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梦到北京] 좋았고 슬펐고 행복하고 아팠던 베이징
努力活下来。如果跑也跑不了,喊也喊出只剩这两个字活看。不如意才是我们生活的常态但是我们作为人一旦跌进深渊我们还有最后一丝底线必须守住那就是活下去。但是人生很长,也许有很多坎坷和深渊同样也会有很多一马平川。所以我们更需要想的是如何拼尽全力,从深渊当中爬出来,去面对我们更精彩的人生。去创造一个更美好的未来。
<-iqiyi 九部的检察官 中>
Just keep pushing forward. When you can't run or ask for help, all you can do is give it your all and survive. Life doesn’t always go as planned, but when you're at rock bottom, the only thing you can hold onto is survival. Life is long, and yeah, it’s tough at times, but there are also plenty of good days ahead. What we need to focus on is giving everything we’ve got, pulling ourselves out of the darkness, and embracing a life that’s even better. We’ve got to think about how to create a brighter future.
살아남아야해요 도망도 못치고 도움도 못청하면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세요 뜻대로 되지않는게 인생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나락으로 떨어졌을때 반드시 지켜야할 선이 있다면 그건 바로 살아남는거에요 살다보면 수많은 역경이 닥칠수도 있고, 한없이 평탄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고민해야하는건 어떻게 하면 역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생활과 멋진 미래를 만들어 낼지에요.
이제 중국어도 곧잘 한다. 외국어로 말하라고 하면 가장먼저 튀어나오는 것은 중국어이다. 분명 영어로 질문을 받았는데 중국어가 습관적으로 나온다. 5-6년이 누군가에겐 짧았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길었고 긴 시간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해에 사드가 터졌고 우리가 귀국할때 코로나가 터졌다. 모든게 쉽지 않았고 다사다난 했으며 남편에게도 고난의 행진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매일 미션을 클리어하며 지냈다. 그리고 난 베이징이 좋아졌다. 중국 사람들도 착하고 좋았다. 물가도 낮고 치안도 안전해 놀러다니기도 좋았다. 굳이 한국에 살지 않아도 된다면 베이징에 계속 머물고 싶었다. 외국인으로서 조심해야할 부분도 있지만 현실에서 한발 물러나 자유를 만끽하며 즐기고 중국어도 조금만 해도 칭찬받는 삶이 좋았다. 현실감이 사라진 채 사는 느낌이었다
미국에 온지 딱 1년이 되었다. 그 사이 나는 여전히 베이징의 햇살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하지면 여전히 나는 글을 쓸 준비가 안되어있었다. 나의 기억속의 베이징들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자주가던 매장이름도, 항상 놀던 동네도, 맛있게 먹던 음식도 하나씩 지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내가 느꼈던 공기의 온도, 사람들 사이에서의 공간감, 알려주고 싶던 장소들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의 왕푸징의 글은 계속 서랍속에 잠겨있어야만 했다.
우연히도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을때 예원씨가 그랬다. 언니 우리는 적자생존이잖아요. 적자 생존하기위해. 적자생존은 다른말로 살고싶어서 쓰는 이야기라는 말이었다. 1년만에 서랍속의 왕푸징 글을 꺼내며 한자 한자 적어내는 그길에 우리가 웃었던, 울었던, 신났던, 행복했던, 아팠던 베이징이 생각났다.
자금성 동화문에서 왕푸징으로 가는 길을 좋아했다. 오래된 고목의 푸른 잎은 웅장한 그늘을 만들어 여름의 태양으로 지켜주었고 겨울엔 그 앙상한 가지에 살포시 올려진 눈은 동화속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동교민항이 나온다. 그리고 거기서 동쪽으로는 베이팡이 있다. 왕푸징은 지나치는 곳이지만 다 연결시켜주는 곳이었다. 별거없지만 별거없는게 아닌 곳이 왕푸징이었다. 아 베이징은 역시 다 이어져있어란 생각이 들었다. 후통처럼, 수향마을처럼 중국의 길들은 계속 걸어가라고 스스로의 힘으로 앞으로 나가라고 용기를 주듯 계속 이어져있었다.
왕푸징은 중국이라는 나라를 아예모르던 시절 처음 베이징에 어학연수중이던 남편을 만나러 갔던 그 겨울 처음 묵었던 호텔이 있는 곳이었다. 지나가다 문득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견하며 아 왕푸징옆이었구나 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왕푸징의 야시장도, 처음 문을 열자마자 달려갔던 빅시와 치즈케이크 팩토리도, 예원씨와 거닐었던 아라비카커피숍도, 혼자 수안라또우지아오반찬을 샀던곳도 왕푸징이었다. 하도 유명해서 어떤 곳인지 남편한테 가자고 졸라서 억지로 데이트도 했고, 결국 할게없는 왕푸징 쇼핑몰에서 커피만 사먹던 곳이기도했다. 정처없이 왕푸징을 돌다가 들어간 슬로우보트悠航SLOWBOAT(灯市口店)에서 맥주를 마시고 지하에 있는 미술관에서 다시한번 케테 콜비츠를 만나기도 했다. 베이징의 어느 골목에선 웃고 어느 길에선 울고 어느길에선 행복했고 다른길에선 슬펐던 그런 곳들이 결국 모여 왕푸징에서 마침표를 찍게했다. 왕푸징은 그야말로 훠궈같은 느낌이다. 어울리지도 않은 건물들이 모여있고, 해외의 상품들과 중국 상품들이 고루 섞여 안어울릴거같은데 묘한 이질감으로 다시 찾게 만든다. 사람들도 다양하고 중국사람들도 지방사람부터 베이징런까지 모두 모여있다. 모두 모이게 하는 곳 이래서 왕푸징에 오는구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나의 베이징은 너무 당연하게도 다양한 단어로 표현이 된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곳이 한 단어로 정의된다는것도 우스운 일일테니... 나의 베이징은 동네로 말한다면 왕징이고, 컬러로 표현한다면 미묘한 그린톤을 가진 그레이이고 계절로 표현한다면 오후 5시의 뜨거운 햇살이다. 지난 5년간의 시간들이 함축적으로 다 담기에 내 글은 너무 조잡함이 드러난다. 중국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무비자일때 여행이라도 한번 가보고라고하고 싶다. 물론 단점도 많지만 생각했던것보다 장점도 많고 편견을 깨는 부분도 많을테니 말이다.
36년간 온실같은 테두리 안에서 경직된채 살다가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그럴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하찮음과 내 자신의 바닥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던 귀한 경험을 한 곳이었다. 물렁했던 나에게 주관을 가지게 했고, 좋은게 좋은게 아니란것도, 내 손으로 지켜야할 것들을 지킬 수 있어야 진정한 삶이라는것도 배운 곳, 무력함을 받아들여야 어른이 된다는 것도.. 그래서 더 그립고 돌아오지 않는 순간들을 곰씹어보고 싶어 적게된 것 같다.
언젠가 다시한번 베이징을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그렇게 시작된 글이 왕푸징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게되었다. 베이징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 남편에게 감사함을, 그리고 내 맘 속에서 영원히 반짝이는 별이 된 하나아루츠키에게 사랑을 전하며 끝을 맺어본다
당신에게도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