빠한테 가서 프랑스에 가고 싶다고 말하라고 시키는 건 내년쯤 할 생각이다.)

샹송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던 게 삼천포로 빠져서 프랑스에 놀러 가고 싶다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은 것 같다. 세계 모든 나라의 노래가 다 그렇겠지만 가사를 들여다보면 음만 따라가던 노래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특히 샹송은 프랑스어를 듣는 재미가 있다. 마치 우유 거품이 가득한 카푸치노처럼 몽글몽글한 발음이 귓가에 퍼지는 느낌이 좋다. 잊히지 않는 프랑스 말이 하나 있다. 홍차에 우유를 약간 부어마실 때 쓸 수 있는 말로 Un nuage du lait(엉 뉴아쥐 뒤 레)가 있다. 직역하면 ‘구름 같은 우유’라는 뜻인데 홍차에 우유를 부으면 하얀 우윳빛이 구름처럼 퍼지는 모양을 일컬어 이렇게 말한다. 만화책을 보다가 배운 이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가끔 집에서 커피를 끓여 내놓고 우유를 조금 부으며 un nuage du lait, si’l vous plait. (우유 조금 주세요)를 혼잣말로 뱉어본다. 마치 파리 마레 지구에 있는 가정집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다시 샹송 이야기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아는 프랑스의 이미자(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만)라 할 수 있는 에디뜨 피아프(Edith Piaf)의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는 누구나 들어봤을 노래다. 이 노래도 좋지만 Non, Je ne regrette rien(농, 쥬 느 흐그래트 히앙,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도 좋다. 하루 다 잘 살아내고 저녁에 설거지를 하거나 애들 목욕 시키면서 속으로 부른다. 잘 버틴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고된 어깨 쓰다듬어 주는 부드러운 손길 같은 노래다.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애쓰며 보낸 시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보낸 사랑의 눈빛과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노래다. 또한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잘 살아내겠다는 의지의 노래다. 전주만 들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노래다. 에디뜨 피아프처럼 뜨겁게 살아보고 싶어지는 노래다. 같이 들어보자.


샹송(Chanson)은 프랑스어로 노래라는 뜻이다. 요즘 프랑스의 대중가요를 샹송이라는 말로 칭하지는 않는다. 1900년대에 샹송의 역사는 시작되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샹송은 1950년대에 사랑을 받은 노래가 많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에디트 피아프의 <장미빗 인생>, <사랑의 찬가>부터 이브 몽탕의 <낙엽>, 자크린 프랑수아의 <파리의 아가씨> 등이 있다.


샹송을 왜 좋아할까. 이야기하듯 부르는 노래 스타일, 서사가 있는 노랫말, 노래를 들을 때마다 한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또 하나 더 좋은 게 있다. 카푸치노 같은 프랑스어를 내 입으로 따라 소리 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마다 입으로 내뱉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가 있다. 그런 단어만 따로 모아서 사전을 만들어도 좋겠다. 기분이 울적할 때 펼쳐두고 소리 내어 읽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 되지 않을까.

프랑스에 있었던 그 해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의 밤 행사가 학교에서 열렸다. 한국 사람 몇 명이서 사물놀이를 연습해 무대에 올랐었고(난 가장 쉬워 보이는 북을 쳤고 북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다), 나 혼자 무대 위에 올라 프랑스인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다 아는, '학교 종이 땡땡땡' 정도의 프랑스 동요를 불렀다. 동요 한 곡을 부르는데 실수는 어마어마했고, 독창이 합창이 된 후에야 나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무대를 내려올 수 있었다. 15년 전 그날, 나에게 프랑스어 동요를 가르쳐준 친구는 프랑스에서 나와 쿵짝이 잘 맞은 언니와 결혼해 아들 셋을 낳아 잘 살고 있다. 작년 여름, 양평 주말농장에서 한바탕같이 놀았던 그들을 프랑스 앙제에서 다시 만나는 상상을 해보며 삼천포로 빠진 샹송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다.

Au revoir! (다음에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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