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의 중간고사
우와아아아
저기 네 이름 있다!
벽면 가득 빼곡히 줄 서 있는 이름들 중 엄마는 내 이름을 찾아냈다. 전화로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덤덤했던 엄마가 이렇게 기뻐하시다니 감정기복이 없는 엄마가 이렇게 기뻐했던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멀쩡하게 열심히 공부 잘하던 딸이 성악을 전공하고 싶다고 고2 중순쯤 선언을 했을 때 엄마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목회자 가정에서 예체능 뒷바라지는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평생 말 잘 듣는 착한 딸,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던 믿음직스럽던 막내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등을 돌린 셈이었다.
엄마는 결국 나의 무모한 도전을 지지해 주셨다. 대학생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비싼 레슨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우리 형편엔 얼마나 큰돈이었을지, 엄마가 얼마나 더 아끼며 살아야 했었을지, 엄마의 난감하고 힘들었을 삶을 이해하기엔 난 그저 철없는 10대였을 뿐이다. 다음 해 엄마는 발병했고 나는 엄마의 병실 보호자 침대에서 수능 기출문제를 풀어야 했다.
호기롭게 덤볐지만 결과는 뻔했다. 나의 내신과 수능 성적을 아까워하셨던 선생님은 우주상향 지원을 권유하셨고 잠시 눈먼 나는 1년 반이라는 턱 없이 짧은 실기 준비 기간을 망각한 채 ‘가군, 나군, 다군’ 세 곳 모두 가장 높은 학교를 지원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엄마는 크게 슬퍼하지 않으셨다. 괜찮다고 하셨다.
아침에 눈을 뜨면 도서관에 갔다. 공부는 오롯이 혼자의 몫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실망한 표정을 지은 적도 크게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으신 적도 없다. 늘 똑같은 온도로 밥을 차려주시고 나의 수다를 들어주시고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를 하셨다.
이번엔 선생님의 권유를 모두 마음으로만 받고 한 단계씩 낮춰 지원을 했다. 이번애 떨어지면 음악을 포기하고 전문대 유아교육과에 가기로 스스로 마음을 먹은터였다. 더 이상 엄마를 힘들게 할 수는 없었다. 실기 시험을 모두 망쳤다. 특히 나군에 지원한 학교에서는 가망이 전혀 없을 정도의 큰 실수를 했다. 가군과 다군의 발표가 예비 번호 하나 없이 불합격으로 결정 난 다음날 난 전문대 원서 도장을 받기 위해 고등학교 언덕을 올랐다.
바로 그날 보나 마나 불합격이 뻔한 나군의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기적의 결과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 엄마 합격이래’
‘당장 학교에 가서 직접 보고 확인하자 ‘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초록 전철에 몸을 실었다. 추운 겨울 칼바람을 가르며 엄마랑 손을 꼭 잡고 정문을 지나 광장으로 향했다. 벽면 가득 하얀 종이에 빼곡히 적혀 있는 이름들
‘여기 있다!’
엄마의 환한 미소가 가슴에 가득 담겼다.
‘엄마 고마워’
하늘에서 낙엽 눈이 떨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11월의 가을이 찾아왔다. 고등학생이 뱃속에 꼬물거리던 그 가을, 곧 엄마가 될 나를 두고 엄마가 하늘로 이사를 갔던 그 가을이 찾아왔다. 쓸쓸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향한다.
중간고사 국영수를 깔끔하게 말아 드신 고등학생이 2주 만에 집에 와서 만화책과 한 몸으로 소파에 뒹굴고 있다. 학비 아까우니 이럴 거면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라는 샤우팅에도 아이는 꿈쩍 안 한다. 나의 무모한 도전에 샤우팅 대신 소리 죽여 기도하던 나의 엄마, 나는 어떤 방식으로 나의 아이들의 곁을 지켜야 할까?
멀찍이 서서 아이를 바라보다 엄마 사진에 눈길이 간다.
‘엄마’
그리움의 눈물인지 답답함의 눈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눈가를 적신다.
‘가을이라 그래’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를 따라가려면 한참 멀고도 먼, 아직도 엄마가 필요한 곧 50세, 나의 허전한 가을이 올 해도 이렇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