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러 가는 길
2016년 봄,
신혼집을 정했다.
햇살이 잘 들고
안방 맞은편 작은 방 창으로
북한산이 보이는 집이었다.
하얗고 베이지빛이 도는 돌산.
살아가면서 계속 봐도 괜찮을 풍경 같았다.
그 집을 정한 이유는 분명했다.
그 창, 그리고 그 산.
남편의 아픔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그 집을 잠시 내려놓고
제주의 원룸으로 향했다.
정말 잠시일 거라 믿었다.
“잠시 다녀오자.”
손을 잡고 내려간 날,
우리는 또 하나의 집을 정했다.
작았지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곳 같았고
서로의 중심을 놓치지 않게
붙잡아 줄 공간처럼 느껴졌다.
집 뒤로 무밭이 보였고
해 질 무렵이면
돌담 너머로 해가 졌다.
이상할 만큼 마음이 편안했다.
제주에서 남편은 공사 현장으로 나갔고
우리는 특별한 날이면
작은 케이크 하나를
간이 식탁에 올려두고
촛불 하나에만 의지해 소원을 빌었다.
그 불을 끄던 순간의 온기를
마음속에 남겨두며 살았다.
새해가 시작될 땐
어둠이 깊은 시간에 차를 몰아 나가
길가에 서서 불꽃놀이를 보았다.
손을 꼭 잡고
“좋은 새해맞이하자”
말하던 얼굴이 아직 남아 있다.
시간의 변화를 느낄 틈도 없이
하루가 흘러가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버티게 했다.
‘잠시’였던 시간은
어느새 10년이 되었고
서울의 신혼집은
조용히 정리되었다.
그런데도
택배 주소를 적다 보면
여전히 그 집 주소와 호수가
손에 남아 있다.
그만큼
그 공간의 온도와
그 시절의 나를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
막연히 믿으면서.
삶은 많이 바뀌었지만
마음 한쪽에는
여전히 20대의 내가 살고 있다.
2026년이 시작되었다.
새해인데
더 이상 설레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시간이
도착했다.
그 시작은 2025년 말,
의지로 나를 세워도
더 이상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사라져야 살 것 같았다.
그 지침 속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고
10년의 시간을 뒤로한 채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여기에 계속 있으면
시간이 나를 붙잡고
“너는 여기 있어야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죄책감은 따라왔지만
그걸 안고
계속 살 수는 없었다.
서울에 집을 얻고
혼자 있는 시간을 선물 받은 날,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산책 좀 해.
왼쪽으로 가다가
코너 돌자마자
뒤를 한 번 돌아봐.”
귀찮았다.
괜히 또 의미를 찾으라는 말 같아서.
그래도 나갔다.
풀을 보고, 새를 보고
아무 느낌이나
붙잡으려 애쓰다가
무심코 뒤를 돌았다.
그곳에
10년 전에 놓아두고 온
북한산이
창이 아니라
내 눈앞에 있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그 산을 보는 순간
너무 그립던 나를
조용히
다시 불러올 수 있었다.
'너무 네가 그리웠어.'
그때의 나,
그때의 온기,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위로가
말없이 돌아왔다.
어쩌면
나만 이런 시간을 건너온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지나온 시간 위에 발을 딛고
조금 더 진하게 느끼는
편안함이었다.
멀어졌던 나를
다시 불러들이는 일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고
아주 조용하고
사적인 시간으로 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어
괜히 발걸음이 빨라지듯,
나도 그때의 내가 그리워질 때면
아무 조건 없이
이유 없이
그냥
만나러 가고 싶어진다.
이제는
가면 만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나를 향한 그리움은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으로
조용히
만나러 가면 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