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이 그리울 때, 모차르트 12개의 변주곡

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 24

by 아멜리 Amelie
Mozart 12 Variations on "Ah vous dirai-je, Maman". 정명훈. 모차르트 "아, 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2018년 11월 28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여름 나라에서 겨울 나라로 날아온 지 열흘이 지났다. 코끝이 찡해지는 겨울바람도,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외투도, 늘 곁에 두고 마시는 뜨끈한 차 한 잔도 이미 익숙해졌다. 열흘 내내 입에 달고 사는 홍시의 달콤함은 지겹지 않고, 6년 만에 만난 친구는 어제 만나고 또 만난 듯 편안하고, 노랫소리처럼 들리는 내 고향 사투리는 정겹기 그지없다.


9E6D5DBE-2837-4C53-9860-4B84ED8D20DF.jpeg?type=w1 나를 안 닮은 줄 알았는데 안경을 씌웠더니 나를 닮았다.


며칠 전 엄마와 나 사이에 자리를 깔고 누운 아이가 한마디 건넸다.

"엄마, 대구에는 늙은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엄마와 나는 아이가 던진 질문이 마냥 귀여워 대답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사실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며칠 동안 우리가 보낸 시간을 더듬어 보니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구에 오자마자 나를 따라다니며 내 친구들을 만나거나, 외할머니 친구를 만나는 시간을 갖다보니 아이는 제 나이 또래의 친구를 만날 겨를이 없었다. 자연스레 대구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만 산다고 아이는 생각했나 보다. 아이가 내뱉은 '늙은'이란 단어에는 긍정도 부정도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마르기 시작한 곶감처럼 조금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의 눈에 나와 엄마는 '늙은' 또는 '늙어가는' 사람으로 비췄다는 게 아주 조금 서글펐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고, 겨울의 포근한 해가 거실을 데우고, 엄마는 시골 이모집에서 얻어온 도토리 가루로 묵을 쑤고 있던 날이었다. 박제된 시간을 품고 장식장 위를 채운 사진들을 훑어보고, 학교 다닐 때 내가 사서 읽고 책꽂이에 일렬로 줄 세워둔 책 제목을 살펴보고, 십오 년도 전에 엄마와 함께 여행 다녀오며 사온 찻잔 세트의 문양을 바라본다. 일 년에 두어 번 찾아오는 친정집은 부모님을 따라 같이 늙어가고 있었다. 비록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오롯이 보낸 집은 아니지만, 다섯 식구의 추억을 곳곳에 이고지고 있는 이 공간과 함께 부모님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자던 아이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 얼굴을 들여다본다. 내 아이와 같은 나이의 내 모습이 떠올랐고, 어릴 적 내 모습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IMG_1915.jpg?type=w1 아이와 내가 가장 애정 하는 과일, 홍시.


나는, 추억의 무덤인 고향에 와 있다.


나는 오전반 오후반이 있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내가 3학년일 때 동생이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다. 나는 오전반인데, 동생은 오후반일 때면 오전반 수업을 모두 마치고 운동장에서 하염없이 놀며 동생을 기다렸다. 교문 옆에 있는 철봉에서 날다람쥐처럼 놀고 있으면 제 몸만한 책가방을 메고 걸어오는 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린 우애 있는 자매인 양손을 꼭 잡고 하교를 했지만 집에서 놀다가 하루에 한 번은 꼭 싸웠다. 어릴 때 살던 동네는 작은 평수의 집이 모여 있는 아파트 단지였다. 우리는 4층에 살았는데, 1층에 살던 동민이 집은 엄마들의 아지트였고, 3층에 사는 봉석이 집은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봉석이 집에는 책이 많았는데, 난 수시로 그 집을 드나들며 책을 읽어댔고, 급기야 봉석이 형제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다.(다행히 봉석이 아줌마는 책을 읽는 나를 이쁘게 봐주었고, 늘 책장 앞에 앉아 있는 나에게 간식을 주기도 했다.) 옆집에는 얼굴이 새하얀 형제가 살았는데, 둘째는 나와 나이가 같았고, 레고를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를 좋아했다.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했던 나는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집에 들어갔는데 집에 들어갈 무렵 내 얼굴과 온몸은 흙범벅이었다. 얼굴이 새하얀 그 친구는 집에서 노는 걸 좋아했고, 나에겐 불가능할 정도의 깔끔한 옷차림새를 유지했다. 그 친구는 2학년 때 이사를 갔고, 좋아한다고 말하면 우리의 우정에 금이 갈까 두려워 사랑 고백은 하지 못했다.


나는 키가 작아 늘 반에서 1번이나 2번을 도맡았지만 우리 골목에서는 대장이었다. 여름 방학 때에는 아파트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동네 아이들을 모아다가 방학 숙제를 같이 했다. 겨울 방학 때에는 운동을 한답시고 아이들을 모아다가 매일 줄넘기를 500개씩 하며 운동 일지를 쓰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을 모두 불러다가 자전거 여행을 떠난답시고 1km 정도 떨어진 어느 아파트 단지를 다녀오기도 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는 '예수 탄생'을 주제로 대본을 쓰고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연극 연습을 했다. 글을 못 읽는 아이들에게는 대본을 읽어주어 외우게 했고, 글을 읽는 아이들에게는 직접 써 내려간 대본을 쥐여주고 외우게 했다. 예수와 동방박사 역할을 하는 아이들에게는 아빠 흰 셔츠를 소품으로 가져오라고 했고, 아파트 건물과 아파트 건물 사이의 작은 라일락 덩굴 아래에 무대를 만들었고, 넓적한 돌들을 주워다가 관객석을 만들었다. 어른은 500원, 아이는 200원 입장료를 받았고, 연극이 끝나고 우리는 떡볶이를 사 먹었다.


4학년쯤 되자 새로운 국민학교가 이곳저곳에 문을 열기 시작했고, 친구들은 집 근처 학교로 전학을 갔고, 오전반 오후반도 사라졌다. 학교 신축 건물에 도서관이 문을 열었고, 방학이면 글짓기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새로 지은 교실에서 원고지를 꾹꾹 눌러 쓰며 글을 지었고, 나중에 자라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결혼식 피아노 반주를 부탁했고 두어 달 동안 신랑신부 입장곡, 퇴장곡만 주구장창 연습했다. 결혼식 당일, 12살이 감당하기에 너무 길었던 주례사를 듣다가 집중력을 상실했고 신랑신부 퇴장곡을 쳐야 할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신랑신부가 버진 로드를 한참 걸어나간 후에야 퇴장 곳을 연주했다. 혼자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게 된 6학년 때, 라면 물을 올려놓고 동생들과 나란히 TV 앞에 앉아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영화를 보며 엉엉 울다가 냄비를 시꺼멓게 태웠다. 엄마한테 혼날까 봐 내 속은 냄비보다 더 까맣게 타들어갔다. 집을 안 태운 게 어디냐며 엄마는 그 시꺼먼 냄비를 저녁 내내 씻었다.


IMG_1925.jpg?type=w1 15년 전 엄마와 유럽 배낭여행 중 바르셀로나 구엘공원에서 사 온 커피 잔. 가우디의 구엘공원을 그대로 닮았다.


첫아이 자장가는 '섬집 아이'였고 둘째 아이 자장가는 '고향의 봄'이다. 고향 떠나 사는 외로움에 나도 모르게 이 노래를 자장가로 선택했나보다. 아이를 재우며 이 노래를 부르면 온 고향 구석구석 여행을 다니게 된다. 팔공산 한티재길도 좋고, 앞산 벗꽃길도 그만이고, 경주고 포항이고 부산으로 도망쳤던 길들은 정겹다. 외할머니 집 대문을 찾아가던 좁고 구불구불했던 골몰길, 할머니가 가래떡을 뽑고 송편을 만들던 바쁘디 바쁜 시장 떡집, 부부싸움한 아빠가 나와 동생을 데리고 갔던 돈까스집, 한밤중에 배가 아파 아빠 등에 엎혀 갔던 응급실......발에 채이는 모든 곳이 추억의 스웨터를 입고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곳, 고향은 그런 곳이었다. 사실 나이 마흔도 되기 전에 '고향'이란 단어 하나에 줄줄이 소세지마냥 추억들이 쏟아져 나올 줄은 몰랐는데 멀리 떨어져 살아보니 아주 많은 소소한 기억들이 고향땅에 얽혀 있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굴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어린 시절 에피소드들을 떠올리다 보니 이 음악이 생각났다.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으로 불리지만 제대로 된 제목은 ‘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제목이 길어진 이유가 재미있다. 이 곡은 원래 18세기 프랑스의 민요였던 ‘아, 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에서 시작되는데 옆집 남자를 사랑하게 됐는데 그 때문에 괴롭다고 하소연하는 소녀의 이야기다. 이 노래에 ‘반짝반짝 작은 별’이라는 동시를 영국 시인 제인 테일러가 노랫말로 붙여 동요 스타일 노래가 됐고 다시 모차르트가 피아노곡으로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가벼운 선율이지만 생강차처럼 마음 한 쪽 구석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힘이 있는 음악이다. 눈을 감고 피아노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이내 어린 시절을 보낸 학교 운동장, 아파트 놀이터를 시작으로 온 동네의 길들과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떠오른다. 한 번쯤 돌아가 보고 싶은 순간도 있고, 머리에서 지우고 싶은 찰나도 있다. 음악이 끝날 때쯤 시간 여행은 끝이 나고 다시 현실이다. 맛있게 끓여놓은 커피 한모금 들이키며 마흔을 앞둔 내 모습을 대면해야 하는 순간이다.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구글 지도를 켜놓고 다녔던 학교들, 동네들, 길들을 살펴봤다. 연년생 동생과 손잡고 등하교 했던 동네는 모두 재개발이 되어 거대한 아파트가 들어앉았다. 좁았던 길들은 넓어졌고, 허허벌판인 동네들은 건물과 사람과 돈으로 가득 찼다. 부모님 집처럼 늙어가는 곳도 있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처럼 젊어지는 곳도 있다.


고향에 와서 아이들 자장가가 '섬집 아이'로 바뀌었다. 고향을 그리워할 이유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 아이들은 섬집 아이를 들으며 잠에 들고, 나는 고향의 밤이 주는 묵직한 어둠 속에서 한 주를 마감하듯 글을 썼다. 나의 추억 위에 켜켜이 먼지가 쌓여가고 있다. 마치 밤새 내린 눈이 쌓여가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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