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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눈보 Dec 25. 2022

인생이 고통의 바다를 헤엄치는 것이라면

[서평] 손원평<튜브>

한땐 내 인생의 핸들을 내가 쥐고 있으니, 핸들을 트는 방향대로 인생이 흘러갈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으로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삶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다 시야 끝에 흐리게 걸쳐진 아름다운 외딴섬을 발견했을 땐 꼭 그곳이 내 운명의 종착지처럼 느껴졌다. 그 섬으로 갈 수 있는 배와 돛이 없더라도, 수영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언제 어느 순간 집채만 한 운명의 파도가 나를 덮칠지 모른 채로 말이다. 파도에 휩쓸려 깨어났을 땐 눈을 뜬 곳이 어디든 그곳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함은 늘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그렇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필연적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순간의 우연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여기, 우리의 인생과 별반 다를 것 없이 흘러가고 있는 김성곤 안드레아의 삶이 있다. 배가 튀어나오고 어깨와 등은 본인이 겪은 비참함의 압력만큼 눌려 구부정하고, 어정쩡하게 땅에 두 발을 붙이고 서있는 50대 남자. 그리고 단 한순간도 열심히 살지 않은 적은 없지만, 이윽고 정신 차려보니 한강 대교에 서서 떨어질 준비를 막 마친 사람. 대체 무엇이 그를 낭떠러지로 몰고 갔을까. 김성곤 안드레아는 스스로의 삶을 실패했다고 생각했지만, 인생을 실패와 성공으로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게 애초에 존재하긴 하는 걸까?


소설"튜브"는

김성곤 안드레아가 낭떠러지에서 다시, 제대로 살아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변화하는 이야기.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의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며 마무리되는 마침표의 어두컴컴한 뒷면. 

인생이란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이 무한 반복인걸 알아버린 어른들의 단물 빠진 씁쓸한 전개. 

그럼에도 살아있는 한 제대로 살아냈다는 걸 증명시켜 보이고 싶은 지푸라기 같은 심정.

그리고 그렇게 잡은 지푸라기가 튜브가 되어 언젠간 나를 두둥실 띄워 줄 거라는 벅찬 희망.


자연재해처럼 나에게 찾아오는 불운과 행운.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불운이 찾아올 땐 절망하고, 행운이 찾아올 땐 기뻐하면서? 불운을 뒤집으면 행운이, 행운을 뒤집으면 불운이 나오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운명의 장난을 피할 수 있긴 한 걸까? 소설 속에서 모든 걸 깨우친 듯한 박실영이라는 인물의 인생관을 들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삶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위해 사유를 멈추지 않는 태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태초의 질문에 끈기 있게 답하는 태도. 그런 태도가 스스로를 잘 살고 있다고 믿게 하는 힘이 아닐까. 그리고 스스로에게 잘 살고 있다고 평가해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성공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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