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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드레 Sep 09. 2023

마미의 해방일지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들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혁명가도 쌈꾼도 되지 못 한 그녀는 바로 나의 엄마이다.

 ‘우리 엄마는 욕을 너무 안 먹어서 일찍 돌아가셨어’ 장례식장에서 내 손을 잡고 위로하는 사람들에게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이런 말을 했었다. 평생 화 한 번, 큰소리 한 번 낸 적 없는 바보 같은 우리 엄마. 좀 이기적으로 살았으면, 싸움도 하고 욕도 먹었으면 지금까지 살아 계셨을까?


고향 뒷산 가장 높은 곳 붉은 나뭇가에 엄마를 보내드렸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 산에 오를 수 없다. 정상에 오르기 위한 산 초입의 개인 사유지 땅이 철조망으로 둘려 막혀 있기 때문이다. 갈 곳 없는 쓸쓸한 엄마의 기일, 그 허전함을 달래려 나는 매년 추모글을 썼다. 올 해로 16년. 중학생의 나이와 같다. 그날이 다가오면 이젠 먼저 기억해 주고 올해의 글을 기다리는 지인들도 생겼다. 엄마의 이야기를 쓰며 엄마를 기억하고 엄마 없는 슬픔을 달랬다.


홀린 듯 책을 읽었다. 빨치산이 아닌 인간 아버지의 이야기에 마음이 쏠리자 문뜩 억울함이 밀려들었다. 나의 이야기, 나의 글감을 빼앗겼다. 16년 동안 덤덤히 엄마의 이야기를 써 왔는데, 언젠가는 흩어진  엄마의 이야기를 모으려고 했었는데, 내가 먼저 울 마미의 해방일지를 쓸 수 있었는데, 쓸데없는 경쟁심에 심장 박동수가 빨라졌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자꾸 엄마가 보여 눈앞이 흐려져 버렸다.


엄마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었을까? 아직도 혁명가인 아빠인가? 싸움꾼인 나인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차원 언니인가? 13년 동안 지긋지긋 엄마를 괴롭힌 암세포인가? 변변한 친구 한 명 없이 오직 가족이 전부였던 지루한 엄마의 인생인가? 찬찬히 엄마의 시간들을 떠올려 본다.


생각이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직도 나는 엄마를 해방시킬 준비가 안 되었나 보다.

그냥 더 오래 추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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