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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눈보 Oct 03. 2022

사이코패스와 어울려 사는 법

[서평] 제임스팰런 <사이코패스 뇌과학자>

내 기억으론 '사이코패스'가 화제로 떠올랐던 건 2000년대 중반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애청자였던 나는 인두겁을 쓰고 살인을 저지르며 쾌락을 느낀다는 그들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대체 어떤 뇌구조와 성장 배경이 그들을 새로운 종족인 사이코패스가 되게 했는지 두렵고도 궁금했다.


그 시기 대학생이었던 나는 한동안 도서관에 틀어박혀 살인, 범죄, 수사, 사이코패스와 같은 키워드로 출간된 책을 연달아 읽었었다. 그때 당시엔 사이코패스가 이제 막 이슈로 떠올랐던 시기라 나의 호기심을 채워줄 만한 책 보단 피해 사례 중심의 내용이 주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론 사회생활에 찌들어 조금이라도 지친 심신을 위안받고자 가볍고 재밌는 장르를 선호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범죄물 같은 장르에 대한 호기심이 잦아들었다. 이런 나에게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라는 제목은 해소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던 호기심을 깨우기 충분했다. 


이 책은 자칭 '친사회적 사이코패스'라고 말하는 뇌과학자인 제임스 팰런 교수가 집필한 책이다. 그는 자신이 사이코패스 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다. 살인범들의 뇌 스캔 사진을 분석하는 연구 중이었던 그는 일반인 뇌 대조군으로 자신과 가족들의 뇌 사진을 찍게 된다. 그러다 일반인 대조군에 사이코패스적 패턴이 뚜렷하게 보이는 스캔 사진을 발견한다. 잘못 섞인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뇌스캔 사진은 자신의 것이었다. 


자신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뇌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팰런 교수는 자신의 조상에 대해 조사하게 되고, 그중에 살인자가 7명이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6대조 할아버지는 미국 식민 사상 최초로 친모를 살해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문에 사이코패스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사이코패스 뇌는 감정을 조절하는 변연피질이 손상이 되어있거나 활동이 저조하다. 그 결과 도덕성과 타인과의 공감 능력이 결여돼있는 채로 냉담하게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다. 팰런 교수는 '우리는 태어난 대로 살아간다'라고 주장하던 과학자였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도 범죄자가 되지 않은 자신이 곧 이론이 틀렸다는 증거가  됐다는 사실에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 과연 팰런 교수는 왜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까? 그는 말한다.

독재자를 포함해 모든 사이코패스가 어릴 때부터 ‘정신병자’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하나같이 학대를 받았고, 생물학적 부모를 한쪽 이상 잃은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릴 때 학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한 예도 있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너무 창피했거나 가족의 일원인 가해자를 감싸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범죄자가 아닌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한 게 바로 이때다. 살인자들은 학대를 당한 적이 있었고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 우리를 만드는 건 양육이 아니라 본성이라는 나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키우느냐’가 결국은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팰런 교수는 '세 다리 의자 이론'을 펼치게 된다. 사이코패스가 되는 세 가지 조건으로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측두엽의 유별난 저기능, 전사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신체적·성적 학대"가 어우러져 탄생한다고 말한다. 결국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좋은 양육환경 속에서 성장한다면 범죄자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모두 예상했을 뻔한 결론일지 모르겠지만, 사이코패스의 유전자는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가 큰 차이를 만든다. 나쁜 유전자가 발현되지 않는 환경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팰런 교수는 '어느 집단이든 2퍼센트는 사이코패스'라며, 이들은 '평화로운 시기에는 포식자나 기회주의적 기생충처럼 보이지만 위험한 시기에는 궁지에서 벗어나 번식을 계속할 수 있는 이들이다.'라고 말한다. 또, 사이코패스를 어떻게 사회에 보탬이 되는 존재로 키워야 할지에 대한 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가진 이들을 생애 초기에 확인하고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하는 태도와 중요성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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