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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눈보 Sep 20. 2022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서평] 김선영 <어른의 문해력>

요즘 글쓰기에 빠져있다 보니 <어른의 문해력>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책을 펼치기 전 어린이급(?) 문해력을 구사하는 나의 실체가 낱낱이 분석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독서와 글쓰기를 꽤 즐겨했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나의 흥미가 이끄는 대로 행했던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중간평가 임하는 마음가짐으로 싱숭생숭한 마음을 누르고 펼치기 어려웠던 첫 장을 넘겼다.


먼저 문해력이 무엇인지 정확한 뜻을 알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책에서는 '문해력이란 글을 읽고 해석하는 힘, 나아가 문장 속에 숨어 있는 맥락을 찾아내고 내 글로 확장하는 능력을 포함'하며, '문해력을 키우려는 이유는 수많은 정보 중 유익한 것을 가려내어 읽고 해석하여 나만의 철학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또 '문해력의 종착지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쓰기 능력을 향한다'라며 정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이를 위해서 빵에 버터를 바르고 이부자리를 펴는 것이 경이로운 일임을 잊어버린다. <슬픔이 주는 기쁨>, 알랭 드 보통 지음의 숨은 뜻은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소중한 일상을 놓치고 살았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렇게 행간을 읽는 능력은 비단 글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숨은 맥락을 잘 읽는 이들은 인간관계에서도 빛이 나기 마련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상대방의 언어적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 사이의 미묘한 요구를 잘 캐치하여 적절한 반응을 한다. 그런 이들을 보고 대부분 '센스 있다.', '눈치 빠르다.', '배려심 깊다.', '사회생활 잘한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인기가 많고, 일을 잘한다.(이게 바로 알잘딱깔센?)


책에서는 우리나라의 고맥락 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말의 숨은 의미를 '알아서' 파악해야 하는 고차원적인 문화이다. 책에서 든 예시는 "춥지 않아?"라고 했을 때 문해력이 높은 사람은 "실내로 들어갈까?"라고 하고, 문해력이 낮은 사람은 "아니, 신선하고 딱 좋은데?"라고 답하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저 문장을 읽으면서 피로감이 드는 건 왜일까. 마음 같아선 고맥락 문화 근절 운동을 하고 싶은 심정이 든다. 그저 "춥다. 실내로 들어가자."라고 말해줄 순 없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런 바람을 갖는 나는 한국형 인간으로서 살아가긴 글렀나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해본다.


고맥락 질문은 상황에 따라 피로감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완화시킴으로써 대화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의사를 직접적으로 밝히기보단 듣는 이가 '어떤 뜻일까'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판단을 하게 하는 효과를 준다. 


그리고 나는 이런 고맥락 질문을 아주 잘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 그렇다. 우리 남편은 고맥락 질문의 대가이다. 아이의 신발을 신기기 전에 "자기~ 아기 양말 안 신겨도 괜찮을까?"라며 '어서 양말을 가져와 신겨줘.'라는 숨은 의미를 담아 이야기하고, 짱구처럼 비슷한 옷을 또 사려고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집에 비슷한 옷 많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라며 '제발 비슷한 옷 좀 그만 사'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고맥락 질문 공격(?)을 4년째 받다 보니 어느덧 잘 피하는 방법도 터득하고 말았다. 알아듣기 싫을 땐 문해력이 낮은 사람의 태도를 시종일관 유지하며, "웅 안 신겨도 괜찮을 거 같은데?"라고 대답하거나 "그래? 비슷한 옷 못 본 것 같은데?"라고 비교적 내 마음대로 행동하기 유리한 위치를 재빠르게 선점한다.


이쯤 되면 문해력이 높은 쪽이 살기 편한 건지 낮은 쪽이 살기 편한 건지 본격적으로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문해력은 높지만 낮은 척도 가끔 하며 사는 게 제일 편하지 않을까라는 처세에 대한 얄팍한 셈을 해본다. 


살아가는 데 있어 문해력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저자는 낮은 문해력이 대인관계에 있어 오해를 불어 일으키거나, 업무 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시간을 낭비하거나, 복약지에 나오는 약의 부작용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다양한 관점, 새로운 프레임을 얻을 기회를 놓치게 되는 생존과 연결된 중요한 문제임을 자각시켜준다. 이렇게 문해력이 생활 깊숙이 직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당장 책 한 권이라도 더 읽어야 할 것 같은 경각심이 든다.


<어른의 문해력>은 교과서 또는 참고서 같은 책이다. 평소에 독서하는 방법이나 글을 쓰는 방향에 대해 고민이 있었다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독서를 하고 글을 써도 원하는 방향대로 나아가지 않다고 느꼈거나, 그 방향을 어느 쪽으로 설정해야 하는지 조차 감이 안 온다면 추천하고 싶다. 마치 집을 짓는 방법에 대해 초석을 쌓는 법부터 접근하여 일러주듯 문해력을 갖기 위해 가져야 할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제시해주고 있다. 중간중간 나오는 쪽지시험에 응해보면서 내가 진도를 잘 따라가고 있는지도 체크할 수 있으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읽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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