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 올해도 엄마를 추모하며
거리가 온통 노란색으로 뒤덮였다. 까치발로 은행 사이사이를 피해 걷는 중학생이 투덜거린다.
‘은행 정말 싫어, 가을 정말 싫어!‘
‘왜애 엄만 너어무 좋은데’
우리 엄마는 시골 출신이다.라고 말하기엔 이케아의 도시 코스트코의 도시, KTX의 도시, 광명시는 이제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명실상부 도시가 되었다.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엄마가 나고 자란 곳이다. 논 밭으로 산으로 개울로 뛰놀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엄마는 자주 해주셨었다. 엄마는 갖가지 나무와 꽃, 풀들의 이름을 잘 아셨고 땅에서 나는 풀들 중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걸 잘 구별하셨다.
근처 공원에 산책을 나가면 엄마는 늘 잔디나 화단에 자란 쑥을 비롯해 이제는 이름이 희미해진 다양한 먹을 수 있는 풀들을 찾아내곤 했다. 그리고 종종 캐어 가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 하시고 쭈그리고 앉아 그 풀들을 획득해 집에 가지고 돌아가시기도 했다. 도시에서 시골의 삶을 만끽하는 엄마는 참 행복해 보였다.
거리가 노랗게 물들었다. 발산역에서 88 체육관까지, 버스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은행나무가 엄마를 반겼다. 그 구역의 은행은 모두 엄마의 차지였다. 운동을 가실 때마다 비닐봉지를 챙겨 거리에 떨어진 은행을 주워 오셨다. 경쟁자 할머니의 등장으로 많이 줍지 못해 아쉬웠노라 또 가끔은 바람이 불지 않아 노랗게 익은 은행이 떨어지지 못하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런 엄마의 모습은 순박한 소녀 같았다. 나는 쉬는 날마다 엄마를 따라 발산동 거리를 누비며 수확의 기쁨을 함께 누렸다. 은행을 줍는 엄마의 뒷모습은 참 사랑스러웠다. 그때만큼은 환자가 아니라 누구보다 건강하고 씩씩한 그냥 우리 엄마였으니까.
깨끗이 씻은 은행의 딱딱한 껍질을 깨면 연둣빛 은행이 등장한다. 마른 팬에 소금을 살살 뿌려 정성껏 구운 은행을 가족들에게 나눠 주신다. 늘 똑같은 엄마의 멘트
‘은행은 몸에 엄청 좋아
그런데 많이 먹으면 독이야
딱 엄마가 주는 만큼만 먹어야 해
맛있어도 더 먹으면 안 돼’
너무 맛있어서 더 먹고 싶었는데
너무 귀해서 오래 갖고 싶었는데
엄마는 추억거리만 한가득 남기고 너무 일찍 내 곁을 떠났다. 엄마의 사랑도 넘치면 독이 될까 봐 그러셨을까?
더 달라고 떼를 쓸 수도 없고
다른 맛으로도 대체가 안 되는
엄마의 연둣빛 사랑이 그립다.
2007년 11월 11일 1시
엄마가 하늘나라로 이사 가신 날
올해의 추모 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