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梦到北京] 역사책 속 서양골목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 밖의 것들까지 신경 쓰기엔
인생은 너무나 짧으니까.
<결국 결말은 해피엔딩> 중에서
어느정도 이 도시를 알게되었다고 생각하던 찰나 조계지같은 곳이 눈에 띄었다. 여 여긴 어디지? 베이징에서 못가본 곳인데? 하며 까오두띠투高度地图를 열었다. 도통 모르겠다. 티엔안먼天安门 아래쪽이라구? 거긴 베이징팡北京坊인데 하며 이리저리 검색했을 때 나타난 이름 동쟈오민샹东交民巷 옛 공사관(외국 대사관) 거리였다 역시 다 안다고 다 아는게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던 기록 별장인 단기서의 관리부는 대로변에 있어 누구에게나 흥미를 불러 일으키고 쉽게 볼 수 있다면 동쟈오민샹은 오래된 고목 가로수에 휩싸여 은밀히 숨겨져 있었다. (현재는 싼리툰에 대사관들이 있다)
베이징이란 커다란 방의 비밀의 방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시정부나 공안부 건물로 사용되는 곳이 많이 사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한정되어 있지만 지난 5년간의 베이징 생활 중 또 새롭게 발견되는 장소가 있다는 건 설레일 수 밖에 없었다. 양파같이 앙큼한 베이징 같다. 낯섬은 어느새 스며들어 호기심이 되었고 그 후엔 사랑으로 변했다. 매력이 끝도 없는 베이징이다. 그렇게 이 도시는 날 그렇게 공중에 띄워 순식간에 동쟈오민샹으로 데리고갔다.
추운 겨울 날이었다. 햇살은 따사로웠지만 바람은 차가웠다. 띠띠에서 내리자마자 예원씨는 어 여기 우리성당인데?라며 익숙해 했다. 아! 한국인들이 다니는 성당이 여기구나! 종교활동을 하지 않는 나는 몰랐지만 많은 한국인들에게 익숙했던 곳이었던 것이다. 와 되게 멀리오네요? 전 왕푸징에 있는 동당 성당이 한국인들이 다니는 성당인줄 알았어요.하며 왕푸징의 이뻤던 그 성당도 어떻게 거기에 세워진건지 궁금해졌다. 알고보니 베이징에선 지정된 장소에서만 종교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듷과 같이 종교활동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요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그때만 한국인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중국도 종교활동을 할 수 있지만 포교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전도나 포교활동을 할 경우엔 추방당할 수 있다.
성당과 주변의 민국시대의 건물 곳곳엔 웨딩촬영을 앞둔 커플들이 많았다.목도리에 귀마개까지 필요한 추위었지만 결혼을 앞둔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겐 추위는 두렵지 않은 것 같았다. 정은씨와 예원씨 나 모두 경험자라 모두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 저 때가 좋았지" 저 때가 지난 우리는 옷깃을 여매고 조계지 느낌이 물씬 나는 이 골목을 걷기시작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세인트 미카엘 성당圣弥厄尔大教堂 앞 옛 벨기에 대사관 터比利时使馆旧址였던 자금빈관现紫金宾馆은 현재도 호텔로 운영되며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왕훙들은 1층 커피숍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기며 SNS에 올리기 여념없다. 자금빈관은 석양이 질때 금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이 이쁘다고 한다. 좀더 거리를 걷다보니 단층의 독특한 컬러의 건물이 보였다. 프랑스의 우정국건물法国邮政局旧址인데 지을 당시 중국식 청수벽돌로 지어 다른 건물들과 다르게 잿빛의 독특한 느낌을 준다. 건다보면 미국스럽고 거대한 건축물이 나오는데 중국 경찰박물관北京警察博物馆이라고 한다 20세기 초 미국 씨티은행花旗银行 북경지점 건물이었다고 하는데 최근 뉴욕에 다녀오니 그 건물이 왜그렇게 크고 거대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경찰박물관은 사전에 예약하면 안에 관람을 할수 있고 비용을 무료라고한다. 그리고 골목 끝부분엔 날 사로 잡았던 건물이 나오는데 중국 법원건물中国法院博物馆이다 옛 일본의 정금은행터(正金银行旧址)였다. 이 서양골목을 거닐면서 느껴졌던 것은 중압감이 꽤 크다는 것이다. 우린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사진을 찍으면 안되는 곳들도 많았고 (시큐리티가 나와서 사진을 지우라고한다) 곳곳에 사복경찰들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자금성이 코앞인데도 관광객보단 서무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웨딩촬영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비교적 분위기도 차분하고 조용했다. (아! 거리에 상점이나 노점이 없다!) 이곳은 2004년 역사문화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 공사관 거리는 중국의 역사시간에 배우는 일부분이라고 하는데 굴욕적인 신축조약을 맺은 곳이라고 한다.
청나라가 독일 ·일본 등에 사죄사(謝罪使)를 파견할 것, 배외(排外) 운동을 금지할 것, 관세 ·염세를 담보로 한 4억 5000만 냥의 배상금을 지불할 것, 베이징에 공사관(公使館) 구역을 설정할 것, 외국 군대를 상주시킬 것, 베이징 주변의 포대를 파괴할 것 등을 수락한 불평등조약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당시로선 굴욕적인 사건이 있던 곳은 시간은 흘러 어느새 문화적 역사와 정취가 넘치는 건축물로 이쁘게 사진을 남기는 곳이 되었다. 무슨 일이든 하나의 사고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이해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예전엔 그랬다면 지금은 다를 수 있다. 역사의 선택은 언제나 무겁지만 시간이 흐르기에 유연한 태도로 바른 선택을 하도록 노력해야 길게 이어진다. 그 옛날의 신념이 지금은 통하지 않는 이유다.
최근에 많이 느끼는 건 걸을 수 있는 도시엔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도시는 산책자에 의해 일구어진다는 느낌이랄까. 베이징에 많은 사람들이 citywalk를 태그로 붙이며 개인 SNS에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는데 나 같은 사람들은 또 그런 정보를 보며 그 곳을 궁금해하고 방문하게 되고 나만의 루트를 개발하기도 하고 추천 장소에 가보기도 한다 그렇게 도시는 걷는 산책자에 의해 생명력이 생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발의 감각이 충만한 곳, 내딛어 걸어야 보여지는 것이 많은 도시는 언제나 즐겁다. 걸을 수 있다는 얘기는 충분히 안전하다는 얘기이고, 걷는 사람이 많다는 건 보여줄게 많단거다. 그렇게 걷는 사람이 모이면 당연히 맛집도 늘어나게 되고 이런 순환들은 그 도시의 색을 결정하고 이 도시의 매력을 만들어낸다. 베이징은 나에게 그런 도시다. 지난 발자취를 생각해보면 후통의 좁은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정리하며 내가 가야할 방향을 정하게 되었고, 그 도시를 맛보았고 삶을 이어받았다. 모든 것이 걸으면서 보통의 일상을 산책하였기 때문에 얻어질 수 있었다. 올드 타운의 현재와 과거는 현대적인 것들과 비교할 수 없다. 전 세계에 있는 프랜차이즈가 편하고 일률적이긴 하지만 시대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가지고 있지 않은 이유와 비슷하다. 생활 여행자로 매일을 걸으면서 산책자가 만든 골목이라는 장소를 더더욱 추앙하게되었다.
역사책의 한 페이지에 적힌 서양 골목을 걸으며 현재에는 지어지지 않는 건축양식들을 보면서 이 아름다움이 현재에는 이어지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떤 현상들은 재해석되어 현재에 또 다른 양식으로 선보이던데 건축은 왜 그렇지 않을까 난 아마도 현재에 이 과거를 구경하는 사람이라 이 아름다움에 매료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를 살았더라면 이 건축양식은 일상적이고 보편화된 것이라 그다지 흥미가 없었을 수도 있다. 더이상 이어지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의 네모난 건물들만 잔뜩있는 현실은 아쉽기 그지 없다. 어쨋든 멈추어버렸기 때문에 민국의 건물들은 현대로 와 더 개성을 발하고 사랑을 받고 추앙받게 되는 것 같다.
또 옛 건축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지금은 없는 아름다운 양식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시간을 버텨온 숙연함을 보면 나도 잘 버틸 수 있을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말을 뜻은 난 내 아이들의 시간을 꺼내어 보는데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하다. 아직도 약하고 무너질 수 있다. 고양이 별로 돌아간 내 아이들의 사진을 한켠에 깊게 숨겨놓았다가 마음이 안정되고 내가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날에만 살짝 본다. 영상 속의 내 아이들은 여전히 이쁘고 여전히 사랑스럽다. 이불을 감싸기도하고 뛰어다닌다. 만질 수 없는 나만 존재할 뿐이다. 시간이 흘러도 슬픔은 담담해지지지 않는다. 오래된 건축물에게 받는 위로는 시간을 버티며 달라붙은 이끼들처럼 내 상처도 버텨내면 단단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