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읽어주는 아멜리 No.26
2019년 1월 1일에 작성된 이야기입니다.
두 눈 번쩍 뜨고 지켜보는 맹수처럼 온 세상을 내리쬐던 일요일 햇살이 밀려오는 밤의 차가운 기운에 주저앉는 시간이 다가왔다. 저무는 한주를 마음으로 정돈하기 좋은 의식 중 하나는 일주일 동안 잘(?) 자란 아이의 손톱을 정리해주는 일이다. 주황과 노랑과 빨강을 흩뿌려 놓은 듯한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손가락 위로 웃자란 투명한 아이의 손톱을 ‘따각따각’ 소리를 내며 자르고 있으면 마치 하늘에서 누군가가 내려와 애들 키우느라 한 주 고생했다며 내 어깨를 ‘토닥토닥’ 쓰다듬어주는 느낌이 든다. 손가락을 맡겨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던 아이는 이내 지겨워하고 가만히 못 앉아 있는 상황에 다다른다. 이럴 땐 어서 말을 걸어 대화를 나누며 또다시 가만히 앉아 있게 만들어야 한다. 매일 한결같이 뜨거운 날씨로는 도저히 저물어가는 한 해를 피부로 느끼기 어렵기에 애써 <12월>이라 적힌 달력을 들여다보며 한해 마무리를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떠오른 질문 하나를 아이에게 건넸다.
나: 내년에는 어떤 일이 있으면 좋겠어?
아이: 내년에는 노래를 부를 거야.
나: 무슨 노래를 부를 건데?
아이: 맘마미아 노래.
아이는 뭔지도 모르면서 막연하게 ‘내년’이 ‘내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내 질문에 건성으로 답을 한다. 마지막 손톱을 하나 ‘따각’ 하며 잘랐다. 온몸이 지겨움에 똘똘 뭉쳐있던 아이는 부리나케 방으로 달려간다. 아이의 몸의 일부였던 손톱이 잘린 채 바닥에 뒹군다. 휴지 한 장으로 조심조심 쓸어 담는다. 물감이며 크레파스가 끼여있던 아이의 손톱은 주인의 일상을 닮아 다채롭고 제멋대로다. 해가 제법 많이 기울었다. 붉고 노랗게 수놓였던 하늘에 옅은 먹색에 이어 짙은 바다 물색의 하늘이 밀려온다. 어둠이 밝음을 삼켰고, 아이에게 던졌던 질문을 나에게 던져본다.
‘내년에는 어떤 일이 있으면 좋겠어?’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오늘을 들여다봐야겠다.
‘나의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서 좋았을까?’
테니스.
얼마 전부터 일요일 아침마다 테니스 강습을 받고 있다. 짝꿍과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이고, 배우며 연습하면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운동이고, 세계 여행을 하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테니스를 선택했다. 어려서부터 구기종목을 잘 못했던 나에게 테니스에 도전한다는 것은 마치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번지점프를 하는 것과 같다.(나는 심지어 고소공포증까지 있구나.) 공으로 하는 모든 종류의 운동을 잘 못했던 이유는 공이 너무 무서워서였다. 어릴 적 다니던 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는데 하굣길에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다가 그만 야구부 선수가 던진 야구공에 허벅지를 맞았다. 그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야구부가 훈련을 하지 않는 때에도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 정문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공의 사이즈와 상관없이 공이 나를 향해 돌진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생각으로 만들어낸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반드시 극복을 해야 할 정도로 절박하지도 않았고, 필수불가결한 요소도 아니었기에 공을 피하고만 살았다. 공을 피하고 다니는 불편함은 공이 나를 해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생각보다 수고로운 행위는 아니었다. 테니스를 배우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공에 대한 두려움이 현실로 다가왔다. 집에 굴러다니는, 노란 털이 까슬까슬한 테니스공 하나를 주워다가 손바닥으로 쓰다듬어본다. 생각보다 단단하다. 커다란 농구공이라도 되는 양 바닥에 통통 튀겨본다. 중력의 힘에 이끌려 떨어진 녀석은 밀땅 하듯 바닥을 밀치고 올라와 내 손에 안긴다. 생각보다 잘 튀어 오른다. 단단하고 잘 튀어 오르는 이 녀석이 내 눈두덩이나 내 이마나 내 코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과연 내가 테니스 라켓을 적당한 타이밍에 적당한 힘으로 휘두를 수 있을까. 새로운 운동을 배워보겠다는 의지가 공에 대한 두려움에 멱살을 잡혔다. 이대로 두면 두려움이 KO 승을 차지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손가락 다섯 개로 달걀보다 조금 큰 테니스공을 만지작거리다가 뒤통수를 누가 툭 치고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섭고, 두렵고, 어려워 보이는 그 일을 온전하게 마주하면 상황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하루 강습을 받아보고 공이 너무 무서우면 그만두자는 마음으로 테니스 코트로 향했다. 테니스의 ‘테’자도 모른 채 라켓 하나를 빌려 테니스 코트로 내려간 아침이었다. 심지어 뭘 입고해야 할지를 몰라 집에 있는 요가복을 챙겨 입고 내려간 날이었다. 코치 선생님이 기본자세를 가르쳐주고 서브를 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얹었다.
‘공을 끝까지 보세요. 끝까지 보고 라켓을 휘두르고 날아가는 공도 보고 다음 공을 기다리세요.’
테니스를 배우기로 마음먹고 공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했던 다짐과도 같았던 내 생각과 같은 말이었다. ‘무섭고, 두렵고, 어려워 보이는 그 일(=공)을 온전하게 마주하면(=끝까지 보고) 상황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날아가는 공도 보고 다음 공을 기다리세요)’라고 속으로 삼킨 내 생각을 들킨 것 같았다. 날아오는 공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다 라켓을 갖다 댄다. 라켓 어느 구석을 맞고 공은 오던 길을 돌아가며 점점 작아진다. 같은 중량과 크기를 가진 공인데 다가올 땐 농구공만 해 보이다가 돌아갈 땐 탁구공만 해 보인다. 첫 번째 강습이 끝이 났다. 기본자세는 아직 내 몸속에 흡수되지 않았다. 대신 공이 조금 덜 무서워졌다. 아니,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고작 한 시간 공을 바라봤는데 수십 년 동안 가졌던 두려움이 옅어지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첫 번째 테니스 강습은 성공적이다. 두 번째 강습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나는 두 번째 강습을 기다리기까지 했다. 이렇게 기분 좋은 시간이 앞으로 계속 이어진다면 내년에도 오늘만큼 즐겁고 행복하지 않을까. 특별히 바라는 바 없이 지금만큼 기분 좋게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테니스 코트에서 공을 쫓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뛴다면 이것만큼 괜찮은 시간이 또 있을까!
해가 바뀔 준비를 한다. (이 글을 읽을 즘이면 우리는 2019년이란 시간 속에 이미 편입한 후다.) 선물로 받은 다이어리를 꺼내본다. 내 이름과 연락처를 미리 써 놓고 가족들 생일, 기념일을 기록한다. 뭘 하며 어떻게 한 해를 보내볼까 생각한다. 해가 바뀌었다고 두 손에 힘주며 주먹 쥐고 다짐할 생각은 없다. 어릴 때 공부하듯 목표를 정해놓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진할 생각도 없다. 다만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무던히 해내고 싶다. 좋아하는 책 골라 읽으며 감동받고, 쓰고 싶은 글 써 내려가며 작가가 될 연습도 하고, 아이 둘 건강하게 키우고, 짝꿍과 오손도손 대화하며 사랑하고 살아가고,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 건강한 이야기 나누고, 나무와 바람과 햇살이 있는 곳들 찾아다니며 걷고 에너지 얻고 즐거워할 거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꼭 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혼자 꾸역꾸역 해내고 있는 일들에 집중할 거다. 정말로 새해에 복이 날아온다면 내년에 좋은 결과들이 가을에 수확하는 햇과일처럼 수확하고 있을 테지만, 꼭 그렇게 복이 날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 하면서 난 또 이렇게 즐거워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한 세월을 배웅하고, 다가오는 시간을 마중하는 순간이다.
너무 많은 후회와 미련으로 오는 시간을 맞이하지 말자.
조금 부족하고, 엉성하더라도 다가오는 시간으로 또 채우고 덧바르고 살 마음으로 새 시간을 맞이하자.
그리하여 어제보다 조금 더 느껴보고, 감동하고, 표현하고 살자.
그것 역시도 꽤 잘 살아나가는 방법이지 않을까.
지난주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짧은 기도를 했다.
다가오는 새로운 시간을 기대하며 그 기도를 다시 한다.
아이들과 청년과 여성과 노인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전 세계 인간들이
아프지 않고,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지 않고,
말과 힘으로 다치게 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우리 사람이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친정 오는 딸내미 버선발로 뛰어나와 마중하는 친정엄마의 마음으로 2019년을 맞이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