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님은 우리의 할머니다.
우리 집에 오셨던 이모님은 여섯 분이다. 지금 함께 계시는 이모님은 둘째 아이 두 살 때 오셨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이모님을 만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마음의 여유와 당당함이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내가 없을 때 우리 집의 가장 큰 어른이 되어 주실 수 있는 분을 만나고 싶었다. 이 모든 걸 가지고 계신, 나보다 더 곱고 세련된 이모님은 따님과 함께 면접을 보러 우리 집에 오셨다. 우리 가족이 어떤 사람인지, 이모님이 계셔도 될 만한 집인지 따님과 천천히 살피시는 모습에 내가 면접을 보는 건지 당하는 건지 혼란스러웠지만 나는 그런 이모님과 따님의 모습에 홀딱 반하게 되었다.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곱게 단장을 하고 오시는 멋쟁이 이모님은 집에 오시면 편한 옷에 앞치마를 두르시고 아이들의 보호자로 변신하셨다. 온전히 아이의 아이를 위한 아이만의 이모님이 되어주셨다. 당연히 두 아이 모두 원에 보내려던 나의 계획은 두 돌도 안 지난 아가를 어떻게 어린이집에 보내냐는 이모님의 항의에 무산되었다. 결국 첫째 아이가 불공평하다며 강하게 컴플레인을 하여 둘째를 두 돌 넘어 보내게 되었을 때도 제일 늦게 어린이집에 보내시고 점심시간이 지나면 바로 아이를 데려 오셨었다. 둘째 아이는 이모님이 다 키우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과 늘 함께 책을 읽으시고 아이들의 질문에 누구보다 현명하게 대답해 주셨으며 혹시 잘 모르는 분야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 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설명을 해 주셨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 첫째 아이는 할머니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할머니처럼 멋진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도움을 받을 가족이 없는 내가 20년이 넘게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첫 번째도 백 번째도 바로 우리 이모님이다. 그런 이모님이 두 달 전 빗길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치셨다. 할머니의 부재로 우리 집은 큰 혼란에 빠졌었지만 다행히 십 대 아이 두 명이 씩씩하게 할머니의 빈자리를 채우며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 어린이날을 챙기러 다친 허리를 겨우 일으켜 세워 집에 방문하셨던 아이들 바보 우리 이모님. 우리는 매일매일 할머니를 걱정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만날 수 있다는 좋은 이모님
나보다 더 아이들을 사랑하고 걱정하시는 우리 이모님
내 원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언젠가부터 우리는 이모님이 아닌 할머니라 부른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외할머니가 보내 주신 우리의 할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