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25
2018년 12월 19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이모(姨母)
[명사] 어머니의 여자 형제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요즘은 식당에서 서빙하는 아주머니를 부를 때나, 아이의 친구에게 나를 소개할 때 자주 쓴다. 집에서 자주 ‘이모’라는 호칭을 쓸 때가 있는데 바로 아이를 돌봐주기 위해 고용한 여자 사람을 나와 아이가 부를 때이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닐 때, 우리 아이들은 이모(또는 이모 할머니)와 오후 시간을 함께했다. 즉 나는 회사에 고용이 되어 노동력을 제공하고, 우리 이모는 나에게 고용되어 육아의 일부를 담당하는 노동력을 제공한 셈이다.
우리 식구가 싱가포르에 체류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 몸이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서 일을 하고 월급 통장에 고정적인 숫자가 찍혀야 안심이 되는 시간이 온 게다. 그리하여 우리는 육아의 일부를 담당할 이모를 고용했다. 3주간의 한국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바로 다음날, 아침 8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이모가 왔다. 이모의 국적은 필리핀이고, 태어나 자란 곳은 마닐라에서 차를 타고 열 시간 달려야 도착하는 타구딘이라는 작은 도시이다. 이모는 나보다 키가 조금 작고, 피부는 조금 더 까무잡잡하다. 이모의 눈은 크고 까매서 한순간에 우리 식구들의 눈 사이즈가 작아지는 착시현상을 일으켰다.(우리 식구도 어디 가서 눈 크기로 진 적이 없었는데 비교 대상의 국적이 달라지면 우리 눈도 이내 작은 축에 속한다) 이모는 싱가포르에서 5년 넘게 남의 집 아이를 먹이고 입혔고, 남의 살림을 돌보는 일을 했고 나는 그녀의 여섯 번째 고용인이 되었다.
꼭두새벽(여행 다음날 아침 8시는 새벽처럼 느껴진다)부터 우리 집에 온 그녀에게 건넬 밥 한 그릇이 없어서 애 둘을 데리고 그녀와 함께 쇼핑몰에 갔다. 싱가포르의 인기 아침 메뉴인 카야 토스트와 커피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피고용인과 함께 하는 자리여서인지 이모는 많이 먹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고칼로리의 토스트를 여러 개 섭취했다.(이 역시 여행 후유증이라고 치자. 그래야 다이어터로서 마음이 좀 편해진다.) 한국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춥고, 우리 가족은 겨울 왕국을 떠나 여름 나라로 잘 날아왔고, 집에는 할 일이 산더미만큼 쌓여있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어색한 침묵을 깨뜨렸다. 이모는 입꼬리가 흔들릴 정도의 어색한 웃음을 띠며 꼭 대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예스 맴(Yes, ma’am)이라 했다. 여성을 정중하게 부르는 말로 나를 칭하는 말에 내가 더 놀랜 나머지 남은 커피를 원샷하고 서둘러 집에 가자고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여행 가방은 총 7개였고, 그중 2개를 풀어서 정리하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또다시 밖에 나가서 먹을까 하다가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며 반찬을 먹어야 여독이 풀릴 것 같아 부랴부랴 밥을 지었다. 아기똥 냄새와 헷갈리는 밥 짓는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미역줄기 볶음, 우엉채 볶음, 김장 김치를 그릇에 옹기종기 담고, 밥그릇 옆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나란히 뒀다. 미역줄기 볶음과 우엉채 볶음을 좋아하는 아이는 숟가락으로 밥을 푹 떠서 한입 먹으며 웃음꽃을 피웠고, 나는 김장 김치를 찢어먹으며 한여름에 김장 김치의 참맛을 음미했다. 우리가 이렇게 우적우적 맛있게 먹는 동안 이모는 깨작깨작 먹고 있었다. 한국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기에 괜찮냐고 물어봤다. 이모는 이렇다 저렇다 명확하게 설명하는 대신 젓가락에 눈길을 보냈다. 이모의 눈길을 따라간 젓가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모와 젓가락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 헤아리려 했지만 단번에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와중에도 아이는 어린이용 젓가락을 손에 쥐고 열심히 미역줄기 볶음과 우엉채 볶음을 집어먹고 있었다. 몇 초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 정답을 알게 되었고, 나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젓가락 대신 쓸 포크를 챙겨 나왔다.
그녀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서 입에 넣어본 적이 없었던,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젓가락이 놓였던 자리에 포크를 두면서 또다시 젓가락이란 녀석에 대해 생각했다.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먹는 게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어렵고 험난한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게 떠올랐다. 내가 할 수 있거나 하고 있는 모든 말과 행동을 다른 사람은 하기 어렵거나 버거울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첫 반응은 대부분 이런 것이지 않았을까.
“왜~?’
‘왜’라는 질문 뒤에 따라오는 줄임말에는 이런 속마음이 숨어 있다.
‘난 그렇지 않은데 왜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하고 복잡하다고 느끼며 극복하기 힘들다고 하지?’
결국, 나는 나에게 쉽고 이질감이 없고 편안하다 느끼는 말과 행위를 다른 누군가에게도 똑같이(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적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셈이다. 가끔은 이제 막 인간으로 태어난 지 50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적용하기도 하고, 같이 산 지 고작 5년 된 남편에게 적용하기도 한다. 젓가락을 써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젓가락을 쥐여주며 양껏 편안하게 밥 먹으라고 한다면, 눈앞에 놓인 밥과 반찬을 ‘양껏 편안하게’ 먹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이런 생각 자체가 상대방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오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젓가락 대신 포크로 밥과 미역줄기 무침, 우엉채 볶음, 김치를 먹던 이모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굿(good)’이라 했고,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고, 밥심으로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우리 집에 찾아온 이모가 내가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어주어 고마웠고, 또 한 사람을 오해할 뻔했던 잠깐의 시간이 이해로 바뀐 게 안심되어 작고 여린 한숨을 내쉬었다.
젓가락이 포크로 교체되며 오해도 이해로 바뀌었다. 내가 누군가와 마주하고 살아오며 젓가락질을 못하는 사람에게 젓가락을 손에 쥐여주며 오해했던 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식구들, 친구들, 동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길에서 스치듯 만난 모르는 사람들까지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려 시도조차 하지 않고, 알게 되더라도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 나의 잣대만 들이대며 이해할 수 없다고 화낸 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젓가락을 포크로 바꿔주면 된다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어떤 이들에게는 젓가락 대신 포크를 손에 쥐여줘야 하는 것도 모른 채 오해만 가득 쌓고 등을 돌리고야만 시간도 있었으니 말이다.
필리핀 이모에게 젓가락 대신 포크를 건네는 찰나에 오해와 이해의 차이를 발견했다. 상대의 속을 들여다보지 않거나, 속을 들여다볼 필요도 느끼지 않는 순간 오해의 씨앗이 움틀 여지가 생긴다는 것을, 뭐 그리 큰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의 마음 한구석 들여다볼 의지와 짧은 눈길만으로 큰 이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마음보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더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이 이해로 향하는 지름길이리라.
영국 작곡가 칼 젠킨스(Karl Jenkins)는 이탈리아 건축가 안드레오 팔라디오(Andrea Palladio)의 한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어 팔라디오(Palladio)를 작곡했다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건축가가 지은 건물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 인터넷으로 찾아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건축물의 매력에 흠뻑 빠져 구경했다. 유럽 여행을 가면 풍광도 좋지만 집이며 성당이며 건축물이 아름다워 건물 구경하느라 정신없을 때가 있는데 안드레오 팔라디오의 작품들이 모두 그러했다. 건축물 규모가 상당해 장엄하면서도 건물 곳곳에 숨어 있는 고전적인 요소가 가진 매력도 출중해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듯했다. 사진을 찾아 둘러보는 내내 이탈리아를 한번 가야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으니 이만한 감동이 또 있을까 싶다. (짝꿍아 미안, 난 자꾸 돈 쓸 궁리만 해.)
칼 젠킨스의 팔라디오(Palladio)도 건축물만큼이나 웅장한 기운이 있다. 어딘가에 쫓기는 느낌이 아닌 앞을 향해 돌진하는 느낌,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똘똘 뭉친 어두운 기운이 아닌 두 주먹 꼭 쥐고 어슴푸레 해 뜨는 새벽 기운을 뚫고 나아가는 느낌이 가득하다. 특히나 자매 사이인 바이올리니스트 까미유(Camille Berthollet)과 줄리(Julie Berghollet)의 연주를 보고 있으면 두 대의 바이올린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고 공감하게 되는 여정이 담겨있는 듯하다. 음악 '팔라디오'가 가진 기운과 열정이 사람의 마음에 닿고 그 마음을 헤아리려는 움직임이라면 어떨까. 세상에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만 넘쳐나는 관계는 별로 없지 않을까. 이모의 젓가락을 포크로 바꿔주며 나에게 젓가락과 포크는 까미유와 줄리가 연주한 듀엣곡 팔라디오(Palladio)가 되어 있었다.
이모는 토스트 집에서 나눈 짧은 대화 이후 지금까지 한결같이 아주 깍듯하게 나를 맴(ma’am)이라 칭하고 있고, 나는 한결같이 그 호칭을 어색해 하고 있다. 나와 다른 기후와 문화 속에서 다른 말을 쓰고, 다른 방법으로 조리된 음식을 먹은 이모이지만 나처럼 결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다르지만 비슷한 구석이 있는 그녀와 좋은 파트너가 되어 하루하루를 꽤 멋지게 만들어 나가기를 바라본다. 젓가락을 포크로 바꿔준 후, 나는 그녀의 좋은 파트너가 될 마음의 준비를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