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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드레 Sep 06. 2023

나의 기도, 아들의 기도

우리 엄마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우리 엄마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열아홉의 나는 엄마를 위해 기도했다. ‘수능을 잘 보게 해 주세요’ , ‘좋은 대학에 가게 해주세요’가 아닌 우리 엄마 안 아프게 해 주세요. 나의 유일한 기도 제목이었다. 그리고 20대 내내 변함없는 기도 제목이었다.


항암의 후유증으로 팔다리가 저리다는 엄마를 주무르고 또 주물렀다. 악력이 약해 조금만 힘을 주면 엄지 손가락 아래 부분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나보다 더 아플,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 엄마의 통증을 줄여주고자 엄마의 몸을 주물렀다. ‘우리 엄마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코로나로 인한 순환 휴직이 끝나자마자 모든 일은 지나치게 정상화되었다. 비수기를 찾아볼 수 없는 극성수기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걸어서 오는 한국.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고 퇴근을 한다. 유니폼을 벗을 틈도 없이 엄마 모드가 ON 된다. 밥을 차리고, 치우고, 쌓여 있는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한다. 누구나 다 하는 그런 엄마의 삶이지만 이미 모든 체력을 소진한 나에겐 녹록지 않은 일들이다.


왼쪽 엉덩이와 허벅지, 종아리, 발목, 발바닥, 발가락 사이사이에 통증이 밀려온다. 늘 왼쪽 몸이 문제다. 나의 고통스러워하는 신음 소리에 초등학생이 다가온다. 생후 48개월 무렵 시작한 마사지 조기 교육이 최근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순간을 위해 꾸준히 밟는 법과 주무르고 누르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던가. 게다 이젠  제법 악력도 생긴 초등학교 최고참 형님이다.


문제는 내 몸뚱이다. 통증이 점점 깊어진다. 뽀송뽀송 샤워를 하고 나온 어린이의 몸이 다시 촉촉해지고 있다.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였다. 피곤에 통증이 더해지자 짜증과 신음이 뒤섞였다. 초등학생이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 엄마 내가 기도해 줄게. 손을 모아.

하나님 우리 엄마 안 아프게 해 주세요 ‘


익숙한 기도문이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우리 엄마를 위해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수천번 했던 그 기도였다. 아이는 한 단어 한 단어 꼭꼭 눌러 말하며 기도에 간절함을 더 했다. 통증을 정신력으로 극복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기도를 마친 아이가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질문을 한다.

 

 ‘좀 어때?’

 ‘아까보다 나아진 것 같아’


모르핀도, 나의 정성 어린 주무름도 아니었다. 우리 엄마는 정신력으로 통증을 극복하셨던 것이다. 기도의 응답은 기적의 치료가 아니었다. 나는 통증을 잊고자 잠을 청했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 안 아프게 해 주세요.


다시 또 걸어서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 왔다. 발에 쥐가 나 발가락이  뒤틀린다. 주무르고 또 주물러 쥐를 펴 본다. 적당히 풀어진 후엔 베개에 다리를 올려놓고, 종아리에 휴족시간 한 장을 붙인다. 좀 더 회복이 된 후 마사지 건으로 발바닥과 종아리를 마사지한다. 컨디션을 되찾아와야 한다. 집에 돌아가야 하니까.


손 끝 야무진 초등학생의 온도가 그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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