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조남주 <서영동 이야기>
[서영동 이야기]는 서영동이라는 가상의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묘사한 7편의 이야기로 묶은 소설이다. 층간소음, 갭투자, 지역이기주의 같이 아파트에 살며 흔히 일어날 법한 우리네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거울 치료'라는 말의 어원은 의학분야에서 비롯됐지만, 요즘은 자신이 했던 일을 타인이 그대로 하는 모습을 보며 잘못을 깨닫는 것을 일컫는 말로 더 자주 쓰인다. 그렇다. 이 소설은 확실한 거울 치료제이다. 이기적인 행동 패턴과 모순된 사고방식의 흐름에 자신만의 확실한 타당성을 내세우며 난 어쩔 수 없었다며 자위하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아니, 책을 덮은 이후에도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결혼을 하며 지방 소도시지만 신축 아파트에 운 좋게 입주했다. 절반이 빚이지만 그마저 절반은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았고, 그 반절에 나의 수고와 노력은 들어있지 않은 공짜로 얻은 행운이었다. 처음 내 집이 생겼을 땐 밖에서 미처 털지 못한 고단함과 피로감이 집에 들어오는 순간 녹아내릴 때가 있었다. 아늑한 침대와 유행에 맞춰 들인 대리석 테이블과 식탁, 그리고 큰 마음먹고 산 하늘색 카펫. 애지중지 키우는 크고 작은 화분과 그 옆에 자리한 리클라이너 소파. 모든 게 모자람 없이 넉넉했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고 아이의 짐이 늘어날수록 카펫은 돌돌 말려 창고로 들어갔고, 화분들은 차례차례 베란다로 이주했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며 아이의 행동반경이 넓어지자 25평이 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30평대로 갈걸 그랬나?' 만족스러웠던 마음들이 점점 불편함으로 자리잡기 시작할 때쯤 다른 신축 아파트를 눈여겨보기도 했다. 내 집이 생겼을 때의 뿌듯함, 만족감, 감사함은 사라지고 실은 충분함에도 불충분한 사유에 대한 명분을 찾기 시작했다. [교양 있는 서울 시민 희진] 편에서 희진이 그랬던 것처럼 작은 평수에서 큰 평수로 더 큰 빚을 지고 옮긴 후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를 타며 얻는 이익에 대해 계산기를 두들겨 보기도 했다. 그러다 생각했다. 집이 커질수록 삶의 질과 행복도 비례하는 걸까? 행복의 척도를 과연 평수나, 리클라이너 소파 따위로 삼을 수 있는 걸까? 유의미한 질문들, 그러나 뼈아픈 질문들을 수시로 던져주는 [서영동 이야기]는 수록된 7편 모두 버릴 것 없는 문장의 집합체이다. 그리고 읽음과 동시에 내면에서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는 장면으로 전환되는 영상처럼 다가온다.
인간의 이기심의 화살표가 어느 쪽을 향하느냐에 따라 때론 이기심은 이타심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우리 가족이 잘 살기 위해서는 다른 가족도 잘 살아야 한다. 내 자식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그 세상에 어른으로서의 일말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세상이 잔인하다는 걸 느꼈다면, 스스로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7편에 나온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결국 그 노력으로 이룬 성과가 자신에게 확실한 이익을 가져다줄까? 그 이익이 나와 나의 가족의 배를 부르게 해 줄 수 있을까? 더 깊이 사유해볼 만한 문제다.
[다큐멘터리 감독 안보미]
먹고사는 일 앞에서 인간은 한 없이 코너로 내몰린다. 생계가 위협받거나 불안할수록 우리는 먹고사는 일에 목을 맨다. '생계를 최우선으로 두는 게 잘못인가? 우리 가족이 먼저 잘 살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무적의 논리로 든든하게 무장하고 나면 무서울 게 없어진다.
고도성장기의 대한민국을 살았던 운 좋은 기성세대로 불리는 보미의 아버지는 평균임금을 받았음에도 부동산 투자를 통해 성공적으로 자산을 불릴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을 '자수성가'했다고 말하는 아버지를 보며 보미는 생각한다.
지금처럼 규제가 촘촘하지 않고 취득, 양도, 보유에 따르는 세금 부담도 거의 없던 시절, 아버지는 투기에 가까운 횟수와 방식으로 부동산을 끊임없이 사고팔았다. 분양받은 아파트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지하철역이 생겼고, 잘 팔리지 않아 애물단지던 아파트 건너편에 백화점이 들어왔고, 시끄러운 것이 유일한 단점이던 아파트 앞 대로가 지하화 되었고, 큰 욕심 없이 구입한 빌라 인근에 대규모 디지털단지가 조성되었다. 운도 좋았고 건설 경기가 호황이기도 했다. 이후 빌라를 원룸 건물로 리모델링해 월세를 놓았는데 디지털단지에 젊은 직장인이 많아 공실 한 번 없이 지금까지도 집안의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고 있다. 아버지에게 집은 뭘까. 아파트는 뭘까.
그러나 보미의 아버지는 가족들이 편안하게 먹고, 입고, 잘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갖춰졌음에도 더 나은 조건과 더 유리한 환경을 갖기 위해 1인 시위도 마다치 않는다. 아파트 가격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임대아파트나 노인시설 말고 지하철 3번 출구를 만들어 달라며 여론몰이도 서슴지 않는다.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다큐 제작을 구상했던 보미는 자신에겐 한 없이 너그럽고 존경스러웠던 아버지의 일상을 지켜보다 이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호주머니를 불릴 수 있는 일이라면 타인의 고통도 못 본 척 지나칠 수 있는 그 신념이, 그간 블랙컨슈머로 불렸던 아버지의 민낯이, 보미를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르게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신혼집으로 잠시 살게 해 준 아파트를 남동생에게 증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보미는 울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다 아버지에게 서운하고 괴롭고 화가 나있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속물 같은 아버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내가 과연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백은 학원연합회 회장 경화]
서영동 학원 집성지이자 서영동 사교육 그 자체인 백은빌딩의 학원 원장인 경화.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친정엄마와 아들 찬이와 함께 살며, 먹고살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달려온 평범한 엄마다. 그러다 백은빌딩의 옆 노후된 건물이 사라지고 치매시설이 새로 지어진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자 백은빌딩 상가 협회 사람들과 근처 아파트 입주민들은 치매시설 공사를 반대하며 해당 구청에 가서 민원을 넣고, 기자를 앞세워 본인들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한다. 소란이 지속되는 와중에 늙은 노모가 치매 의심 판정을 받게 되고, 순식간에 경화는 치매센터가 절실해진 처지가 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한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야기가 끝난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우연한 행운을 잃지 않기 위해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도록 벽을 높이 쌓기 위해 혈안이 되곤 한다. 자신이 누리는 혜택의 진입장벽을 가능한 더 높이, 더 가파르게 만들수록 스스로가 더 특별한 곳에 소속되어 있는 안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벽은 타인과 자신을 가르는 크나큰 장벽이, 장애물이, 모든 면의 격차를 손쉽게 판단 짓게 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처지와 상황에 따라 자신이 노력해서 쌓아 올렸던 그 높은 벽을 뛰어넘어야 할 때가 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가 높고 튼튼한 벽 안쪽에 있을 때 문을 만드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누구라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문, 도움과 위로가 필요한 이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문. 그 문이 우리 모두에겐 늘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